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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벌써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30대 주부



01 남편은 왜 명절만 되면 달라지는가

(명절 스트레스로 스트레스 클리닉을 찾은 30대 주부) 워킹맘입니다. 세 살 딸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아이 키우며 직장 다니는 게 쉽진 않지만 남편이 그런대로 잘 이해해주고 집안 살림도 도와 주는 편이라 큰 문제는 없습니다. 평소엔 고부 갈등도 없습니다. 그런데 명절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2남 1녀 중 차남인 남편을 시어머니가 유독 예뻐합니다. 그래서인지 시댁에 가면 내 남편이란 존재는 사라지고 시어머니의 아들만 남는 것 같습니다. 평소 잘하던 남편이 왜 갑자기 변하는지 궁금합니다. 게다가 시어머니의 편애를 질투라도 하는 건지. 사사건건 우리와 비교하며 잘난척 하려드는 손위 동서 때문에 피곤합니다.

(여자마음 잘 아는 닥터 윤) 집안일 잘 돕던 남편이 명절에 본가 가면 변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요.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미혼여성 239명을 대상으로 ‘결혼 후 가장 우려되는 점’에 대해 설문을 했더니 아들만 귀한 시어머니가 1위였습니다. 명절·제사 등 연례 행사가 2위였고요. 결혼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명절 스트레스를 걱정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5위가 좀 특이합니다. 바로 ‘결혼하면 갑자기 효자되는 남편’입니다.

 우선 왜 남자는 결혼하면 갑자기 효자가 되는지 알아보죠. 실제로 남자는 결혼하면 갑자기 철이 들면서 부모를 챙기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어머니를요. 딸은 같은 여성이기에 미혼 시절부터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아들은 나이 들어서도 어머니 마음에 공감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결혼, 다시 말해 어머니와 떨어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느끼는 겁니다. 당연해서 몰랐던 어머니의 사랑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거죠.

 이렇게 철이 들어 효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거꾸로 철이 없어져 효자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명절 때 본가에 가서 어머니 얼굴을 보는 순간 과거의 귀여운 아들로 퇴행하는 겁니다. 어머니 입장에선 반갑겠지만 아내가 볼 땐 남편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아 섭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손위 동서가 질투까지 하니 힘들 수밖에요. 명절은 사랑하는 가족이 오랜만에 다 함께 모이는 자리입니다. 사랑은 따뜻하기도 하지만 전쟁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더 받고 싶은 마음의 전쟁 말입니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전쟁에 불이 붙습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부모 사랑을 더 받으려는 형제의 경쟁, 그 형제의 아내가 가세한 동서 간의 질투 등 무의식에 자리잡은 복잡한 감정이 장난이 아닙니다. 평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다가 명절에 터져 나오기 쉽습니다.

02 진정성이 왜 안 통할까

그렇군요. 아직 명절이 며칠 남았는데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사실 지난해까지는 명절 1~2주 전부터 좋은 마음으로 시댁 식구들을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기에 내가 진정성을 갖고 친절하게 대하면 상대도 똑같이 대해 줄 것이란 기대도 했었죠. 그런데 올해는 이런 마음을 먹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섭섭한 일이 몇 번 생기다 보니 노력하기도 전에 생각만 해도 먼저 지칩니다.

정치인들은 진정성이란 단어를 많이 씁니다. 진정성이란 말 그대로 진실함이 담겨 있는 성질을 말합니다. “기계적 친절이 싫다”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진정성 없는 친철은 싫다는 얘기겠죠. 사실 진정성 없는 친절은 남보다 나에게 더 해롭습니다. 친절은 내 마음에 진정성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베푸는 친절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억지로 하는 친절은 거꾸로 내 마음 속 에너지를 다 태워 버립니다. 친절은 화수분처럼 계속 샘솟는 게 아닙니다. 내 에너지가 고갈되면 가까운 가족에게 웃음 지어 보이는 것조차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감정 노동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만약 내 뇌가 지쳐 오늘 진정성 있게 친절할 수 없다고 느껴지면 ‘노’를 하는 용기를 내야합니다. 내 뇌가 지쳤을 때는 예의상 하는 맞장구 등 억지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 쉽게 짜증내고 분노합니다. 뇌는 더 지치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만 나빠집니다. 이럴 땐 차라리 미안하지만 못 가겠다고 하는 게 내 마음과 주변 모두를 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에너지가 충전됐을 때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를 항상 친절하게 대하려면 내 마음을 혹사해야 하니까요. 명절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 에너지가 고갈됐다 여겨지면 억지로 힘내려 하지 말고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03 ‘노’하는 용기가 정말 필요할까

싫은 걸 싫다고 하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명절에 시댁에 가기 싫다고 내 맘대로 안 갈 수 있을까요. 내가 ‘노’하면 갈등만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어차피 가야하는데 명절 스트레스를 잘 이겨낼 방법은 없을까요. 갈등을 줄이는 대화법이 있지 않을까요.

음. 개인보단 집단의 가치를 중시하는 마음이 우리에겐 존재하죠. 장점이기도 하지만 행복을 위해서라면 개인과 집단의 가치 간에 균형이 필요합니다. 나만 생각해 ‘노’를 남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24시간 편의점처럼 쉬지 않고 누군가를 배려할 수 있다는 과신도 위험합니다.

명절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몇 가지 팁을 알려드리죠.

① 기분 좋게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해 봅시다. 예컨대 요즘 업무로 지쳐 집에서 손님 모실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으면 남편과 상의해 식사는 외부에서 하고 다과만 집에서 하는 방안을 찾는 거죠.

② 과식과 운동 부족으로 뇌가 더 지치는 게 명절 연휴입니다. 평소라면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먹으면 뇌는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먹으면 복부 비만만 일으킵니다. 가벼운 산책이나 등산 등 신체 운동, 그리고 독서나 영화 관람같은 멘탈 운동은 뇌의 에너지를 충전해 줍니다. 중요한 건 숙제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운동도 억지로 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옵니다.

③ 명절에 가족이 오랜만에 모이면 평소 못한 말을 직설적으로 하기 쉽습니다. 결혼하라는 말 듣기 싫어 명절에 집에 가기 싫다는 미혼자가 꽤 있죠. 상대를 위해 하는 말도 이렇게 정작 상대에겐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효과적인 대화법이 열린 질문과 경청입니다. 예컨대 ‘공부해’ 는 닫힌 질문입니다. ‘요즘 어떤 과목이 재미있니’ 처럼 상대방이 긴 대답을 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게 열린 질문입니다. 열린 질문은 상대가 날 배려한다는 느낌을 줘 속내를 잘 표현하게 합니다. 이 질문을 던진 후엔 답변을 경청합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렇게 열린 소통은 서로 공감할 수 있게 해 감성 에너지를 충전해 줍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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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