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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절대 배지의 테러리스트

테러리스트들은 대부분 복면을 쓴다. 같은 복장을 하거나 서로 바꿔 입는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을 때보다 훨씬 대담하고 공격적이 되는 까닭이다. 전투에 앞서 인디언들이 몸에 칠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익명성은 평범한 사람을 쉽게 잔혹한 살인마로 만들기도 한다. 영국 물을 먹고 자란 청년이 서슴없이 사람의 목을 딴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다른 게 아니다.



 악까지는 아니더라도 익명성 속에서 사람들은 쉽게 수치를 잊고 문란해진다. 점잖던 사람들이 예비군복만 입으면 길에서 거리낌 없이 쉬할 수 있는 이유다. 누구누구가 아니라 그저 예비군이 오줌 누는 게 되니 부끄러움이 없다.



 이 나라 선량들이 딱 그렇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절대 배지’만 달면 사리(私利)의 화신이 되고 당략(黨略)의 좀비가 된다. 그들은 낡았지만 위력적인 방탄복을 입었다. 유권자 무서워 말 못 꺼내던 동료 구하기를 무기명 투표로 성공시킨다.



 무능할수록 익명성의 위력은 커지기 마련이다. 넉 달 넘도록 법안처리 한 건 못하면서도 특권 지키기에는 일사불란 흐트러짐이 없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도 익명 속에선 흠이 못 된다. 국회의원 겸직 및 영리업무 금지, 국회의원 연금 개선,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제한, 의원수당 지급 개선, 의원 징계제도 개선…. 19대 국회의원들이 배지 달기 전 유권자들에게 한 약속 중 어느 하나 지켜진 게 없다.



 하지만 머리가 나쁜 건 끝내 치명적이 되고 말 터다. 이번 사안이 어떤 건가. 단순 비리가 아니라 철피아에 의한 철도 부품 납품 비리다.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필연적으로 초래할 안전불감증이 바닥에 깔렸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국회가 대한민국의 안전을 팽개친 ‘국피아’ 대열에 스스로 동참한 게 아니고 뭐냔 말이다.



 국회의원은 예비군들과 다르다. 예비군들은 한 번 시원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의원들은 행정부를 종처럼 부리며 국정을 뒤흔들 힘을 가졌지 않나. 그런 힘을 사법부조차 무력화하는 데 쓴 것이다. 이번 체포동의안 부결이 곧 국민에 대한 테러와 다름없는 이유다.



 테러 국회는 위험하다. 일찍이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에서 경고한 게 그거다. “민주정에서 정치인이라는 지위는 항상 위험이 가득하다. 백성의 뜻만 추종하려고 하면 그들과 함께 망하고 백성의 뜻을 거스르면 그들 손에 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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