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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춤토르, 남양성지 경당 설계 위해 방한





건물, 크고 화려하다고 아름다운 건 아니다 … 빛과 그림자, 침묵의 공간에 신의 손길 담아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갈 우리
건물도 자연과 동화되듯 지어야
창덕궁·진관사 등 서울 명소 둘러봐
"정원 등 아시아 문화에 관심 크다"













































‘건축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



스위스 산골 마을 할덴슈타인의 작은 공간에서 작업하는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71)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다. 세계에서 이름난 도시의 고층 빌딩이나 대형 교회를 설계한 것도 아니다. 주로 스위스ㆍ독일의 작은 시골 교회나 미술관, 노인요양원 등을 설계해왔다. 그런데도 그가 만들어낸 건축물은 세계 건축가들과 건축ㆍ예술 애호가들의 순례지가 됐다.



2009년 '건축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그에게 주며 심사위원단은 이렇게 말했다. “페터 춤토르는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모든 열정을 쏟고, 쉽게 타협하지 않으며, 매우 단호한 자세로 일한다.” 심사위원단은 그에게 ‘거장 건축가’(a master architect)라는 칭호를 붙였다. 산골 마을에서 마치 구도자 같은 자세로 일관해온 그에게 보낸 헌사였다.



춤토르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국내의 대표적 성모마리아 성지인 경기도 화성시 남양성모성지에 작은 경당의 설계를 맡아 현장을 보기 위해서다. 3박4일(8월 13~16일)의 방한 일정을 마무리할 무렵 광화문 근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꼿꼿하고 엄격한 분위기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랐다. 흰색 린넨 셔츠를 걸치고 오른쪽 손목에 밝은 갈색의 나무 염주를 찬 그는 편안하고 푸근한 인상이었다. 때때로 유머러스한 코멘트로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인터뷰 분위기를 녹이기도 했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그를 가리켜 "겸손함?소박함과 힘(강단)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건축가"라고 했다. 그것은 건축 얘기를 한 것이었지만, 그를 만나며 춤토르, 그 자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에 오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러 ‘산수화, 이상향을 찾아서’ 전시를 보았다고 들었다.



“아시아 문화의 배경에 관심이 있다. 한국과 중국에 대해 더 배울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아시아 문화에 대해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 일본 전통 건축을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



-창덕궁은 한국의 대표 정원으로 꼽힌다. 어떻게 보았나.



“난 고궁 구조에 관심이 많다. 몇 달 전 걸프해 인근 카타르 옛 주거지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곳에서 아랍식 정원(courtyard)의 패턴과 구성 방식을 볼 수 있었다. 창덕궁은 매우 특별했다. 그곳이 궁궐의 정원이라고 해서 굉장히 화려하고 양식적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정원이 궁궐의 뒤편에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곳이 특정 시간에만 투어가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항상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원은 자연을 중시하는 춤토르의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다. 2011년 춤토르는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파빌리온을 설계했을 때 건축물과 정원이 하나가 된 공간을 선보이며 정원의 힘을 역설한 바 있다.



-2011년 당시 ‘젊었을 때는 자연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나이 들수록 풀과 꽃을 보며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깊이 깨닫고 있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자연이 중요해지고 있다. 갈수록 조경이 내 프로젝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되고 있다. 요즘 내 프로젝트에는 조경이 항상 같이 간다. 정원은 풍경(landscape?경관)과 관련된 요소로 매우 중요하다.”



-당신에게 자연은 무엇을 의미하나.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믿음이라면 우리는 흙에서 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내게 위안을 준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 말이다. 나이 일흔이 넘으니 내가 나 자신에 관한 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데(웃음) 분명한 것은 바다의 수평선이나, 산, 그리고 산자락에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풍경이 내 마음을 고요하게 달래준다는 것이다. 이런 풍경들이 나를 지탱해주는 것 같다.”



-당신이 설계한 종교 공간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항상 감성적인 공간(emotional space)을 염두에 둔다. 거대한 공간, 혁신적인 공간, 혹은 눈에 띄게 화려한 공간에 관심이 없다. 감정은 건축물의 용도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부엌ㆍ술집ㆍ식당 등 각각의 장소는 그 쓰임새에 따라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런 것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다.”



-종교 공간을 설계할 때 특히 염두에 두는 것은.



“영성적인 공간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곳을 찾은 사람이 기도를 하는가 안 하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종교 공간이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는 베네딕트 교회를 지을 때 설계를 의뢰한 신부와 나눴던 대화를 들려줬다. 그가 신부에게 “솔직하게 저에게 문제가 있다. 나는 17세에 가톨릭 교회를 떠났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부에게 “내가 만들 수 있는 교회는 17세 소년, 그때의 감정으로 디자인하는 것”이라 했다고 한다.



