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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간 서부극, 이탈리아서 액션 신대륙 발견

뽀얀 먼지, 을씨년스런 바람 소리, 황량하게 버려진 마을, 꼬질꼬질한 차림의 건맨과 카우보이. 살기등등한 멕시코 산적의 무자비한 총질, 그리고 귀가 찢어질 듯한 트럼펫 소리, 과장된 기타 음이 가득한 배경음악…. 40대 중후반 이상이라면 이쯤에서 무슨 이야기인지 감을 잡을 것이다. 바로 1960~70년대 세계를 휩쓴 이탈리아제 서부극 마카로니 웨스턴이다.

마카로니 웨스턴 탄생 50주년

홍콩의 싸구려 무술영화가 밀려오기 전 극장가 간판의 절반 정도를 도배한 것이 마카로니 웨스턴이었다. 한국에 상영된 것은 50개를 웃도는 정도지만 본국 이탈리아의 경우 총 450편, 여타 유럽 국가의 것들과 2개국 이상 공동 제작한 것까지 포함하면 무려 600개에 달한다고 하니, 한 주에 한 편 꼴로 제작된 셈이다. 당시 미국에 비해 TV 보급이 뒤떨어진 이탈리아라곤 하지만, 국민들이 영화를 주 평균 3편이나 보는 시기였기에 얼마나 많은 저예산의 B급 웨스턴이 나왔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서부와 풍광 비슷한 스페인서 촬영
이탈리아 서부극의 교황,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만든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가 개봉된 지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미국 TV 서부극 ‘로하이드’에 출연한 것 외에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스트우드가 마카로니 웨스턴의 초대 영웅이 된 것은 지극히 우연의 산물이었다. 당초 레오네가 주연으로 쓰고 싶어했던 찰스 브론슨과 제임스 코번이 출연 요청을 거절한 뒤, 캐스팅 제안을 받은 이스트우드는 ‘아르바이트’ 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스트우드조차 이 영화가 10년 넘게 전 세계에 충격파를 던지면서 마카로니 웨스턴의 황금기를 열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탈리아·스페인 등에서 간헐적으로 서부극을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미국 서부극의 단순 모방에 그쳤던 데 반해, 레오네의 서부극은 당시로선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미학적 액션을 창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에 대해 서구 평론가들은 19세기 빛에 의해 변화하는 사물의 인상을 표현했던 회화 사조에 대해 ‘인상파’라는 비판적 명칭을 부여했던 것처럼, 잔인한 총격전 끝에 터져 나오는 피칠갑을 이탈리아 파스타 요리에 쓰는 토마토 케첩에 빗대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이란 냉소적인 이름을 붙인다. 이게 일본으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일본인 입에 생소했던 스파게티 대신, 같은 면류이면서 좀더 익숙한 마카로니로 표현이 바뀌었고, 이게 우리에게 건너와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굳어졌다.

