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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공룡 대멸종 뒤, 지구에 풀 돋고 포유류 시대 개막

키위의 알은 몸집에 비해서 왜 이렇게 커졌을까? 많은 자연선택론자들은 큰 알의 이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키위의 알이 큰 이유는 몸집이 작아지는 동안 알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덜 줄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코는 왜 이리도 오뚝할까? ‘안경을 걸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근원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우리는 이런 입장에 자주 서곤 한다. 우주론의 ‘인류 원리’에 관한 해석이 바로 그렇다.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에 수많은 변수들이 조금만 달랐다면 태양·지구 그리고 생명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물리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놓고서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 우주에 이러저러한 물리법칙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14> 조류형 공룡의 퇴장

지난 3월 인문학 분야의 한 원로 교수는 어느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우주에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인간에게 우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과학이 답해야 한다면서 “우연히 생겼어요” 같은 것은 제대로 된 답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물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원로 교수의 글을 보고서 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분이 인문학자들 듣기 좋은 얘기를 한 것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진화생물학자 가운데도 비슷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키위란 과일 이름이 붙은 새에서 찾을 수 있다.

몸집 줄여 생존한 키위, 알 크기는 못 줄여
뉴질랜드는 불과 1000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뿐만 아니라 육지에 사는 어떠한 포유류도 접근하지 못한 땅이었다. 뉴질랜드는 천적이 없는 새들의 천국이었다. 여기엔 타조처럼 날지 못하는 거대한 새가 자그마치 13~20종이나 살고 있었다. 이 가운데는 타조 무게의 두 배가 넘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섬에 상륙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사람들은 날지 못하는 거대한 새들을 쉽게 멸종시켰다. 이제 뉴질랜드에 남아있는 날지 못하는 새는 3종의 키위가 전부다. 이들이 살아남은 까닭은 아마도 닭 정도로 작은 크기인데다 야행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키위 새는 과일 키위처럼 생긴 몸통에 기다란 부리가 달렸다. 키위의 놀라운 점은 알의 크기다. 키위 크기의 새들이 보통 70g 정도의 알을 낳는 데 반해 키위 알은 6배나 무거운 420g이나 된다.

여기에 ‘왜?’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전통적인 진화생물학자들은 알이 크면 새끼도 크고 충분히 자란 상태로 부화한다는 데 주목한다. 때문에 어미의 최소한의 보살핌만으로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자연선택에 의해 키위는 점점 더 큰 알을 갖게 됐다는 전통적인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과 함께 진화이론의 3대 스타에 속하는 고(故)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현재의 유용성은 역사적 기원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란 금언을 반복한다. 우리 코가 안경을 걸기 위해 그렇게 생긴 게 아닌 것처럼, 키위의 커다란 알도 어떤 이득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란 것이다. 키위는 원래는 엄청 컸던 새가 작게 진화한 왜소종(種)이란 게 굴드의 주장이다. 그의 주장을 따라 역사를 복원해 보자. 어떤 육상 포유류도 없는 뉴질랜드에서 키위는 포유류와 같은 생활 방식을 택했다. 키위는 조류 가운데 유일하게 양쪽에 난소가 있다. 같은 크기의 포유류의 수태기간과 비슷한 80일의 부화기간, 굴 파기 습성, 모피 같은 깃털, 후각에 의존하는 야행성 먹이 찾기 습관도 포유류와 닮았다. 키위의 조상은 몸집이 거대했지만 점차 작아졌다. 하지만 알의 크기는 몸의 크기와는 다른 비율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뉴질랜드는 천적이 없는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알이 수란관(輸卵管)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키위 암컷은 거대한 알로 인해 배가 부푼 채 ‘겁 없이’ 뒤뚱거리며 돌아다녔을 것이다. 고립된 생태계의 거대한 새는 과거 생태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신생대 초기 최상위 포식자의 지위를 누린 동물은 거대한 조류형 공룡(새)인 디아트리마였다. 나중에 풀을 먹는 거대한 초식 포유류 무리가 등장하면서 디아트리마의 시대가 마감됐다.
비늘이 털로 … 포유류는 파충류에서 분화
6500만 년 전. 신생대(新生代), 즉 새로운 생명의 시대가 열렸다. 새 생명의 시대가 시작된 계기는 바로 중생대 백악기(期)의 대멸종이다. 외계에서 날아온 거대한 운석의 충격에 따른 화산 폭발과 기후변화를 큰 동물들은 견뎌내지 못했다. 하늘엔 익룡이 날아다니고, 땅에선 공룡이 포효하며, 바다에선 어룡과 수장룡이 헤엄치던 중생대가 뜬금없이 끝나고 만 것이다.

단지 중생대의 지배자 공룡만 멸종한 게 아니었다. 10~20㎏이 넘는 육상 척추동물들은 모두 사라졌다. 바다의 동물들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식물성 플랑크톤이 절멸한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식물성 플랑크톤-동물성 플랑크톤-작은 물고기-큰 물고기’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이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고생대에 출현해 중생대 바다를 지배하던 암모나이트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암모나이트는 플랑크톤을 먹던 생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민물에 살던 동물들은 아주 큰 동물만 제외하고 웬만하면 살아남았다. 물이란 피난처가 있는 악어와 거북은 저(低)산소와 건조라는 악조건을 버텨낼 수 있었다. 지난 네 번의 대멸종을 견뎌내면서 적응성을 키워온 곤충들도 대부분 살아남았다.

