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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기, 잭슨홀 '쿠데타'

2012년 여름(7월)에 벌어진 일이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런던선언’을 내놓았다. “재정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 나를 믿어라!”. 직후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드라기 쿠데타’라고 지적한 경제 전문가의 말을 전했다. 이후 두 달 동안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선 치열한 암투가 벌어졌다. 드라기와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간 논쟁이었다. 독일 중앙은행은 ECB 최대 주주다. 그리고 그해 9월 ECB는 “재정위기 대상국 국채를 무제한 사들인다”고 발표했다. 순간 추락하던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 값이 안정됐다. 위기 전염이 차단된 것이다.


 런던 쿠데타 이후 2년 남짓 흘렀다. 이달 22일 드라기가 다시 해외 발언에 나섰다. 이번 무대는 미국 와이오밍주 휴양지인 잭슨홀이다. 이날 그는 중앙은행 총재 연찬회에서 “소극적인 대응이 빚을 위험은 과잉 대응에 따른 리스크를 능가한다”고 말했다. 지금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경제가 위태위태하니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유로존 경제는 2012년 때만큼이나 절박하다. 2009년에 이어 사실상 더블딥(침체 회복 뒤 재침체) 상태다. 재정위기 파장이 본격화한 2011년 1분기 역내총생산(GDP)을 100으로 봤을 때 현재는 그 밑이다. 실업률은 11.5%(6월) 정도다. 그리스·이탈리아 등 남유럽에선 디플레이션(만성적인 물가하락)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현재 유로존 상태를 1994년 일본과 비슷하게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 해는 일본 경제가 장기 디플레이션과 침체에 빠진 때다. 그래서 드라기의 잭슨홀 발언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WSJ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일제히 “드라기가 양적 완화(QE) 가능성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QE는 무제한 국채매입 만큼이나 독일 분데스방크의 반대가 강한 정책이다. 최근 FT는 “바이트만 총재가 QE를 용인하는 발언을 하긴 했다. 하지만 너무나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바이트만을 상대로 드라기가 잭슨홀에서 또 쿠데타를 일으킨 셈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과감하라! 마리오(Be Bold, Mario)’란 기사에서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가 반대하는 등 드라기의 ECB 내 입지가 재닛 옐런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에서 누리는 것만큼 탄탄하지 못하다”고 보도했다. 드라기는 2012년 런던 쿠데타 직후처럼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의 지지를 모아 바이트만을 압도해야 한다. 앞으로 몇 달 동안 ECB 안팎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독일 쪽에서 양적 완화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QE를 실시하면 유로존 구조개혁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와‘현재 독일 등의 국채금리가 1% 정도인데 QE를 해봐야 금리가 더 낮아지지 않아 소용없다’는 비판이다. 터무니 없는 지적은 아니다.

 드라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코노미스트지는 “드라기가 미국·일본·영국의 QE에서 얻을 교훈은 과감함”이라며 “일본이 2001년에 QE를 했지만 소극적이어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조언했다. QE 성공 여부가 드라기의 담력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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