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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근혜 외교, 유엔의 큰 장 놓치지 말아야

[일러스트=강일구]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오는 23일 미국 뉴욕에선 외교의 큰 장이 들어선다. 반기문 사무총장 주도로 193개 회원국의 국가수반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유엔 기후정상회의다.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은 총회장에 모여 2020년 수명이 다하는 교토의정서 체제 이후 어떻게 온실가스를 규제할지 격론을 벌이게 된다. 황사보다 훨씬 독하다는 중국발 초미세먼지에 시달리는 한국으로선 중차대한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이 기간 중 정상회의 이상으로 주목해야 할 게 있다. 바로 회의장 밖에서 숨가쁘게 벌어지는 외교전이다. 대통령·총리와 함께 온 수행원 규모는 작은 나라도 10명 안팎, 웬만한 국가면 외교장관 포함, 20~30명에 달한다. 유엔 본부 안팎에서 수천 명이 저마다의 국익을 위해 뛰는 것이다.



 외교 방식은 단순하다. 각국은 현안이 있는 나라들을 붙잡고 양자회담을 연다. 지난해 유엔 총회 기간 중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참석했던 회의는 20여 건. 오바마 대통령도 가장 활발했던 2011년엔 13건의 정상회담을 소화했다. 193개 회원국이 30분~1시간 단위로 정상급 또는 장관급 회담을 여니, 못 해도 1000건 이상의 회의가 열리는 셈이다.



 유엔은 이를 위해 본부 로비·복도에 수십 개의 부스형 간이 회의실을 마련한다. 말이 회의실이지 파티션으로 막은 작은 공간에, 있는 거라곤 덩그러니 놓인 탁자와 의자 몇 개가 전부다. 이런 간소한 곳에서 각국 정상과 외교장관들이 회동해 현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의전을 생략한 지극히 실무적인 만남이라 일정은 며칠 전, 심지어 몇 시간 전에 결정되기도 한다. 지나가던 상대를 붙잡아 회의를 여는 듯해 ‘풀 어사이드 미팅(pull-aside meeting)’으로 불린다. 영락없는 외교 장터다.



 이런 유엔 총회가 올해는 더더욱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15년 만에 북한의 외무상 이수용이 참석하는 까닭이다. 게다가 그가 미국 땅을 밟게 되면 유엔 총회에서의 활동은 물론 북·미 간 사실상의 외교통로인 뉴욕 채널이 가동될 공산이 짙다.



 뉴욕 채널이란 뭔가. 뉴욕에 자리 잡은 주유엔 북한대표부와 미 대북 당국자 간의 접촉을 의미한다. 뉴욕 채널이 개설된 건 유엔 북한대표부가 설치된 1973년. 당시 옵서버 자격으로 유엔에 진출하게 된 북한은 최고급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임시 대표부를 개설한다. 그때만 해도 북한 사정이 괜찮았는지, 중국은 몇 등급 낮은 루스벨트호텔에 대표부를 설치했었다. 이렇게 미국에 설립된 북한대표부는 냉전기간 내내 유엔 무대에서 한국과 치열한 남북 외교대결을 벌이게 된다.



 이 북한 대표부의 명목상 기능은 유엔 업무 처리다. 하지만 막후로는 더 큰 임무가 맡겨져 있다. 미국 당국과의 접촉이다. 대미 창구인 차석대사가 미 행정부 내 한국 담당자 등과 서로 소통하며 양측 간 현안에 대해 조율한다.



 이처럼 북·미 간에 중요한 뉴욕에 이수용 외무상이 직접 방문한다는 건 어찌 봐도 예사롭지 않다. 그는 뉴욕 도착 후 다양한 경로로 미 인사들과 접촉, 북한의 요구사항을 전파할 가능성이 크다. 코리아소사이어티,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 등 뉴욕에도 워싱턴 못지않게 외교 관련 주요 기관이 포진해 있다. 은밀하게 북한 유엔대표부에서 백악관이나 국무부 내 대북 정책 담당자들과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북한의 첫 핵실험 후 2007년 뉴욕에 온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바로 그랬다.



 이뿐 아니다. 한·일 간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위시한 일본 외무성 수뇌부도 출동한다. 현재로는 오는 11월 베이징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주최국인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아베 총리와 만날 가능성이 적잖다. 그렇다면 한국도 마냥 손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번 유엔 총회는 꽉 막힌 대북·대일 정책에 숨통을 터줄 더 없는 기회인 것이다. 그런데도 외교 당국은 이 찬스를 십분 활용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북한 이 외무상과 윤 장관의 만남도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박근혜-아베 간은 물론 한·일 장관급 접촉도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해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은 30년 만에 이란 외교장관과의 회담이라는 획기적인 성과를 낸 바 있다. 바로 유엔 총회 기간을 이용한 회담이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평화와 외교를 두고 이렇게 설파한 적이 있다. “평화는 친구가 아닌 적과의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외교란 적과 대화하는 일”이라고. 잘 지내지는 우방과 덕담을 하는 게 무슨 외교인가. 까다롭기 짝이 없는 상대와 대화해 원하는 바를 이끌어내는 게 진짜 외교 아니겠는가.



 2007년 당시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는 “특정 국가의 대화 단절이 그 나라에 대한 징벌이라는 생각처럼 우스꽝스러운 것도 없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악의 축이라고 몰아붙인 이란·북한 같은 나라와도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박근혜 외교가 원칙이라는 틀 안에 갇혀 모처럼 찾아온 소통의 큰 장을 흘려보낼까 두렵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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