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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결·무례·불길 … 그러나 멋진 영화”

마카로니 웨스턴 이전에 이렇게 불결하고 무례하고, 불길하며 건조한 느낌으로 화면을 장악하는 서부극의 주인공들은 없었다. 그런데 멋있다.

‘놈 놈 놈’으로 변주한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마카로니 웨스턴

총을 뽑는 이유는 단지 현상금을 노리거나 개인적 복수를 위해서거나, 그도 아니면 그저 마음이 들지 않아서다. 마주보고 선 두 사내 혹은 일대 다수는 정지돼버린 시공(時空) 속에서 잔뜩 찌푸린 얼굴로 흰자위를 번득거린다. 일촉즉발의 순간. 특별할 건 없다. 상대보다 먼저 방아쇠를 당겼을 뿐.

존 포드가 모뉴먼트 밸리를 서부극의 신화적 공간으로 만들었다면 세르지오 레오네는 심드렁하고 찌푸린, 무미건조한 표정을 극단적 클로즈업으로 잡아 새로운 서부극의 풍경을 창조해냈다. 이 지저분하고 위악적(僞惡的)인 표정이 ‘진짜 서부극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미국의 모뉴먼트 밸리가 아닌 스페인의 삭막한 벌판에서 찍은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진짜 서부극의 생생한 감각을 비로소 느꼈다. 이전 서부극의 주인공들이 아버지처럼 권위적이고 엄숙했다면, 마카로니 웨스턴의 주인공들은 전설로 듣던, 십대일로 싸웠다던 동네의 멋진 형처럼 느껴졌다.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대신 따끔한 훈계를 늘어놨지만, 프랑코 네로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우리가 이 비정한 거리에서 살아남는 법을 보여주고는 그저 미간을 찡긋대다 사라졌다. 누가 더 마음을 흔들어 놓겠는가.

내 영화에서는 서부극을 표방한 ‘놈놈놈’을 뺀다면 아마 ‘달콤한 인생’(2005)에서 가장 마카로니 웨스턴의 원형을 많이 가져왔을 것이다. 주인공 선우(이병헌)가 총을 구입하기 위해 러시아 밀매상(오달수)을 접선하는 공간은 마치 서부의 황야처럼 삭풍 부는 벌판이었다. 마지막 복수를 하기 위해 스카이라운지 긴 복도 앞에 보스(강영철)와 대치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쇼트 역시 서부극의 대결구도를 보여주려는 클리셰(상투적 표현)였다.

내게 있어 최고의 마카로니 웨스턴은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오프닝 장면이다. 세 명의 악당(우디 스트로드, 알 멀록, 잭 엘럼)이 귀찮은 듯 느릿느릿 손사레를 치며 파리를 쫓고, 어디선가 간헐적으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권태롭고 나른한 황야의 어느 기차역. 기차는 오지 않고 세 명의 악당은 그렇게 오랜 시간 늘어져 있다. 얼굴 앞을 날아다니는 파리들, 멀고 먼 황야의 지평선, 무표정한 세 악당들의 얼굴과 끼익거리는 마루바닥, 흔들의자의 마찰음.

아무런 사건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이 권태롭고 적막한 시간들을 이런 쇼트들이 채워가는데, 엄청난 긴장감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다 마치 유령처럼 나타난 주인공. 하모니카 소리가 그들의 죽음을 알리는 장송곡처럼 들려온다.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풍경의 세밀한 묘사만으로 이처럼 에너지 가득한 폭발 직전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건 어느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야심차고 멋지며 황홀한 오프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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