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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험 활발한 서울소년원생들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서울소년원생을 대상으로 시(詩) 수업이 열렸다. ‘나’를 주제로 시를 써보는 시간, 아이들이 펜을 쥐고 종이와 씨름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금부터 10분 시간 줄게요. ‘나는 ○○다’ 안에 들어갈 낱말을 떠올려 보세요.”

'난 자석' '난 배움이다' 시 쓰며 자아 찾기 수업
아이들 삶이 곧 시네요



 지난 22일 문인들의 집필실이 들어선 서울 연희동의 연희문학창작촌. 류성훈 시인이 밤톨머리 남학생 10명을 앉혀두고 문학 수업을 시작했다. 주제는 ‘자신의 삶 속에서 시(詩) 찾기’다. 10분이 지났을까. 앉은 순서대로 각자 발표하는 시간이 됐다. “나는 ‘배움’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통해서 배우기 때문이다.” “나는 ‘자석’이다. 친한 친구들과 붙어 다니고 안 친한 친구들과는 안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앳된 얼굴에 솜털과 여드름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모두 똑같은 모양의 반소매 상·하의 운동복을 입었고 신발까지도 똑같았다는 점이 또래 아이들과는 달랐다. 그리고 7명의 교정직 공무원이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경기도 의왕에 위치한 고봉중·고등학교 재학생이다. 서울소년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소년원 측이 일회성으로 아이들을 외출시킨 것은 아니다. 이곳은 올 초부터 이미 내부적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해 아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지난 1월 대학로 연극배우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소년원 안에 연극동아리가 개설됐다. 3월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문 심리상담사가 방문해 시 수업을 통해 심리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날 이뤄진 시 수업은 지난달부터 서울소년원이 서울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진행 중인 ‘서울, 문화를 걷다’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소년원 바깥에서도 아이들이 문화예술 행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서정주(고봉중·고등학교 교감) 서울소년원 교무과장은 “아이들 대부분이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다. 지금이라도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아이들이 재능이나 끼를 발견해 나중에 사회활동을 원활히 해나가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분출하고 적성을 찾는 출구가 되기도 한다. 지난 4월 소년원을 퇴원한 이응빈(16)군이 대표적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던 이군은 소년원 내에서도 못 말리는 악동이었다. 그런데 소년원 합창단 오디션을 계기로 이군의 음악적 재능이 드러났다. 당시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네순 도르마’를 불렀는데 그가 가장 인상깊게 봤던 영화 ‘파파로티’에 나오는 노래였다. 그는 현재 인문계 고교에 진학해 음악 레슨과 독일어 수업을 이어가며 성악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군은 “솔직히 거기 있으면 시간 버리지 않느냐. 그런데 거기서 제가 하고 싶은 걸 찾았다. 덕분에 다시 범죄로 안 빠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서울소년원생들로 구성된 ‘고봉가면문화예술단’이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노래·마술 등의 장기를 선보였다. [사진 서울소년원]
 이날 시 수업 역시 아이들은 진지하게 참여했다. 기성 시인의 시를 몇 편 함께 낭독했고 각자 짧은 시를 써보는 시간도 가졌다. 시 수업에서 만난 이지성(가명·18)군은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기억에 남는 시로 꼽았다. 배우 김윤석처럼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는 연기자를 꿈꾸는 이군은 “자아가 무엇인지,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답했다. 앞서 자신을 ‘배움’에 빗댄 신준수(가명·19)군은 그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왜 ‘배움’이라고 했느냐면요, 마술로 공연 봉사를 다니는데 제가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선생님들이 ‘너한테 배운다’면서 칭찬해 주시거든요.” 아이들이 가면을 쓰고 각지로 공연 봉사 다니는 ‘고봉가면문화예술단’ 얘기다.



 서울소년원 측은 내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바깥나들이 기회도 늘린다는 방침이다. 보호자도 이런 행사가 반갑다. 27일 외출을 나온 아이와 함께 대학로에서 뮤지컬 ‘그리스’를 관람한 한 부모는 “우리 애도 뮤지컬반에서 활동을 한다. 아이의 관심사가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한나절 수업을 진행한 류 시인은 “문학이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들의 호응이 좋았고 저도 깜짝깜짝 놀랄 만한 답변이 많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소년원 측은 학생들이 쓴 시 10편과 소년원 내부 시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쓰인 시들을 묶어 10월에 작품집을 펴낼 계획이다.



위문희 기자



◆소년원 = 가정법원 또는 지방법원 소년부에서 보호처분결정을 받아 송치된 19세 미만 소년들에게 교정 교육을 시키는 곳이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볼 수 있다. 전과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원생들 ‘가면’ 쓰고 재능기부



서울소년원 학생들도 마술·노래 등의 재능기부를 한다. 단 ‘가면’을 쓰고서다. 아이들의 신상정보 노출을 막기 위해 소년원의 한 직원이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 ‘고봉가면문화예술단’이 탄생한 배경이다.



 지난해 12월 첫 공연에 나선 이후 30여 회 공연을 다녔다. 소년원 내에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아이들이 마술부터 가곡·가요·트로트 등을 연습해 무대에 선다. 처음엔 얼굴 전체를 다 가리는 가면을 썼지만 지금은 눈 부분만 가리는 가면을 착용한다. 반짝이 의상과 색안경·모자 등으로 멋을 내고 공연에 나서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충북 음성 꽃동네를 비롯해 노인복지관·병원·군부대 등을 방문했다. 서정주 서울소년원 교무과장은 “받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주는 즐거움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호응이 뜨겁자 서울소년원 측은 지난 3월 ‘매직엔터테인먼트’ 과정을 정식 개설했다. 전남의 한 사립전문대와 양해각서(MOU)를 맺어 마술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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