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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종·이승훈 순교 '한국의 골고다' … 묵상으로 위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서소문 천주교 성지를 방문해 순교탑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서소문 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천주교 신자 100여 명이 처형된 곳이다.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서 탄생한 124위 복자(福者) 중 27위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16일 천주교의 최대 순교 성지인 서소문공원에서 교황의 묵상이 눈길을 끌었다. 천주교 박해 시절, 이곳은 숱한 신자들이 목숨을 잃은 형장이었다. 이날 시복된 124위 중 27위가 서소문 성지에서 순교했다.

잊혀졌던 최대 순교 성지 서소문
시복 124위 중 27위 순교한 성지
기도 뒤 후손 정호영씨 손 잡아줘
후손들 "순교정신 재조명 기쁘다"



 오전 8시35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소문 성지로 들어섰다. 500여 명의 신자들이 “와~아!”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교황이 성지의 순교탑 앞에 섰다. 탑에는 성경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복되어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마태오복음 5장 6절이었다.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의 언덕에서 설했던 산상수훈의 한 대목이다. 이 구절은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에 대한 위로의 언어로 박혀 있었다. 화동 둘이 순교탑 앞 제대에 꽃바구니를 놓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순교탑을 마주 보며 제대 앞에 섰다. 그는 눈을 감았다. 고개 숙이고 1분 동안 묵상했다. 침묵이 흘렀다. 500여 신자들도 숨을 죽였다. 교황은 기도를 통해 무엇을 만났을까.



정약종 동생 정약용의 후손 호영씨
 1801년 2월(음력) 다산 정약용의 형인 약종(세례명 아우구스티노·1760~1801)은 바로 이곳에서 참수당했다. 서학쟁이(천주교 신자)로 체포됐을 때 재판관이 물었다. “왜 사교(邪敎·삿된 종교)를 믿느냐?” 정약종은 “제가 섬기는 천주(天主)는 천지만물의 주인이시며 사교가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백 번이 넘는 문초에도 굽힘이 없자 재판관은 “그는 목석처럼 강인한 자다”라고 했다. 세속의 생명 대신 영원한 생명, 죽음을 택한 그는 수레에 올라 서소문 형장으로 향했다. 길을 반쯤 갔을 때 “목이 마르다”고 했다. 사람들이 비난하자 “마실 것을 청한 이유는 위대한 모범을 본받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던 예수가 “목이 마르다”고 했던 마지막 여정까지 그는 본받으려 했다. 서소문 성지에서 순교한 이들이 다들 그런 길을 밟았다.



 한참이 흘렀다. 교황이 눈을 떴다. 순교자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200년 뒤 자신들이 죽은 참수터에 교황이 찾아올 줄 꿈이나 꾸었을까. 당시에는 신부를 만나는 일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라틴어로 강복(降福·복을 내릴 것을 빌어줌) 기도를 했다. “싯 노멘 도미니 베네딕툼(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500여 신자들이 화답했다. “이제 와 영원히 받으소서.” 그것은 노래였다. 십자가에서 목숨을 잃은 예수가 서소문 형장에서 목숨을 잃은 순교자를 향해 건네는 위로의 노래였다.



 아들에다 부인까지 순교한 정약종은 자손이 끊겼다. 동생인 다산 정약용의 직계가 후손 몫을 하고 있다. 강복 기도를 마친 교황은 다산의 직계 정호영(56)씨의 손을 잡았다. 정씨는 “옛날에는 집안에서 (정약종을) 거론하는 일조차 금기 사항이었다. 1870년에 만들어진 족보에도 이름이 빠져 있다. 1961년에 만든 족보에 비로소 이름이 올라갔다. 순교한 조상들께서 하늘에서 보시며 교황님의 위로에 기뻐하실 것 같다”고 했다.



 ‘정약종의 이름’처럼 서소문 성지도 오랫동안 팽개쳐져 있었다. ‘천주교 최대 순교 성지’란 말이 무색할 만큼 관리도 미흡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과 강복 기도 등으로 서소문 성지는 ‘천주교 순례지’로 거듭날 계기를 마련했다. 인근 약현성당의 이준성 주임신부는 “서소문 성지는 그동안 잊힌 성지였다. 교황님의 방문으로 서소문 성지가 재조명 받고 이곳에서 순교한 분들의 순교 정신이 드러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의 첫 세례자이자 서소문 형장에서 참수당한 이승훈(세례명 베드로·1756~1801)의 후손인 이태석 신부도 참석했다. 그는 교황이 강복 기도를 할 때 마이크를 전달했다. 이 신부는 “순교자들의 수고가 이렇게 결실을 맺었다. 하늘에서도 ‘나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고 하실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교황은 신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뒤 검정 쏘울에 올랐다. 잊히고 내버려졌던 서소문 순교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부활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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