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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두 눈 뜨고 놓친 국보급 유물

‘물건을 모르거든 금 보고 사라’는 속담이 있다. 좋은 물건을 사고 싶을 때는 이왕이면 비싼 것으로 사야 속지 않는다는 말이다. 문화재급 유물에 걸맞는 격언이지만 세상사가 그렇듯 다 맞는 건 아니다. 거금을 들여도 좋은 걸 못 얻는가 하면, 소액으로도 보물을 얻는 때가 있다. 그래서 물건의 진심을 알아주는 마음의 눈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 설득력을 얻는다.

국보 제 275호 ‘기마 인물형 토기’. 가짜라는 오명을 벗고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눈 밝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1970년 대 초, 대구에서 삼국시대에 제작됐다는 기마 인물형 토기 한 점이 나왔다. 목욕탕 겸 여관을 하던 주인이 고미술품 중간 상인에게 내놓은 매물이었다. 4세기 후반에서 5세기로 추정되는 연대에 비해 보존 상태가 너무 깨끗하고 도상이 독특해 대다수 전문가들이 가품(假品), 즉 가짜라고 판단했다. ‘도기 기마 인물형 뿔잔’이라 이름 붙여진 이 토기는 무장을 한 무사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높이 23.2㎝의 부장품이다.

좋은 물건이 나오면 첫째로 보곤 했던 호림(湖林) 윤장섭(92) 선생은 이 토기를 놓친 뼈아픈 경험을 자신의 문화재 수집기록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눌와)에 털어놓았다. “가격은 1650만 원이었다. 몇몇 전문가에게 물어본 결과 가품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사지 않고 돌려보냈는데 나중에 대구의 수집가 이양선 선생의 손에 들어간 뒤 국보로 지정되었다.”(44쪽)

객관적인 서술이지만 얼마나 애석한 체험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국보급 유물을 1000만 원대에 살 수 있었던 호기를 놓쳤던 것이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뿔잔은 결국 진가를 알아본 서울의 한 화랑 주인이 900만 원에 사들여 기탁 전시하게 되었다. 당시 한병삼(1935~2001)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이 토기를 진품(眞品)이라 판단하였고, 가짜라고 주장하는 문화재 관계자들을 설득해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도록 노력했다.

이 기상천외한 토기에 생명을 불어넣은 숨은 인물은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경북대 교수를 지낸 국은(菊隱) 이양선(1916~99) 선생이다. 국은은 자신이 수집한 문화재 666점을 국립경주박물관에 보내며 이 토기 소장자에게 청화백자교로를 주는 조건으로 함께 기증하도록 유도했다. 한때 천덕꾸러기였던 이 토기가 국보 제275호로 지정되기까지 이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이 더해졌다.

성보문화재단을 설립하고 호림박물관을 일궈 한국 문화재 수호의 살아 있는 수장으로 평가받는 윤장섭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전시회를 수 백 번 보는 것보다 제 주머니를 털어 미술작품을 한 점 사는 게 안목을 키우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다. … 가품도 사보고, 고민하다가 세기의 명품도 놓쳐보았다. 그래서 감식안만큼은 웬만한 학자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게 되었다.”

맹자(孟子)는 존구자명(存久自明), 즉 ‘오래 되면 스스로 밝아진다’라 했다. 세상사에 정답이 없듯이 유물 수집에도 지름길은 없다. 제 스스로 살아가고 깊이 생각해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초역(超譯)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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