춤토르는 그의 책 『건축을 생각하다』에서 '기억'이야말로 가장 심오한 건축적 경험이라고 했다. 기억은 건축 작업을 할 때마다 그가 참고하는 '분위기'와 '이미지'의 저장고가 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프로젝트를 고르는데 신중하다고 알려져 있다. 남양성모성지 경당 설계를 맡은 이유는.



“건축가로서의 열정이다. 나는 건축가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건축가로서 언제나 좋은 집, 아름다운 집과 빌딩을 지을 기회를 찾는다. 누군가 내게 의뢰를 하면, 지나치게 상업적인 것은 아닌지, 내가 정말 좋은 것을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본다. 또 의뢰인과 함께 내가 그 과정을 잘해나갈 수 있는지도 살펴본다. 때로 상업적인 제안도 들어오고, 내가 만들어내는 것의 질(quality)보다 내 이름이 필요해서 오는 제안도 받는다. 하지만 앞에 말한 것들이 내가 ‘예스’와 ‘노’를 말하는 기준이 된다. ”



-건축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도 여전히 산골 마을인 할덴슈타인에서 작업하고 있다.



”내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우연(accident)이다.(웃음) 어쩌다 보니 그곳에 살게 됐고,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 아이를 키우며 살아왔다. 나는 원래 할덴슈타인 출신은 아니다. 지금 와서 보니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굉장히 잘한 일인 것 같다. 무엇보다 평화롭고 조용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또 사람들이 내게 설계 의뢰를 하기 위해서는 이곳까지 찾아올 결심을 먼저 해야 한다. 우리 아틀리에(설계작업실)는 대가족과 같다. 상업적 (건축) 사무소라기보다는 마스터 클래스(전문가가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와 같다. 다들 모여 함께 생활하며 작업을 하다 보니 예술가 같은 생활이다. 작은 작업실이기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과 함께 매우 가깝게 일할 수 있다.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아주 세밀한 것까지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은 없다. 내 작업이라면 끝까지 내가 하는 것이어야 한다.”



-경당 설계할 곳을 두 번 찾았다고 들었다.



“현장에 가보았는데 좋았다. 사진으로 아무리 보아도 직접 가보면 장소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설계의 시작은 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두 번째 가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강한 느낌을 받았다. '산수화, 이상향을 찾아서' 전시를 보면서도 특별한 감정을 느꼈는데, 이 느낌도 거기에 연결돼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자세히 말할 수 없다. 기다려주기 바란다.(웃음)"



-당신은 지역성을 중시한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장소성은 어떤 것인가.



"장소를 이해하고 느끼는 것은 내게 어렵지 않다. 그 장소에 직접 가면 느낌이 온다. 그 다음에 그 장소의 배경에 관한 정보를 모아 그곳을 이해하려 한다. 사람들이 그곳을 어떻게 개간하고, 어떤 길을 만드는지, 자연을 어떻게 대하는지 등을 본다. 나는 그런 작업을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어려운 건 사회적 연결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왜 그것을 원하는지, 그들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고 또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바닥에 깔린 진짜 소망은 무엇인지…. 그것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작업 말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런 부분을 이해하는 재능이 있는데 내게는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웃음)"



-당신의 장소에 대한 철학을 한국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하다.



"남양성모성지에 대해, 이상각 신부님이 지난 20년간 일궈온 것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그곳의 풍경엔 독특한 공간적 해석과 특정한 신앙의 요소들이 녹아들어 있었다. 예전에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이곳엔 독특한 무엇인가가 있다.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비판할 점을 얘기해야 하는데….(웃음) 이곳에 있는 목조 공간도 좋았다. 단순하고 긴 형태인데, 거기엔 가톨릭 특유의 제단이 있는 게 아니라 유리가 있었다. 그것은 유럽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양식이다. 그 공간을 보는 것을 통해 신부님이 하려고 했던 것을 이해했다.(웃음)"



춤토르는 건축적 경험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축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건축을 만지고 보고 듣고 맛본다는 의미"(『건축을 생각하다』)라고 했을 정도다. 그에겐, 건축은 책에서 보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의 모든 감각으로 직접 경험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그 얘기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 건물과의 감각적인 교감을 강조해왔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기억으로 돌아가면, 그건 총체적인 것이다. 어떤 형태(form)가 아니라 분위기다. 좋아했던 공간을 떠올려보라.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있고, 어머니 손길에 따라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공간이다. 그런 것은 모두 물질적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역시 그 총체적인 것을 그려내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건축은 형태에 관한 거라고 하지만 그야말로 건축에 대한 큰 오해다. 건축은 좀 더 본질(essence)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집에서 오지 않았나. 그래서 우린 집에 관한 전문가다. 좋은 건물이 왜 좋은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다.”



