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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엔 가스, 한·일과는 경협 … 러, 아시아로 중심이동

아시아로 향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보가 거침없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유럽연합(EU) 등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항해 아시아로의 중심 이동을 가속화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장가오리 중국 부총리가 1일 러시아 야쿠티야공화국에서 열린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공사 기공식에 참석했다. [야쿠트스크 신화=뉴시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일(현지시간) 극동 러시아 야쿠티야 공화국에서 첫 삽을 뜬 ‘시베리아의 힘’ 파이프라인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2019년부터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중국 등 동아시아로 실어 나를 총 연장 4000㎞의 이 가스관 기공식에서 푸틴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가스관)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고 외쳤다. 2012년 9월 “러시아가 동아시아 국가”임을 선포한 후 세운 가장 큰 이정표다. 관영 ‘러시아의 소리’ 방송은 “러시아가 항상 유럽에 고개 숙여야 한다고 여기던 자들의 오판을 증명했다”며 “계속해서 유럽이 공격한다면 러시아는 가스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아시아로 시장을 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의 노력에 힘입어 러시아와 아시아 주요국 간 관계는 사상 최고라고 할 만하다. 10년 넘게 끌어온 4000억 달러(약 405조원) 짜리 사상 최대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5월 체결한 러시아와 중국은 최근 달러를 배제한 루블-위안화 결제 체제 확립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해 동해에서 해군, 우랄산맥에서 육군합동훈련을 펼친 데 이어 올 5월엔 중국의 핵심 분쟁지역인 동중국해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에 나란히 참석한 푸틴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시아 안보협력기구’ 창설을 주창했다. 미국을 겨냥한 행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해 4월 총리론 10년 만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이후 5차례 푸틴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입국인 일본은 에너지 확보에 목을 메고 있고 아베는 러시아와 분쟁 중인 북방 4개 섬 반환을 치적으로 삼으려 한다. 주요 7개국(G7) 멤버인 일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는 푸틴은 4개 섬 중 2개를 내놓을 수 있다며 일본을 유혹하고 있다. 서방의 요청으로 발표한 일본의 제재 러시아인 명단엔 푸틴의 측근들이 모두 빠졌고 미국이 요청한 러시아 현지 자동차 공장 운영 중단도 없었다. 양국이 추진 중인 푸틴의 올 가을 방일이 성사된다면 서방은 적잖은 타격을 입는 셈이다. 싱크탱크인 평화분쟁연구소(IPCS)는 “러시아는 일본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 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올해 러시아와 무비자 협정이 발효됐다. 박근혜 정부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7월 말 피터 해럴 국무부 부차관보를 한국에 보내 대러 제재를 촉구했지만 ‘미·EU와 같은 수준의 제재는 어렵다’는 입장만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가 심각해지며 러시아와 공식 접촉을 일시 중단했지만 대러 제재 동참은 삼간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북한과도 4월 무역대금을 달러 대신 루블화로 결제키로 하고 연해주에 북·러 합작 농장을 개설했다. 러시아 군악단이 북한 전국 순회공연을 펼쳤고 평양~모스크바 관광열차 개통이 추진되고 있다. 고재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러시아가 북한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건 한·북·러와의 교류 확대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인도는 중국에 이어 2번째로 러시아제 무기를 많이 수입하고 있다. 올해엔 합동 해·공군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인도는 러시아의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도 협상 중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달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뉴델리를 방문한 날 러·인 간 ‘달러 대체 결제 체제 개발’ 준비를 발표했다. 베트남과는 최근 탄화수소 추출과 LNG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는 베트남 해군과 원자력 에너지도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과 비교된다. 미국이 중동·우크라이나 사태에 묶여 괄목할 만한 아시아 재균형을 펼치지 못한 데 반해 러시아는 아시아 국가들이 일방적으로 서방을 편들지 못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미국이 동맹국과의 군사·안보 강화에 올인한 반면 러시아는 에너지 등 경제적 접근이 주다. 미국은 다른 패권국(중국) 출현을 막는다는 목적이지만 러시아는 스스로 아시아 국가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1997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없이 제국이 되기를 노린다면 전적으로 아시아적인 제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푸틴이 이를 실현하고 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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