미국 서부극이 우리나라 사극처럼 미국사회의 한 시대적 문화양식을 대변해 온 데 반해, 레오네가 창시하고 그 후예들이 만들어낸 마카로니 웨스턴은 미국적 신화를 완전히 뒤바꾸는 혁명적인 전환점을 마련한다. 기존의 서정적 서부극을 성인 오락의 극치로 탈바꿈시키면서 웨스턴의 전혀 색다른 지평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자, 마카로니 웨스턴 이후의 서부극은 더 이상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의 그림자를 따라다니지 않게 됐다. 오히려 70년대 뉴시네마 운동 이후 이탈리아에 영감을 주었던 미국의 웨스턴은 오히려 역으로 이탈리아 웨스턴의 영향을 받게 된다.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황야의 무법자’는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의 사무라이 영화 ‘요짐보’(用心棒·경호원)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옮겨 만든 불완전한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야의 무법자’는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서부극이라는 의미 위에, 50년대 종교영화 붐이 사라지고 난 다음 빈사상태에 있었던 이탈리아와 유럽의 영화계를 완전히 부활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세계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이탈리아·스페인·독일(당시의 서독)·오스트리아 등의 배우들이 총망라된 국제적 캐스팅을 보면 이것이 왜 진정한 ‘유로 웨스턴’의 효시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나중에는 뉴질랜드·일본·홍콩·스웨덴·콜롬비아·아르헨티나·브라질 등 서부극과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은 국가의 배우들까지 속속 이탈리아로 몰려들었다. 미국 서부 사막지대와 비슷한 풍광을 지닌 남부 스페인의 알메리아 지방은 갑자기 국제적 영화 촬영지가 되면서 유럽의 할리우드로 변신했다.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과 찰떡 궁합
레오네 웨스턴의 2탄 ‘석양의 무법자’(For A Few Dollars More·1965)는 속편임에도 불구하고 전편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의 영화언론, 특히 일본에서는 이 두 번째 작품을 마카로니 웨스턴의 최고봉으로 손꼽기도 한다. 늘 졸리는 듯 찡그린 눈, 입에 문 짧은 시가. 미국 총잡이의 전형적 복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너무나도 쇼킹했던 멕시코 판쵸. 그리고 한 치의 자비도 없이 뽑아 드는 45구경 콜트의 속사 건플레이까지 ‘무법자’ 삼부작 속 이스트우드 하면 떠오르는 구성요소가 완전히 자리잡힌 영화가 ‘석양의 무법자’였다.

여기에 이스트우드를 능가하는 노련한 현상금 추적자 리 밴 클리프를 등장시키면서 레오네는 이 장르에 뛰어든 여타 감독들을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제1인자 자리를 완전히 굳혔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진정한 좌표를 설정한 레오네의 독창성이 정점에 달할 무렵의 위업이다.

그리고 1년 뒤 레오네는 상영시간만 2시간40분에 달하는 대장편이자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석양에 돌아오다’(The Good, The Bad, And The Ugly·1966)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본토 이탈리아보다는 미국·일본·한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회심의 역작이다. 이후 등장한 코미디풍, 또는 초현실주의적 경향의 다양한 마카로니 웨스턴의 변주를 낳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면서 복합적이고 실험적인 서부극의 대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 영화의 테마음악(빠라바라밤~ 와와와)은 아직까지도 광고 삽입곡이나 TV프로그램 배경음악으로 사용될 정도로 질긴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2’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의 편곡으로 실리기도 했다.

레오네와 이스트우드로 본격화된 마카로니 웨스턴은 이후 줄리아노 젬마, 프랑코 네로, 토마스 밀리안, 지안니 가르코, 앤서니 스테판, 테렌스 힐, 버드 스펜서 등 숱한 영웅들을 탄생시켰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기이한 대히트가 거대시장을 형성한 데 힘입어 60~70년대 이탈리아는 미국 다음가는 영화 수출국가로 자리잡는다.

60년대 후반, 전세계적으로 진보좌파적 학생운동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이른바 ‘68혁명’의 시대가 열렸다. 이 즈음 계급투쟁과 서부극을 결합시킨 마카로니 웨스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카로니 웨스턴이 또 한 번의 변주를 시작한 것이다.

한편 뒤이어 등장한 ‘사르타나’(Sartana), ‘사바타’(Sabata·서부악인전) 시리즈가 일시적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부분적인 변형과 변신에도 불구하고, 10년 가까이 지속돼 온 고질적인 소재 고갈과 저급한 모방은 마카로니 웨스턴을 점차 쇠락의 길로 내몰았다.

