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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 교수 "김우중, 경제관료에 맞서다 장렬하게 희생…."

[머니투데이 최우영기자 young@]


['김우중과의 대화' 출판 기자간담회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세계를 경영한 민족주의자' 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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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학교 교수가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출판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4.8.26/뉴스1 <저작권자 &copy;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78)의 '입'을 자처해 대화록을 출간한 신장섭 국립싱가폴대 교수가 "김우중 회장은 IMF와 미국의 논리에 따른 경제관료들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민족주의자"라고 지칭했다.

신 교수는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출판간담회를 열어 김 전 회장과 4년에 걸쳐 서울과 하노이에서 나눈 대우그룹 해체 비화를 공개했다.

신 교수는 "김우중 회장은 세계를 경영한 민족주의자로서 향락산업, 소비재산업 등에 손대지 않는 등 돈만 추구하는 기업인들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며 "전경련 회장으로서 구조조정을 골자로 한 IMF 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강하게 주장하다가 정부와 충돌해 대우그룹이 몰락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대우그룹 몰락에 이어 2005년 재판에서 23조원의 추징금을 부과해 그룹 몰락의 희생자인 김 전 회장은 범죄자로 인식돼 '부관참시'됐다"며 "말도 안되는 추징금을 두고 가족 및 친지에게 받아내겠다면서 '김우중 추징법'을 명명해 인격살인하는 등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 기업인을 3번씩이나 죽인 셈"이라고 DJ정부 시절 경제관료들을 성토했다.

신 교수는 "추징금은 본디 횡령금액 빼돌린 걸 내는 것인데 대우는 23조원이 다 그룹 안에서 돌고 돌았음에도 개인들에게 23조원 추징금을 부과했다"며 "대법원조차 증거가 없다고 인정하면서 징벌적으로 포퓰리즘 판결을 내렸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김우중 회장이 재기했으면 좋겠지만, 78세 노인이 사업을 다시 할 수도 없고 대우 사람들도 15년 동안 뿔뿔이 흩어졌다"며 "김 회장이 재기하는 건 대우그룹이 아닌, 대우인을 만들어내는 선생으로서 국가원로로서 재기하는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김 회장이 글로벌YBM을 만들어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건 젊은 사람들이 조그만 데(한국)서 치고받지 말고 세계를 상대로 경쟁해야 진취적인 비전이 생긴다는 뜻 때문이다"며 "김우중 회장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흔적, 그 흔적을 잘 남길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IMF 당시 5대그룹 중 대우만 유일하게 해체된 이유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신 교수는 "5대그룹 중 중화학공업을 크게 한 곳이 현대와 대우였고 기업구조조정 이슈가 나왔을 당시 삼성이나 LG와 달리 현대·대우는 부채를 조율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며 "대우중공업을 6개월만에 매각하라고 정부가 요구했는데, 그 중 일부였던 대우조선해양조차도 정부는 15년째 못 팔고 있지 않느냐. 무리한 요구였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대우자동차만 팔아도 현금 60억~70억달러 들어오면 정부가 규제하는 부채비율 200%는 당연히 맞출 수 있다고 낙관했는데, 1998년 하반기에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며 "현대그룹은 당시 '바이(buy)코리아'를 외치며 여러 차례에 걸친 증자로 부채비율을 낮췄다"고 말했다.

대우가 자산매각을 힘겨워한 이유에 대해서는 "김우중 회장이 '나는 전문경영인이지 기업 소유자가 아니다'는 마인드로 여러 차례 증자하면서 보유 지분이 낮아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어져 외국인투자자들이 사기 어려웠다"며 "GM과의 협상을 통해서 그룹 정상화에 대해 자신했지만, 경제관료들과 크게 충돌하며 밉보이고 찍혀서 결국 관료제 전통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관료들에게 저항하다 장렬하게 전사한 첫 번째 기업인이 됐다"고 밝혔다.

당시 대우자동차에 대해 "기술자립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한 경제관료들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신 교수는 "기술력 없고 경쟁력 없으면 팔리지 말아야 하는데 대우차가 잘 팔렸다"며 "1998년 현대자동차 57만2000대 수출할 때 대우차는 50만6000대 1999년 현대차 65만3000대 할 때 대우차는 60만4000대 수출했고, 내수시장에서도 1997년 30.3%, 1998년 33.2% 등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국기술로 만든 르망과 달리 대우차가 개발한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는 중국시장에서 GM이 성공을 거두는 계기를 제공했다"며 "기술력은 꼭 최첨단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타켓시장에 팔 수 있을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면 충분한데 대우차는 그 정도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우중 회장이 구조조정 하지 않아 대우그룹 몰락을 자초했다"는 강봉균 당시 경제수석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신 교수는 "금융시장에서 말하는 '자기예언적 실현'이 경제관료들에 의해 자행됐다"며 "문제 있을 것 같다고 하면 문제 생길까봐 금융권이 돈 빼가고, 돈 빼면 문제가 더 생기고 돈을 더 끌어가는 악순환이 일어났는데 경제관료들이 전혀 조심하지 않았다. 대우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시스템 때문에 단기차입금이 19조원까지 불어났던 것이다"고 말했다.

또 "대우가 살아남았다면 신흥국 출신 다국적기업으로서 세계1위 지위를 유지했을 것"이라며 "1990년대 세계경영 방침에 따라 신흥시장에 다 투자했는데 요즘 보면 세계경제가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 덕분에 다 먹고산다. 대우의 몰락은 그래서 더 아쉽고 그 비용은 한국경제가 다 뒤집어쓴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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