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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는 왜 잘나가는 건달이 되고 싶었을까?



'천부적 보컬리스트' 김범수의 어릴적 꿈은 놀랍게도 주먹쓰는 건달이었다.

살아온 주변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김범수의 고향은 경남 마산. 대가족이 모여 살며, 김범수도 사랑받고 예쁨 받는 유년기를 보냈다. 문제는 서울에 전학을 오면서 터졌다. 김범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살던 동네가 거칠었다. 또래 친구들도 희망·꿈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전했다. 이어 "학교에서는 사투리 쓴다고 놀리니, 친구들과 만날 싸우게 됐다. 반항심이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되고는 집안 환경이 좋지 않아서, 밖으로만 나돌았다. 그 땐 유명한 건달이 되는 게 꿈이었다"고 소개했다.

공부는 뒷전이었고, 동네 친구들과의 주먹다짐이 그치지 않았다.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질 날이 길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친구들끼리의 심한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그는 "동네에서 좀 논다하는 친구들과 주먹다짐을 했는데 내가 밟혔다. 이 동네는 다 평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거 아닌 친구들에게 굴욕을 당한 거다. 주먹세계에 로망이 있었고, 보스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김범수는 그 일을 계기로 거친 친구들과 거리를 뒀고, 음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김범수는 음악을 '방황하던 시기에 날 붙잡아 준 친구'라고 표현했다. 그 도 그럴 것이 뾰족하게 날이 서있다가도, 록밴드 건즈앤로지스·메탈리카·스틸하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반항심이 정화됐다. 알앤비 그룹 보이즈투맨의 음악을 듣고는 더욱 흠뻑 빠져들었다. 가스펠 음악을 알고, 교회에 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 김범수는 "종교 활동을 떠나서 (교회는) 조금 더 깊은 수준의 철학이 됐다. 친구들하고 찬양팀을 만들어서 선교도 했고. 음악이 취미를 넘어서 활동이 됐다"고 소개했다. 그렇게 김범수의 꿈은 '잘나가는 건달'에서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바뀌었다.

엄동진 기자
사진=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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