비정과 잔혹, 몰살의 삼박자로 점철됐던 피비린내 나는 마카로니 웨스턴은 코미디풍의 ‘튜니티’(Trinity) 시리즈, 스스로를 희화화하거나 자기 복제한 ‘무숙자(My Name Is Nobody)’가 출시되면서 급작스런 몰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7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 스크린은 홍콩발 싸구려 무협영화들로 대체됐다. 프랑코 네로 주연의 ‘케오마(Keoma·1976)’와 66년작 ‘장고’(Django)의 속편인 ‘돌아온 장고(Django Strikes Again·1987)’ 등이 마카로니 웨스턴의 부활을 꾀했지만 결정적 후속타를 내진 못했다. 그러면서 드디어 마카로니 웨스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는 변주
마카로니 웨스턴은 정통 서부극 자체를 극한적으로 변혁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본토 서부극에 돌이킬 수 없는 강력한 충격을 남겼다. 마카로니 웨스턴을 개봉관에서 본 적이 없는 지금 세대들조차 서부극의 영웅이라고 하면 존 웨인이나 버트 랭카스터보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리 밴 클리프, 테렌스 힐을 떠올린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생명력은 지금도 존속하고 있다. 정통 서부극의 비판에서 시작된 수정주의 서부극은 구로사와 아키라와 유로 웨스턴의 결합으로 마카로니 웨스턴을 낳았다. 그리고 마카로니 웨스턴 이후 할리우드 액션영화는 보다 폭력적이고 역동적인 액션물의 전통을 형성하는 이른바 ‘하드보일드 액션’의 시대로 이어졌다.

마카로니 웨스턴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 액션영화는 천편일률적인 구조의 반복이었다. 현대 할리우드 액션영화에서 당연스럽게 여겨지는 대부분의 요소들은 마카로니 웨스턴이 남긴 유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속도감 넘치는 편집, 극단적 클로즈업과 줌 아웃, 하드보일드 액션과 주제음악·음향의 효과적인 결합은 물론, 냉소적인 정치적 함의와 같은 마카로니의 유제(遺制)들은 요즘 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는 요소다.

마카로니 웨스턴은 현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끊임없는 변주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장르의 신봉자를 자처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1992), ‘킬 빌’(2003~2004),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나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데스페라도’(1995) 등을 보면 이미 오래 전에 한물간 것으로 치부되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요소가 여전히 미국 액션영화의 저변에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이단적 센스’가 미국 영화의 ‘교과서적 규범’에 얼마나 많은 영감을 부여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카로니 웨스턴은 당대의 한국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60년대 충무로는 훗날 ‘만주 웨스턴’으로 불린 장르영화를 쏟아냈다. 임권택 감독의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를 시작으로 ‘광야의 결사대’(정창화 감독·1966), ‘무숙자’(신상옥 감독·1968) 등이 만들어졌다. 71년엔 만주 웨스턴의 기념비적 작품인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가 개봉되었다.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종언을 고한 지 40년이 흘렀지만 변주는 계속된다. 2007년 일본에선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라는 괴상한 제목의 영화가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석양에 돌아오다’와 ‘쇠사슬을 끊어라’를 모티브로 삼은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과 만주 웨스턴의 희극적 변주인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가 만들어졌다.

끝으로 마카로니 웨스턴이 낳은 희대의 스타, 프랑코 네로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매니어들에겐 종교적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마카로니 웨스턴 50주년의 의미를 갈음한다.

“웨스턴은 미국인뿐 아니라 미국으로 이주했던 기록이 있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신화이자 팬터지로 남아 있다. 즉 웨스턴에 대한 향수는 영원하다. 웨스턴이 기억되고 존재하는 한 이탈리아 웨스턴도 영원히 기억되고 살아남을 것이다. 비바 웨스턴 알 이탈리아나!(Viva Western All’Italiana)”



허진 외무고시 출신의 직업 외교관. 독일·헝가리·네덜란드 등에서 총영사·참사관으로 일했다. 1967년 불과 5살 때 ‘석양의 무법자’를 개봉관에서 본 이래 마카로니 웨스턴을 일생의 과제로 채택. 지금까지 250편을 관람하고 200편을 VCR·CD·DVD로 보관 중. 현재 외교부 조정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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