-당신은 빛의 퀄리티를 강조해왔다.



"당신이 흥미를 느끼는 새로운 남자를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그 남자와 집에 가면 집안 스위치를 다 끄지 않겠나(웃음). 그것은 분위기를 만드는 거다. 아름다운 그림자를 이용하는 거다. 빛과 그림자는 중요하다. 그림자를 아름다운 양으로 갖는 것은 빛을 갖는 것만큼 중요하다. 어떤 것들은 그림자가 일정 부분 있어야만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



-공간에서 빛을 중시하는 당신은 어두움을 먼저 보고, 어두움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일한다고 했다. 당신이 남겨놓고 싶은 어두움은 뭔가.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교회인지, 철도 관련 프로젝트인지. 내 작업은 형태와 관련 있다기보다 '어디에 빛을 둘 것인가'에 관련된 것이다. 회화 작업과 같은 것이다. 빛이 테이블에 있어야 할까? 벽에 있어야 할까? 얼굴에? 아님 전체에? 이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이란 없다. 어떤 재료들은 강한 빛에서 더 좋아지고, 어떤 것은 그림자에서 더 좋아진다."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느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을 자기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과 길, 장소를 찾아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경험을 해야 한다. 진정한 건축은 사람들이 책 등을 통해 얘기하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니까.”



춤토르는 세계 건축계의 유행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아주 보기 드문 건축가로 손꼽힌다. 그는 프로젝트 규모나 설계비에 구애받지 않고 작업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동안 거액의 설계비를 제시하며 그에게 구애의 손길을 보낸 이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움직이진 못했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이 “춤토르는 주류 사회에서 쏟아지는 요청을 사양하며 자신의 길을 꼿꼿하게 걸어갔다”고 한 것은 그런 맥락이다.



제2차세계대전 때 폭격받은 교회의 일부를 그대로 살려 새로 지은 독일 쾰른의 콜룸바 뮤지엄, 독일 바겐도르프 클라우스 경당, 스위스 숨비츠 성베네딕트 교회, 스위스 발스 온천 등이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들이다.



클라우스 경당이 설계되는 과정의 일화는 '건축 이상의 건축'을 지향하는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춤토르가 독일 쾰른에서 콜룸바 뮤지엄을 지을 당시의 얘기다. 그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부부가 그를 찾아와서 작은 경당 설계를 부탁했다고 한다. 춤토르는 이들 얘기에 귀를 기울였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농촌 부부 형편을 고려해 설계비도 받지 않았다. 이 작은 경당을 구상하는데 그가 바친 시간은 3년이었다. 클라우스 경당의 내부는 독특하다. 통나무 패널을 세워 원뿔형으로 쌓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은 다음 내부 원목을 태우는 독특한 기법을 적용했다.



클라우스 경당 외형은 그야말로 작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곳을 찾은 이들은 감동을 이야기한다. 춤토르 역시 감동을 중시한다. 그는 “나에게 있어 질 높은 건축은 나를 감동시키는 건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감동은 크기나 화려함으로 사람을 위압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볼 때마다 느껴지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존재감을 뜻한다.



클라우스 경당은 한 편의 시(詩)처럼 마음에 울림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불에 탄 나무 패널 흔적이 투박한 결로 남은 내벽과 뾰족하게 열린 천창에서 쏟아지는 빛의 만남이 이뤄낸 조화일까. 건축가 한만원씨는 “클라우스 경당은 한 번에 겨우 대여섯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다. 하지만 감동은 그 어떤 대형 교회나 성당과 비교할 수 없다. 만약 사람들이 성령을 만나는 일이 실제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일 것 같다”고 말했다.



줌토르는 저서 『건축을 생각하다』에서 “시(詩)는 고요함 속에 산다. 건축은 이 고요함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소박하고 고요한, 또 한 편의 시(詩)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남양성모성지에 세워질 경당은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작은 규모로 설계될 예정이다.





이은주 기자

[사진 이상각·한민원·김용관]





◆페터 춤토르=1943년 스위스 바젤 출생. 아버지가 운영하던 목공소에서 가구공 훈련을 받고 바젤 공예학교 디자이너 과정을 이수했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건축과정 수학. 79년 스위스 할덴슈타인에 건축사무소 개설. 2009년 ‘건축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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