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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냄비근성과 컵라면 장관

비닐을 벗기고 컵 안쪽 눈금까지 물을 부었다. 간편하고 빠르고 저렴한 식사로 컵라면보다 좋은 게 어디 있을까. 한 젓가락 입에 넣는 순간. 그를 ‘컵라면 장관’이라 했던가. 국가적 재난 상황이라 급히 달려오느라 끼니도 못 챙겼는데, 긴급 상황 때문에 자리도 못 뜨겠고. 그때 체육관에서 누군가 내어 준, 문제의 그 ‘팔걸이 의자’에 앉아서, 컵라면 먹다가 국민들에게 뭇매 맞은 사람. 해물탕도 아니요 그렇다고 달걀 넣은 냄비라면도 아닌 것을. 라면 먹는 사진과 함께 ‘위기상황에서 정부의 무능한 대처’란 기사까지 있었다. 무능이라. 무능한 건, 라면 먹는 행동이 아니라, 사고 당시의 허술한 ‘초동 대처’와 ‘구조 컨트롤타워’ 같은 것 아닌가. 본질은 빼고 다른 걸로 흥분했다.



 유병언 한 명을 잡기 위해 검경 수천 명씩 동원해 수색을 벌이고, 반상회에서 신고 독려도 하고, 군 병력까지 동원해 작전을 벌인다며 설쳐대던 바로 그 순간. 그는 매실 밭에서 시체로 썩어가고 있었다. 쉽게 흥분할 줄만 알았지, 기껏 세웠다는 작전도 작전다운 작전이 아니었나 보다.



 우리나라 사람은 냄비근성이 있다 한다. 큰 사건 터질 때마다 우르르 흥분하고, 시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잊어버리고.



 아마 냄비 중에서도, 금방 끓고 금방 식는, 누런 라면 냄비일 게다.



 2008년에 일어난 조두순 사건. 워낙 충격적이라 다들 기억할 터인데. 등교하던 8살 나영이를 교회 화장실로 끌고 가서 수차례 강간하고, 성고문을 통해 창자가 밖으로 나오니까, 장기를 막대기로 몸속에 집어넣어 장기까지 썩게 만든 조두순. 12년 형을 받고 6년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으니, 6년만 지나면 그는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다. 나영이는 벌써부터 그가 나올까 봐 두려워하며 잠도 못 자고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는데.



 그 사건. 그때도 모든 언론이 총동원되어 ‘경악, 충격’ 흥분했었다. 하지만 그가 몇 년형을 받고 언제 출소하는지 지금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그 당시에 흥분했던 만큼 아동 성범죄자만은 몇 년 형을 받았고 언제 출소할 건지, 우리 모두 관심 좀 갖자. 무관심한 틈을 타서 감형이든 보석이든, 머지않아 다시 거리를 활보할까 겁나서 하는 말이다.



 이제부터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조금은 ‘쿨~하게’ 조금은 덜 흥분하고 조금은 더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목소리 큰 사람 하나도 안 무섭듯이, 쉽게 흥분하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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