어쨌든 중생대 백악기가 끝났다는 것은 공룡의 시대가 끝나고 포유류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포유류가 이때 생겨난 것은 아니다. 포유류는 중생대 초기인 트라이아스기(期)에 이미 등장했다.

포유류는 파충류에서 분화했다. 파충류의 비늘 한 개는 포유류의 수십∼수백 개의 털로 변했다. 아직도 천산갑이나 아르마딜로처럼 원시적인 비늘을 가진 포유류가 남아 있다. 포유류는 피부에 땀샘이 있어서 체온을 조절하고 알 대신 새끼를 낳는다. 또 후각이 발달했고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 많다. 신생대는 기후의 변화가 컸기 때문에 변온(變溫)의 거대한 파충류보다는 항온(恒溫)의 작은 포유류가 생존하기 쉬었다. 덩치가 크고 낮에 활동했다면 공룡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공룡이 멸종하고 말았다. 포유류의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최고 포식자는 누구였을까? 여전히 공룡이었다.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이냐고? 백악기가 끝나면서 비(非)조류 공룡은 모두 사라졌지만 조류 공룡(즉 조류)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가장 인상적인 조류는 키가 2m에 달했던 ‘공포의 두루미’였다. 북아메리카의 디아트리마와 유럽의 가스토르니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날개가 퇴화돼 날진 못했다. 빽빽하게 우거진 팔레오세(6500만 년 전~5650만 년 전)의 숲에서 날개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공포의 두루미들은 갈고리 같은 기다란 발톱이 달린 육중한 다리로 뛰어다니면서 먹이를 잡았다. 뾰족한 부리론 작은 포유류를 잡아 살을 찢었다.

풀 덕분에 거대한 초식 포유류 등장
신생대가 시작될 무렵 인도 대륙은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와 인도양을 가로질러 빠르게 돌진했다. 곧 아시아의 아랫부분과 충돌해 히말라야 산맥을 형성하게 될 터였다. 북아메리카에선 로키 산맥이 계속 높아졌다. 하나의 거대한 초(超)대륙, 즉 판게아(Pangaea)를 형성하고 있던 지구 대륙이 서로 쪼개져서 흩어져 있는 현재의 모습을 점차 갖추게 되었다. 비(非)조류형 공룡이 사라진 신생대엔 조류형 공룡의 거대화가 진행됐다. 오스트레일리아엔 키가 3m, 무게가 400㎏이 넘는, 날지 못하는 거대한 ‘천둥 새’인 드로모르니틴이 살았다. 오늘날의 에뮤나 화식조는 큰 축에도 못 낀다. 마다가스카르엔 현생 타조 키의 두 배가 넘는 ‘코끼리 새’ 아이피오르니스, 뉴질랜드엔 거대한 모아가 살았다. 이들은 주로 곰과(科)·고양잇과·갯과 따위의 큰 태반 포유류 포식자가 없는 섬이나 섬대륙에서 둥지를 틀었다.

대륙 이동은 포유류의 진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포유류는 크게 단공류·유대류·태반류로 나뉜다. 단공류(單孔類)는 알을 낳는 포유류로 현재는 오리너구리와 가시두더지, 단 두 종(種)만 남아 있다. 유대류(有袋類)는 새끼가 일찍 태어나 어미의 배에 있는 주머니에서 어미의 젖을 먹으면서 일정한 크기로 자랄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않는 포유류다. 유대류의 화석은 유럽과 북아메리카 중생대 지층에서도 나오지만 현존하는 종은 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에만 존재한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는 신생대 내내 고립돼 있었다. 그곳의 유대류는 경쟁 없이 다양한 생태학적 이점들을 이용해 여러 형태로 진화했다.

신생대엔 유대류도 번생했지만 태반류(胎盤類)의 진화는 더 성공적이었다. 태반류는 해부학적인 특징에 따라 다시 분류된다. 개미핥기·나무늘보·아르마딜로·천산갑은 이빨이 없거나 불완전한 빈치류(貧齒類)다. 포유류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송곳니가 없는 설치류(齧齒類)다. 온갖 종류의 쥐가 여기에 속하며 1700종이 넘는다. 태반류는 진화하면서 점차 몸집이 커졌고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로 양분됐다. 커다란 초식동물론 양·염소·소와 말, 그리고 코끼리처럼 발굽이 있는 유제류(有蹄類)가 있다.

거대한 초식 포유류가 출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신생대에 들어서 마침내 등장한 풀이다. 풀은 고생대에도 중생대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어떤 공룡도 풀을 구경하지 못했다. 몸집이 크고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초식동물이 등장하자 고양잇과·갯과·곰과 동물들이 커다랗게 진화하면서 비로소 조류형 공룡의 지배가 마감된다.

풀이 생기자 날지 못하는 거대한 조류형 공룡들은 두 가지 길 앞에 놓이게 됐다. 서서히 멸종하거나 공룡시대의 포유류처럼 몸을 최소한의 크기로 줄이도록 진화하는 거였다. 거대했던 키위도 몸집을 줄이고서야 겨우 살아남았다. 커다란 알을 품은 채.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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