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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기자는 고은맘] 당신들 담배는 고은양 눈높이에 있습니다








결혼하려고 하면 신부만 보이고, 임신하면 임산부만 보이며, 아기를 낳으면 ‘모서리’만 보인다고 하더군요.

정말입니다. 요즘 20~30대는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세대(삼포세대) 라는데 결혼하려고 했더니 왜 이렇게 결혼하려는 사람이 많던지. 식장은 고사하고 주말에는 사진 스튜디오 일정 잡기도 쉽지 않더군요. 임신하고 나선 정기 검진을 위해 병원에 다니는데 산부인과엔 사람들로 넘쳐나 예약을 잡고 가도 30분은 기본, 보통 한 시간은 고스란히 기다려야 제 차례가 왔습니다.

고은양을 낳고 나선 제 눈에 들어오는 건 모서리‘만’이 아닙니다. 모서리도 눈에 들어오지만 더 눈에 들어오는 건 ‘흡연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타고 있는 담배’입니다.

흡연율은 갈수록 떨어진다는데 왜 제 주변, 아니 고은양 주변에는 흡연자가 이리 많은지...

지난주였을 겁니다. 고은양을 유모차에 태우고 근처 마트에 가는데 좁은 골목길, 좁은 인도 앞으로 한 할아버지가 걸어갔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워낙 느릿느릿 걷다 보니 유모차를 끌고 가는데도 그 할아버지와 고은양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습니다.

저 멀리서부터 기운이 안 좋기는 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냄새와 연기가 또렷해졌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담배를 피운다기보다는 타고 있는 담배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길이 좁다 보니 할아버지를 앞지르기 힘들었습니다. 딱 고은양 눈 높이쯤에서 담배 연기가 날아왔고, 가끔 할아버지가 손가락을 까딱할 때마다 떨어지는 담뱃재, 그것도 다 타버린 재가 아니라 아직 빨갛게 열기를 머금은 재가 고은양에게 날아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습니다.

앞지를 기회가 좀체 나지 않았습니다. 불안감이 폭발할 지경이었습니다. 마침 앞지를 수 있는 공간이 생겨 그 할아버지를 앞지를 수 있었을 때 전, 그만, 폭발해 버렸습니다. 뭔가 ‘열여덟’ ‘십장생’ ‘생시베리안허스키’ 비스무리한 말을 내뱉은 것 같습니다. 물론 (거의 ‘이것 좀 들어보세요’ 수준의) 혼잣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공격성이 어디서 나왔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화가 났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어디 일부러 그랬겠습니까. 고은양과는 상관없이 그냥 평소대로 한 거겠죠.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가 참 많습니다. 그건 담배를 피우지는 않고 그냥 들고 다니며 없애버리는 격이죠. 담뱃값이 미국처럼 1만원에 육박했다면 아까워서라도 그렇게는 안 할 텐데... 우리네 담뱃값은 너무 싼 것 같습니다(그렇지 않아도 보건복지부가 담뱃값을 4500원선으로 올리겠다고 하네요. 현실화될 지는 모르겠지만).

고은양이 다니는 곳에는 애초에 흡연자가 없습니다. 길을 가다 흡연자 무리를 발견하면 고은양을 데리고 멀찍이 피해 갑니다. 어떤 분들은 고은양이 근처에 오면 스스로 비켜서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금연하게 된 계기를 보면 아이와 관련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제 아빠는 조카(오빠 아들)가 태어나자 3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끊으셨습니다. 손자에게 담배 냄새 맡게 할 수 없다고 해서요. 사촌오빠 역시 출산과 동시에 담배를 끊었고요.

흡연자가 있는 곳을 피하거나 흡연자가 담배를 끊거나 자제를 해서, 고은양은 대개 담배 청정지대에서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길거리입니다. 길거리 흡연자들에게 고은양은 무방비 상태입니다. 어른인 저도 길거리 흡연자에게 노출돼 있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합니다. 고은양(같은 아이들)은 아닙니다.

길거리 흡연자분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 당신들이 들고 있는 ‘타고 있는 담배’의 높이가 바로 아이들의 눈높이라는 걸. 담배 연기는 아이들에게 직진을 하고, 불 붙은 담뱃재는 아이들의 눈을 향해 날아갈 수 있습니다. 길거리 흡연자들이 태우는 담배는 아이들에겐 흉기입니다.

쓰다 보니 격분했습니다.
길거리 흡연자분들, 당신들 뒤에 걷는 아이가 당신의 아이, 혹은 조카라고 생각해 보세요. 과연 불 붙은 담배를 들고 그대로 걸어갈 수 있는지.
당신들 담배는 고은양 눈높이에 있습니다.

고란 기자

<사진>
1) 먹을 것이라도 발견? 먹을 것에 대한 집중력은 우주 최강 고은양
2) 뒤집다가 힘든지 그대로 고꾸라져 다시 잠이 든 고은양
3) 웬일로 (문센) 수업에 초집중하는 고은양. 아빠 닮아 모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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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