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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식 심경자

손위 형님의 임종을 지키며 장례를 끝내고 엿새만에 상경한 남편은, 방금 깊은 잠에서 깨어 난듯한 초췌한 얼굴로 저녁을 끝낸 후, 산책을 원했다. 여느 때처럼 박물관과 경복궁정문에 이르는 길을 마주보며 낮은 담벼락에 걸터앉았다.

겨울날이면 나목 사이의 별들마저 차가와 보이는 이 거리에, 올망졸망 따라나서던 세아이들도 책상 앞에 앉을 나이가 되면서, 이젠 우리 둘만이 되어버렸다.

한동안 말이 없던 남편이 나지막이 이야기를 꺼내었다.

『어젠 날씨가 무척 더웠었소. 모두 무거운 발걸음으로 영구를 따라 푸른 산을 오를 때,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흙과 풀 냄새가 가슴에 와 닿고, 물『그 나이까지 고달프게 살아온 형이 드디어 영원한 휴식으로 들어가는구나…싶었소.』영원한 휴식….

순간 내 가슴 한구석 바람이 일었다. 난 어린날 아버지를 여의었다.

펄럭이는 깃발들, 긴 장래 행렬과 함께 아버지는 떠나셨다. 그로부터 아버지를 덮어버린 무거운 흙이 내 가슴에도 덮여 얼마나 답답하고 춥고, 음습한 긴-긴 세월을 보내었던가….

얼마 전엔 이모님 내외분이 돌아가셨다. 외국에 수학하셔서인지 넓게 세상을 내다 보셨던 이모부님께선 조그맣게 위축되어 숨고만 싶던 20여년 전의 나에게, 서양화로선 서구인들과 견주기 힘들지만 동양화롤 잘하면「피카소」와도 견줄 수 있다는, 하늘의 별을 따듯 까마득한 말씀으로 나를 동양화의 길로 끌어주셨다.

또 우리의 결혼을 중매해 주셨고, 운보선생님께 나의 지도를 부탁해 주시는 등 내 생애의 길목 길목을 잡아 주시곤 하셨었다. 어이없는 사고로 돌아 가신이 분들, 몸담으셨던 대학교점에서의 덧없이 성대한영결식에서, 잠시 비껴서 있던 나는 차츰 날이 갈수록, 내가 걷는 보도위로, 감은 눈 망막위로, 생전의 다정하신 모습은 멀어지고, 덮은 흙 아래에서 괴로워하는 모습만이 짙어진다.

이러한 나에게 남편의「영원한 휴식」이란 말은 오랜 세월동안 굴속을 헤매던 사람이 빚을 찾아내 마침내 출구를 향해 걷듯 가슴을 밝게 해 주는 것이었다.

조상의 뼈가 풍화되어 흙이 된 정든 조국 땅에, 혹은 고향 땅에 묻히기를 원하는, 그래서 유골이 되어서라도 돌아오는 많은 넋들을 보아 왔으면서도, 어찌하여 그 맘이 나에게는 춥고, 무겁고, 그렇게도 음습하였더란 말인가.

나는 이제사, 조장의 넋이 깃 든 다정한 흙을 잔디로 누빈 이불아래서, 영원히 휴식하는 평화로운 모습들을 가슴에 담으면서, 30여 년간 내 가슴을 덮어온 무겁고 추운 흙들을 치워가고 있다.

<약력>

▲44년 창령출생 ▲수도여사대·동대학원 졸업 ▲아시아예술방글라데시 자전 최고상수상 ▲현 국전 추천각가·세종대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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