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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포로된 푸이 “거창한 이념은 사람 홀리는 도구일 뿐”

만주국 황제 시절, 일본군과 만주국 대신들에게 둘러쌓인 푸이(계단 가운데 안경 쓴 사람). 1933년 가을 만주국 수도 신징(新京. 지금의 長春). [사진 김명호]
1945년 8월 8일, 일본에 선전포고한 소련은 관동군 사령관에게 비밀문건을 보냈다.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푸이)를 우리측에 인도해라. 장소는 선양 비행장, 시간은 8월 17일 정오. 착오 없기 바란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88>

1945년 8월 16일, 압록강 인근의 폐광 창고에서 만주국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퇴위를 선언한 푸이는 공포에 휩싸였다. 훗날 회고록에 당시의 심경을 털어놨다. “만주국 황제 시절, 일년에 한 번씩 관동군의 안배로 지방을 순시했다. 한번은 옌지(延吉)의 조선족 지구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전용 열차가 지나는 곳마다 일본 헌병과 만주군들이 넘쳐났다. 수행한 관동군 장군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토비들 때문이라고 했다. 토비가 뭐 대단하기에 이렇게 많은 병력이 필요한지 의아했다. 이 지역의 토비는 거의가 공산당이라는 설명을 듣자 이해가 됐다.”

푸이는 잠시도 폐광마을에서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 여자들을 떼어놓고 선양으로 향했다. 일년 후 황후 완룽(婉容·완용)이 옌지의 감옥에서 병사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선양 공항에 도착한 푸이 일행은 소련군과 조우했다. 동행했던 공친왕(恭親王)의 손자가 기록을 남겼다. “일행은 푸제(溥杰·부걸)와 처남 룬치(潤麒·윤기), 경호실장, 주치의 등 모두 9명이었다. 소련군은 휴게실에 차와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은 우리의 포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소련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지만 태도는 정중했다. 의심이 많은 푸이는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먹기를 마치자 비행기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붉은 별이 큼지막하게 그려진 소련 비행기였지만 자세히 보니 미국의 더글라스가 만든 항공기였다. 뭐가 뭔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신해혁명 이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관동군이 우리를 소련측에 팔아 넘겼다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 무슨 피곤한 일들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농촌 풍경은 평화로웠다.”

저우언라이(周恩來·오른쪽)는 푸이를 각별히 챙겼다. 1960년 1월 22일, 베이징 정치협상회의 접견실. 맨 왼쪽은 푸이의 숙부 자이타오(載濤).
푸이의 첫번째 기착지는 치타(러시아 남동부 도시)였다. 공항에 도착하자 중국인이 다가왔다. 푸이는 깜짝 놀랐다. “장제스(蔣介石·장개석)가 나를 인수하러 보낸 사람인줄 알았다. 알고 보니 중국계 소련인이었다. 세상천지에 중국인이 없는 곳은 없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포로생활은 그런대로 지낼만했다. 철조망 안이었지만 단독건물에 거주하며 중국에서 함께 온 일행들의 시중을 받았다.”

소련측은 푸이의 수중에 엄청난 보물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증받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럴 때마다 푸이는 조상들이 남긴 유물이라며 딱 잡아뗐다. 대신 수용소 소장이나 지역 사령관에게 비누와 치약을 자주 선물했다. 푸이의 선물을 받을 때마다 사령관과 소장은 희희낙락했다. 말이 비누나 치약이지 그 안에는 큼직한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푸이는 소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본론』과 레닌의 저술들을 구입했다. 포로로 끌려온 만주국의 대신·장군들과 학습반을 만들었다. 특히 『소련 공산당사』는 밑줄까지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다. 아무리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동생 푸제를 붙잡고 푸념했다.

“아무리 거창한 이념이나 소신도 결국은 다수를 홀리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인간세상도 동물세계와 다를 바 없다. 먹고 먹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간 우리는 허구헌날 먹히기만 했다. 혁명파들에게 먹혔고, 위안스카이(袁世凱·원세개)와 장제스, 일본군에게 먹혔다. 지금 중국은 내전 중이다. 누가 이기건 우리는 살아남기 힘들다. 당장은 소련이 가장 안전하다. 소련은 영국·미국과 맹방이다. 이곳에 머무르다 기회를 봐서 미국이나 영국으로 가자. 지금 내 손에는 엄청난 귀금속이 있다. 이것만 있으면 나머지 삶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유모와 동생들까지 불러서 편하게 살자. 네 처는 일본 여인이라 안된다.”

푸이는 혼자 남은 유모가 자살한 줄을 몰랐다. 푸이는 스탈린에게 “소련에 머물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과 장제스를 저울질하던 스탈린에게 푸이는 안중에도 없었다.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가 푸이의 송환을 요청하자 스탈린은 승인했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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