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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하되 통치 않는다 … BMW의 '크반트 왕가'

1999년 2월 5일 독일 뮌헨의 BMW 본사는 긴장에 휩싸였다. 94년 인수한 영국의 자회사 로버(Rover)가 막대한 적자를 내자 BMW 대주주인 크반트(Quandt)가의 요구로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가 열렸다. BMW는 회사 경영에 전권을 가진 경영이사회(Board of management)와 이들을 견제하는 감독이사회로 이원화돼 있다.



[똑똑한 금요일] 독일 재계의 최고 명가
가족 재산 455억 달러 … 세계 5위
회사 위기 때만 수호자로 나서
1959년 벤츠사에 매각될 위기
노조 설득에 사재 털어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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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시간 뒤, 베른트 피셰츠리더 회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나왔다. 로버에 대한 구조조정과 회사의 경영권을 둘러싼 치열한 토론이 오간 뒤였다. 회장직을 사임했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 30분 뒤 볼프강 라이츨레 사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사회는 제조 부문의 최고책임자 요아힘 밀베르크를 회장에 추대했다.



 로버 인수로 BMW는 70억 유로의 손실을 입었다. 자동차산업 역사상 최악의 인수합병(M&A)이라 불리는 이유다. 크반트가가 결단을 내렸다. 13억5000만 달러에 인수한 로버를 2000년 피닉스 컨소시엄에 단돈 10파운드에 매각했다. 언론이 “크반트가가 이런 식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보도할 정도로 신속하고 전격적이었다. 당시 BMW의 지분 48%를 보유한 ‘크반트가 3세’ 주자네와 슈테판이 전면에 나선 것이다.



 BMW를 세계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로 키워낸 독일 재계의 명가(名家) 크반트가의 경영 철학이 화제 다. 크반트가는 최근 블룸버그가 발표한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가문 톱 5’에서 5위를 차지했다. BMW의 중흥을 이끈 헤르베르트 크반트(1910~82)의 아내 요하나(88세·140억 달러 보유)와 딸 주자네(52세·168억 달러), 아들 슈테판(48세·147억 달러)의 재산 총합은 455억 달러다.



 이 가문은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회사의 중심이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금과옥조를 기업 운영에 적용하듯 경영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달라진다. 국가의 안위가 걸린 순간 왕실이 움직이듯, 크반트가도 회사가 위기에 처한 순간 냉정한 판단과 과감한 행동으로 회사를 구하는 구세주가 된다.



 40년 전에도 크반트가는 벼랑 끝에 몰린 BMW의 수호자였다. 주인공은 헤르베르트 다. 경영난으로 BMW는 생존이 어려웠다. 이사회는 다임러-벤츠에 매각을 권고했다. 59년 12월 9일 주주총회가 소집됐다. 다임러-벤츠와 BMW의 주식을 모두 보유했던 대주주 헤르베르트도 매각 쪽에 기울었다. 하지만 BMW 노조와 소액주주의 설득에 마음이 돌아섰다. 매각을 백지화했다. 헤르베르트와 이복동생 하롤트는 사재를 털어 BMW 지분을 50%까지 늘렸다. 도박이었다. 직원들이 화답했다. 생산성은 올라갔고 차량 성능은 개선됐다. BMW가 ‘최고의 드라이빙 머신’으로 불리며 쾌속 질주한 것도 이때부터다. 63~72년 연평균 23%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 최고의 자동차업체로 거듭났다.



 크반트가의 주춧돌을 놓은 이는 창업자 귄터 크반트(1881~1954)다. 네덜란드 출신 아버지가 운영하던 밧줄업체와 처가의 섬유업체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다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품을 납품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배터리 제조업체 AFA를 인수하는 등 M&A로 재산을 늘렸다. 54년 귄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계열사만 200여 개에 달했다. 귄터의 두 번째 아내 마그다는 그와 이혼한 뒤 히틀러의 오른팔이던 요제프 괴벨스와 결혼했다.





 헤르베르트는 귄터와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앓은 망막질환으로 9세 이후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역량은 탁월했다. ‘키드니(kidney) 그릴’과 관련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신장 모양을 닮아 ‘키드니 그릴’로 불리던 라디에이터 그릴은 33년 신형 303 시리즈에 처음 부착했다. 55년 소형차 ‘이세타’와 59년 BMW 700에서 키드니 그릴이 사라졌다. 당시 디자이너들이 이런 외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헤르베르트의 생각은 달랐다. 그 디자인은 BMW의 영혼이라고 여겼다. 헤르베르트의 지시로 키드니 그릴 디자인은 다시 살아났다. 키드니 그릴은 80년의 세월을 견디면서 BMW의 상징이 됐다.



 82년 헤르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 BMW의 경영권은 요하나와 두 자녀에게 넘어왔다. 헤르베르트의 세 번째 아내인 요하나는 50년부터 비서로 일하다 60년 결혼했다. 시력이 나쁜 남편에게 각종 기업 관련 정보를 읽어주면서 경영에 눈떴다. 요하나는 82~97년 감독이사회 이사를 맡았다. BMW와 화학회사인 알타나의 지분을 상속받은 주자네는 독일에서 가장 돈이 많은 여성이다. 주자네는 BMW에서 한때 수습직원으로 일했다. 당시 그는 ‘주자네 칸트’라는 가명으로 신분을 속였다. 그때 만난 동료 엔지니어 얀 클라텐과 90년 결혼해 3명의 자녀가 있다. 슈테판은 2005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카타리나와 결혼해 딸 하나를 뒀다.



 크반트가에는 부끄러운 역사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에 부역하며 무기공장에서 5만 명의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렸다는 사실이 2007년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려졌다. 변명하지 않았다. 크반트가는 역사학자 요아힘 숄티제크에 진상조사를 맡겼고 2011년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는 12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간하고 잘못을 시인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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