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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의 책상] “공부 힘들다는 생각, 버렸으면 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 재미있는 건 영어예요.”

경기외고 전교 1등 왕정민(2년)양 입에선 연신 ‘이건 좋고, 이건 재밌고, 이건 자신있다’는 말이 쏟아졌다. 머리 좋은 우등생 특유의 자신감이냐고 물었더니, “저 아이큐 별로 안 높아요. 싫어하는 걸 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순 없잖아요. 성적 올리려면 먼저 공부를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해요”란 명답이 나왔다.

기숙사 자습실의 정민이 책상 위엔 친구들보다 교재가 훨씬 적었다. 교재 안에는 잡다한 필기 없이 핵심 내용만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단촐한 책상에 숨은 공부법을 찾아봤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왕정민양의 학교 자습실 책상 위에 수학 교재인 『개념유형』이 두 권 있다. 정민이는 “주 교재는 세 권을 사서 한 권은 예습과 필기용, 나머지 두 권은 반복풀이용으로 쓴다”고 말했다. 『수학의 바이블』은 고1 때 보던 교재이고, 『수학의 정석』은 요즘도 간간이 펼쳐보는 참고서다.

○ 하루 일과
평일


6시30분 기상
6시30분~7시20분 등교 준비, 전원 퇴소
7시20분~7시40분 자습실에서 아침식사(빵·우유) 등 자유시간(복습)
7시50분~11시50분 등교 후 오전 수업
11시50분~12시50분 점심시간(방송반 엔지니어라 점심 방송 돕는 등 동아리 모임 후 식사)
13시~15시50분 오후 수업
16시20분 청소 및 종례
16시20분~17시30분 자습(동아리 활동이나 공연 연습으로 자습 빠질 때 많음)
17시40분~18시30분 저녁 식사(기숙사가 열리기 때문에 식사 후 샤워하고 옷 갈아입기 등)
18시30분~21시 야간 자습
21시~21시30분 간식
21시30분~23시30분 야간 자습
24시~24시30분 저녁 점호
익일 1시 가방 정리 후 취침

주말, 공휴일

8시 기상
8~10시 씻고 아침식사, 외출 준비
10~12시 필라테스
12시20분~13시 집 도착. 씻고 휴식
13~14시 점심식사
14~20시 자습(수학 문제 풀이나 신문 스크랩 등 학교 수행평가, 피아노 연습 등)
20~23시 저녁 식사 후 가족과 영화 감상을 하거나 쇼핑 등
23시 집 도착 후 씻고 휴식
24시 취침

책상 위 교재

국어: 학교 자체 교재, EBS N제(EBS) 영어: 학교 자체 교재, 씨뮬(골드교육), 어휘끝(쎄듀) 수학: 개념유형(비상교육) 3권, 수학의 정석(성지출판), 수학의 바이블(이투스)


정민이가 한국사 ‘셀프 테스트’를 위해 적어둔 키워드(위). 수업 중 나눠준 영어 지문은 스무 번 이상 반복해 본다.
정민이는 스스로 “공부량이 적고 속도는 더디다”고 평했다. 시험 기간에 보면 정민이는 한 과목도 제대로 안 끝냈는데 다른 친구들은 “아직 한 과목이 더 남았다”고 걱정하는 일이 시험 때마다 반복된다는 것이다.

 영어를 한번 예로 들어 보자.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영어 지문이 60개라면 대부분의 학생은 1번부터 60번 지문까지 전체적으로 두세 번 훑어보며 독해하고 모르는 단어를 암기한다. 정민이는 다르다. 1번 지문을 읽기 시작하면 내용 파악, 단어와 문법 확인, 단락 구성 요소, 주제문 위치까지 철두철미하게 분석한다. 읽고 고민하고 다시 읽기를 20번 이상 반복한다. 이런 식으로 한번 공부를 마치면 시험 전까지 다시 들춰보지 않는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한 단원 공부를 시작하면 목차만 보고도 관련 내용을 막힘없이 줄줄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셀프 테스트를 한다. 키워드와 숫자만 적어놓고 빠짐없이 전부 이해하고 암기했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사라면 일제강점기 관련 단원을 공부하면서 노트에 ‘통치방식’이라고 적고 바로 옆에 숫자 3만 표시한다. 공부를 마친 뒤 이 단어와 숫자만 보고 전체 내용을 떠올려보는 식이다. 못 외운 부분이 있으면 형광펜으로 표시하고 다시 공부한 뒤 셀프 테스트를 또 거친다. 이를 통과해야 비로소 다음 단원을 펼친다.

