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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음악 읽기] 유별난 음의 강약 … 천둥·번개 몰아치듯 지휘

그리스 출신 지휘자 드리트리 미트로폴로스(1896~1960). 현대음악의 예리한 해석자로 정평이 나 있다. [사진 LIFE]
명성이 예전 같지는 않다 해도 뉴욕 필하모닉은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의 하나다. 구스타프 말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가 거쳐 간 교향악단. 레너드 번스타인과 함께 했던 1960년대 최전성기를 맞아 카라얀의 베를린 필과 더불어 세계 악단을 양분했던 영광의 시절들. 뉴욕 필은 흡사 미국의 크기와 영향력을 문화예술로 상징하는 존재 같아 보인다.

지휘자 드미트리 미트로폴로스

그런데 그 속에 꽤 이상한 존재가 한 사람 있다. 그 유명하고 인기 있던 스토코프스키의 후임으로 1949년부터 58년까지 9년 간이나 음악감독과 상임 지휘자를 맡았다면 영광의 시절을 되새길 때 자주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 옳다. 당연히 마에스트로 반열에 올라 있을 것이고, 지속적인 음반 재발매가 이루어지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의 이름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재발매도 극히 드물다. 기록들을 보면 뭔가 불편한 내력이 역력해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어떤 인물인 것일까.

그의 이름은 드미트리 미트로폴로스. 일단 주변적인 것부터 떠올려 보자. 언제나 머리를 박박 깎는 그는 무척 험악하게 생겼다. 활동했던 시대배경 탓인지 잔인한 마피아 보스를 연상시킨다. 절대 장애우를 모욕하려는 뜻이 아닌데, 유튜브나 ‘전설의 거장’ 같은 타이틀의 DVD 영상으로 모습을 보면 흡사 뇌성마비 환자의 몸동작처럼 위태롭게 지휘를 한다. 레퍼토리는 쇤베르크, 베르크 같은 현대음악 작곡가에 치중되어 있는데 곡 탓이겠지만 사운드가 참 무시무시하게 들린다.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듯하고 강한 음과 약음 사이의 진폭이 유별나게 크다. 좀 정신이 없군, 하는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정신이 좀 없었던 것 같다. 활동기 내내 언론의 십자포화에 시달렸던 모양인데 가령 버질 톰슨이 했던 미트로폴로스 평이 이렇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지나치게 과장하고, 지나치게 잔혹하고, 지나치게 총명하면서도 자신감이 부족하고 완전히 난해하다.’

이쯤 되면 평이 아니라 대놓고 하는 욕이라 하겠는데 어떤 점이 그런 악감정을 불러 일으켰던 걸까. 미트로폴로스는 그리스 사람이다. 수도원으로 유명한 아토스 산에서 성직자의 길을 준비하다가 방향을 바꿔 독일로 유학을 간다. 피아노·지휘·작곡 등 음악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지휘자 행보로는 미국의 미니애폴리스 교향악단을 10여 년간 맡아 정상에 올려놓은 점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뉴욕필에서의 활약상. 쏟아지는 악평과 일부의 열광적인 찬미. 음악이 나빴나? 처신을 잘 못했나? 아무래도 두 가지 다 해당되는 것 같다.

첫째 음악의 문제. 나는 이제껏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연주에서 미트로폴로스를 능가하는 지휘자를 들어보지 못했다. 오싹함과 기괴함을 안겨주는 면에서 그는 최고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상업악단을 이끌기에 그의 현대음악 취향이 지나쳤다. 정갈한 소리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대중들에게서 ‘뭐 하자는 짓이냐’ 하는 비난이 쏟아질 법 했다. 그는 소수의 열광적 찬미자를 낳을 수밖에 없는 마이너리티 숙명을 타고났다.

둘째 처신의 문제. 그의 인품을 칭송하는 증언이 많다. 그는 돈에 초연한 편이어서 노먼 레브레히트의 기록에 따르면 ‘자신의 수입과 재산 대부분을 가난한 음악가들과 학생들을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순수하고 예의바르고 이타적인 인간’이라는 인물평이 말하듯 진보적이고 이상주의자적인 면모 또한 두드러진다. 머리도 천재적이어서 모든 연주를 악보 없이 암보로 해치웠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호모포비아. 그는 동성애 혐오의 희생물이었다. 1950년대 미국에서 동성애 혐오는 의외로 뿌리 깊었던 모양이다. 위장결혼이나 거짓말 따위로 성 정체성을 숨길 수 없었던 그는 위험한 남색가로 낙인 찍혔다. 음악 이전에 사생활이 문제가 된 케이스다. 미트로폴로스의 기용이 뉴욕필로서는 재앙의 시간이었다는 평가를 본 적이 있다.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그는 연주도 인물도 무언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특별하게 갖고 있다.

LP음반 콜렉터들에게 ‘식스 아이(six eye, 작은 사진)’는 꿈의 수집품이다. 콜럼비아의 1940~50년대 모노음반 가운데 식스 아이가 많다. 음반 속 동그란 라벨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 눈을 닮은 여섯 개의 동그라미 때문에 붙은 별명이 식스 아이인데 이게 웬 떡이란 말인가. 판가게에 미트로폴로스 식스아이 음반이 재고품 목록 속에 오래 묵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들이 외면하는 것을 보물인 양 건져 홀로 아끼며 들을 때의 기분이 얼마나 삼삼한지. 누가 뭐래도 미트로폴로스는 뛰어난 1급 지휘자다.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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