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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 재단에 프라다는 없다 … 백지수표 주는 모기업 있을 뿐

1일 만난 제르마노 첼란트(73) 이탈리아 프라다 재단 관장은 “모기업과의 분리, 불가능에의 도전, 세상을 다른 언어로 움직이려는 시도 등이 20여 년간 프라다 재단의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우치아가 말했죠. ‘당신들이 잘할 만큼 주겠다. 그게 예산이다. 나쁜 데 쓰지만 않는다면.’”

 프라다 재단 제르마노 첼란트(73) 관장에게 재단 예산을 묻자 돌아온 답변이었다. 이탈리아 패션 기업 프라다 창업자의 손녀이자 수석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남편 파트리지오 베르텔리와 함께 1993년 밀라노에 현대 조각을 위한 전시 공간을 열었다. 2년 뒤 프라다 재단으로 재정비하며, 미술사가이자 큐레이터인 첼란트를 관장으로 영입했다.

 첼란트는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세계 미술계의 주요 조류가 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가난한 예술) 운동을 이끈 이론가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현대미술 부문 수석 큐레이터(1989∼2008), 제47회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1997)을 역임했다. 내년 밀라노 엑스포 예술감독이기도 하다.

 1일 오후 서울에 도착한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옷과 로퍼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터키석이 박힌 커다란 팔찌와 반지가 유독 눈에 띄었다. “40년 넘게 나바호·주니·호피 등 미국 인디언 관련 물품을 모으고 있다. 다른 문화, 파괴된 문화, 문화의 진짜 기원을 찾는 일에 관심이 많다”며 “거북선을 발명한 한국의 장군(이순신)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 프라다 재단의 성과를 요약하자면.

 “재단은 예술·철학·영상·건축 등을 통해 세상을 좀더 다른 언어로 움직이겠다는 미션을 갖고 창설, 20여 년간 활동했다. 미우치아는 기업의 제품 생산과 재단의 활동이 뒤섞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모기업으로부터 아무런 요구를 받지 않고 완전히 독립적으로 일한다. 회사일과 결합되지 않았다는 게 성공 비결이다. 당연한 듯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일이다.”

 -‘아르테 포베라’ 운동의 좌장이었다. 70년대 한국서 일어난 단색화가 요즘 국제적 재조명을 받고 있다. ‘가난한 예술’이라는 면에서 통하는 데가 있다.

 “그렇다. 50, 60년 전의 이 운동은 역사가 됐고 계속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가난하다’는 것은 물·모래·쓰레기 등 뭐든 기꺼이 예술 재료로 사용하며, 돈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노동 계급 출신 예술가들이 많았다. 캔버스를 살 돈은 없지만 작품에 혼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와 함께, 미술 시장의 제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는 뜻도 있었다. 60년대 정치적 상황과도 맞물렸다. 당시 우리는 아버지에 반기를 든 세대였으니까.”

 - 간단히 답해보자. 당신에게 미술은.

 “내 삶 자체, 내 생각의 원천이다.”

 - 그렇다면 당신에게 전시는.

 “사물과 대화하는 방법. DJ가 모든 악기를 다루듯, 큐레이터는 쇼의 DJ로 활약해야 한다.”

 삼성미술관 리움 10주년-광주 비엔날레 20주년 기념 공동포럼을 계기로 내한 한 그는 4일 광주서 열리는 2차 포럼을 이끈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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