 이렇게 물샐틈 없이 공부하는데 정민이가 스스로 공부량이 적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정민이는 “보는 교재 수가 친구들보다 훨씬 적다”고 말했다. 정민이는 문제집을 거의 풀지 않는다. 내신 시험을 앞두고서도 과목별로 주 교재 하나만 본다. 담당 교사가 교과서로 수업하면 교과서만 보고, 프린트물로 수업하면 프린트물만 본다는 얘기다. 이유가 있다. “내신 시험은 학교 선생님이 출제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이 곧 족집게 교재”라는 설명이다. 정민이는 “가끔 친구들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문제를 들고 와서 물어볼 때가 있다”며 “이런 내용은 수업 시간에 다룬 적이 없어 시험에 나올 리가 만무한데 그 문제 푸느라 고민하는 게 내 눈엔 시간낭비로 비춰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 교재 한 권에 집중하는 것도 물론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집을 통해 다양한 문제 유형에 익숙해지는 게 효과적인 공부법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수업 교재 한 권만 보고 전교 1등을 유지하는 게 가능한 걸까. 정민이는 “주 교재라는 건 그 안에 교과서 주요 내용과 수업 시간에 한 모든 필기,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은 참고할 만한 내용까지 한 권에 모두 정리해 놓았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말이 한 권이지 수업 교재의 주요 맥락을 기준 삼아 ‘나만의 교재’로 탈바꿈시켰다는 얘기다. 정민이는 “핵심 내용을 모두 한 권에 옮겨 놓지 않으면 시험 기간에 이것저것 찾아 공부할 게 너무 많아 힘들어진다”고 했다.

 이런 ‘나만의 교재’ 전략은 공부 고수들이 많이 하는, 널리 알려진 학습법이다. 하지만 정작 따라하려고 해도 어떤 내용을 정리해야 할지 몰라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정민이는 “수업 시간에 쓰는 교재 내용과 수업 시간 선생님의 설명을 기준으로 삼은 뒤 그 내용에 심화·보충할 내용을 옮겨 적으면 쉽다”고 노하우를 설명했다.

 교재 하나에 모든 내용을 옮겨 적었다고 하니 책 안에는 빈틈없이 필기가 빼곡히 돼 있을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민이 교재를 펼쳐보면 이런 기대와 달리 다소 휑한 편이다. 필기 분량이 적은 데다, 다양한 색깔 펜으로 알록달록 정리한 여느 여학생들과 달리 검정색 볼펜으로 주로 정리하고 형광펜은 두가지 색만 사용해 중요한 내용을 간간히 표시해놓은 게 전부다. 정민이는 “가끔 친구들이 내 교재 빌려갔다가 돌려주면서 ‘너 왜 필기 안했냐’고 물을 때가 많다”며 웃었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정민이의 필기 분량이 적은 건 예습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수업 전 교재를 미리 보고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을 표시한 뒤, 교사가 그 부분을 설명할 때만 필기에 집중하는 거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라도 교사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거나 또다른 해법을 알려주면 그건 적는다. 정민이는 “필기는 받아쓰기가 아니다”며 “수업을 들으면서 나에게 꼭 필요한 내용만 간추려서 적는다”고 했다.

 국어나 영어, 사회는 정민이의 ‘한 권만 통달’식 공부법으로 고득점을 받은 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다양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학 과목에서도 이같은 공부법이 통할까. 정민이는 “수학 역시 교재나 문제집을 여러 권 푸는 것보다, 같은 교재를 여러 번 푸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민이는 수학 교재가 세 권 있는데, 각기 다른 게 아니라 모두 똑같은 거다. 한 권은 예습 겸 주 교재로 쓴다. 정민이는 수업 전에 문제를 미리 다 풀어보는 게 원칙이라 예습용 교재가 꼭 필요하다. 수업 시간에도 이 교재를 사용한다. 교사가 모든 문제를 다 풀어주지 않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다룬 문제는 따로 형광펜으로 표시하고, 예습할 때와 다른 풀이법이 나오면 추가로 필기해 이걸 주 교재를 삼는다.

 다른 두 권은 반복 풀이용이다. 문제를 풀다 막히거나 교사가 알려준 새로운 해법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해답지 대신 주 교재를 다시 펼쳐본다. 정민이는 “선생님이 강조한 문제에는 중요한 수학적 개념이 녹아 있는 것”이라며 “이런 좋은 문제를 표시해놓고 반복해 풀다보면 다른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된다”고 말했다. 굳이 문제집을 여러 권 바꿔가며 중요하지 않는 문제에 매달리느니, 핵심 문제를 통달하는 게 수학에서도 효과적인 학습법이란 주장이다.
왕정민 양
 정민이는 “평소 꼭 알려주고 싶었던 공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공부가 힘들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는 “후배들 공부를 도와주다보면 ‘이 과목은 이래서 어렵고 저 과목은 저래서 싫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많다”며 “어차피 해야 하는 공부니까 일부러라도 ‘이건 좋고, 저건 재밌다’는 식으로 마음가짐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노트 정리에만 온통 시간을 뺏기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영어 지문을 공부한다며 본문 내용을 노트에 다 옮겨 적거나, 시험이 닥쳤을 때 ‘나만의 교재를 만들겠다’며 필기 내용을 그제서야 옮기는 건 바람직한 공부법이 아니란 얘기다. 그는 “정리 자체가 공부가 될 순 없다”며 “수업 시간에 교재에 바로바로 정리하고 평소 자습 시간에 미리 예습과 복습을 한 내용을 표시해 놓는 걸 거르지 않아야 시험 기간에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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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