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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식용유 대표 브랜드 ‘해표’ 키워 한국 식품가공업 글로벌화 기여

중앙포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이 30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73세.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거쳐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 기업인이었다. 1967년 동방유량에 입사해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 신덕균 명예회장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66년 신덕균 회장이 세운 동방유량은 당시 중견 식품기업이었다. 고인은 동방유량을 종합식품회사로 성장시키기 위해 부단히 정진했다.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전경련 부회장 맡아 유통발전 주도
신 전 회장은 84년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85년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 88~97년에 한국대두가공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식품가공산업의 발전을 위해 애썼다. 89~2001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경제인의 리더로서 제조산업·유통산업·수출산업의 발전과 국제 교류를 주도했다. 특히 대한민국 고도 경제성장의 어두운 그림자인 환경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99년부터 2001년까지 전경련 환경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환경과 관련한 경제정책과 법규를 개선하는 데 앞장섰다. 고인은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97년부터 99년까지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신문 회장을 역임하며 언론 발전에도 기여했다.

신 전 회장의 활동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고인은 전세계 경영인들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성했고, 미국에서 한국연구가 활발해지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70~80년대엔 전세계 젊은 최고경영자연합회인 ‘국제 YPO’의 본부 집행위원을 지내며 한국 경제의 글로벌화를 위해 노력했다. 89년에는 고인의 이름을 사용한 M.S SHIN 펀드를 조성해 모교인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에 한국 연구를 담당하는 ‘한국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데 일조했다. 당시는 미국 대학 내에 한국학과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한국관계 연구가 부진하던 때였다. 한국연구센터가 설립되면서 한국 경제·정치·외교 분야의 국제적 연구가 활성화됐다.

신 전 회장은 96년 회사 이름을 신동방으로 바꾸고 제2의 창업을 선언한 뒤 고객위주·사회공헌·합리적 경영을 앞세우며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질적 발전을 추구했던 사업 확장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룹의 역량을 투입해 시도한 미도파 인수합병이 무산되면서 위기에 몰렸다. 신동방은 97년 3월 대농그룹의 미도파에 대한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지원을 받은 대농그룹 쪽의 방어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어 외환위기가 불어닥치고 고금리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1조원 가까이 늘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신동방은 이후 전분당사업을 CJ에 매각하고 식용유 부문은 사조그룹에 팔았다. 사조로 넘어간 동방유량의 ‘해표’는 지금까지 식용유 대표 브랜드로 남아 있다.

10여 년 전 대장암 발병 악화
신 전 회장은 한때 노태우 전 대통령과 사돈관계였다. 하지만 95년 대검 중수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신 전 회장에게 흘러갔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대법원은 2001년 검찰이 제기한 추심금 청구소송에서 신 전 회장에게 230억원을 납부하라고 판결했다. 고인은 지난해 자신이 80억원을 내놓고,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씨가 150억원을 납부하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신 전 회장은 10여 전부터 앓던 대장암이 뇌와 폐 등으로 전이돼 상태가 나빠지면서 미국과 국내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왔다. 유족은 부인 송길자씨 외 2남 1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02-3410-6917). 발인은 9월 2일. 장지는 경기도 성남 분당메모리얼파크.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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