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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한 '막장 드라마' 그만 … 이혼 소장 객관식으로

A씨(여)와 B씨는 지난 6월 이혼하면서 서로 인간성의 밑바닥을 확인했다. 2년간의 이혼소송에서 A씨가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20년 결혼생활 중 있었던 크고 작은 싸움은 각각 40, 50쪽에 달하는 이혼소장과 답변서에 담겼다. A씨는 이혼소장에 “고부 갈등으로 분가한 후 남편에게 ‘내 이름으로 보험을 들자’고 했다가 머리채를 잡혔다”고 적었다. 당시 남편이 친정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쓴 각서는 증거자료로 제출됐다. B씨의 답변서를 통해서는 아내 A씨가 코·가슴 성형수술을 하면서 오간 말다툼 등 시시콜콜한 사연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서울가정법원 내달부터 시범 실시
'머리채 잡혔다, 장모에게 무릎 … '
서술형 답변에 감정싸움 번져
혼인파탄 사유 선택형으로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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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가족이었던 남녀를 원수지간으로 만드는 소송’. 한국에서 이뤄지는 이혼재판의 모습이다. 결혼을 파탄에 이르게 한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책주의(有責主義)가 이혼소송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다 보니 폭로와 맞폭로의 공방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소소한 갈등까지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 인격 모독과 부모·형제·자매의 허물 들추기도 이혼소장에 기재되는 단골 메뉴다. 한 이혼소장에선 “장인이 ‘결혼하면 아파트와 대학원 학비, 유학 비용까지 대 주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내용을 다섯 페이지에 적어 놓기도 했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미성년인 자녀까지 동원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서울가정법원은 이 같은 이혼소송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다음달 1일부터 새로운 가사소송 모델을 시범 도입한다고 24일 밝혔다. 우선 이혼소장을 감정 중심의 서술형에서 사실 중심의 객관식으로 바꿨다. 현재는 정해진 양식 없이 부부가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를 적게 하고 있다. 한 법원 관계자는 “감정들을 걸러내지 않고 자기 입장만 주장하기 때문에 평범한 가정 불화도 ‘막장 드라마’로 둔갑하기 십상”이라며 “막상 재판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쿨(cool)하게 헤어지려다가도 소장을 받아 보고 감정이 크게 상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객관식 이혼소장은 혼인 파탄의 이유를 ▶부정행위 ▶상대 배우자 또는 부모의 부당한 대우 ▶3년 이상 생사 불분명 등으로 유형화해 제시한 뒤 이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을 경우 ‘기타’를 고르면 된다. ▶배우자 아닌 자와의 동거·출산 ▶가출 ▶잦은 외박 ▶장기간 별거 ▶폭행 ▶성관계 거부 등 이혼의 계기가 된 결정적인 사정도 객관식으로 제시해 3~4개를 고르도록 했다.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만을 제출하도록 하고 가족들이 작성한 증인진술서 제출은 제한한다. 가족 간의 불필요한 편가르기와 분쟁 확대를 막기 위해서다.



 대신 미성년 자녀의 양육 상황에 대한 점검은 강화한다. 소장에 ▶친권자 및 양육자 지정 ▶양육비 산정 ▶자녀들에 대한 면접교섭 장소와 시기 등의 항목을 마련해 체크하도록 했다. 소송 시작 전 ‘기본 정보와 양육사항에 대한 기초조사표’ 작성을 유도해 법원이 조기 개입할 필요가 있는지도 사전에 판단한다. 기초조사 내용은 상대방에게 공개되지 않으며 신변 보호가 필요한지 등을 판단하는 데만 쓰인다. 서울가정법원은 12월까지 새 가사소송 모델을 운영해 본 뒤 개선점을 마련해 전국 확대 실시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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