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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건 전화번호는 몽땅 외우는 천재”

선다 피차이 수석부사장은 올해 6월 『비즈니스 위크』가 꼽은 ‘모바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꼽혔다. 가장 뜨는 분야에서 가장 잘나가는 엔지니어란 얘기다.



선다 피차이 수석부사장은
인도 타밀 출신 개천에서 난 용
12세에 전화기보고 기술에 눈 떠
"버거운 업무에 도전해야 성장"

피차이 부사장은 ‘개천에서 난 용’이다. 그는 인도 남부의 타밀 나두주(州)의 주도인 첸나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속기사였고, 아버지는 현지 영국 회사의 공장 관리자로 일했다. 부유한 편은 아니었다. 4명의 가족은 방 두 개 짜리 집에서 살았다. 그는 “어린 시절 내내 집에 TV나 자동차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그가 12살 되던 해 처음 다이얼식 전화기를 갖게 됐다. 그 전화기는 피차이 부사장에게 기술의 편리함을 가르쳐 준 최초의 기기였다. 가난한 집 큰아들이었지만, 천재성은 어려서부터 눈에 띄었다. 피차이 부사장은 한 번 걸었던 전화번호는 저절로 외웠다. 집에 찾아온 삼촌이 자신이 걸어야 할 사무실의 전화번호를 그에게 물어보곤 했다는 게 주변의 말이다.



학창 시절 성적도 탁월했다. 인도 최고 명문인 인도 공과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재료공학과 반도체 물리학을 배웠다. 미국 유학길에 오를 때에도 유명한 일화가 있다. 비행기 삯이 없었던 그는 대출을 받아 비행기 티켓을 사려고 했지만, 제시간에 대출을 받지 못해 가족의 저축 통장을 헐어 비행기 티켓 값과 제반 비용을 치러야 했다. 피차이 부사장은 “당시 가족의 저축 통장에서 인출한 돈은 1000달러로 이는 아버지 연봉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 도착해서는 백팩을 사려다 한 개 값이 60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술회한다. 결국 그는 그 백팩을 인터넷 중고장터에서 구입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ㆍ박사 학자금은 모두 장학금으로 충당했다. 선다는 애초 교단에 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실리콘 밸리의 반도체 제조회사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에 엔지니어이자 제품 매니저로 취업해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매킨지&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2004년 구글에 합류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비결에 대해 “항상 나를 불편하게 할 만큼 똑똑하고 정열적인 사람들과 일해 온 게 오늘에 이른 비결인 것 같다”며 “항상 능력에 버거운 업무에 도전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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