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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를 만난 막걸리 맛은 경쾌, 향은 상큼

1 발효가 거의 끝날 무렵의 막걸리에서는 톡 쏘는 알코올향이 강하게 풍겼다
주말 내내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그냥 오는 것도 아니고 태풍이 몰고 오는 비였다. 서울에 살 때와는 그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통영에 벌써 3년째 살다 보니 이러저러한 태풍들을 몇 번이나 경험했는데, 그 강함이란 내가 자라면서 겪은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물론 서울이라고 해서 태풍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아니라는 것쯤은 ‘35년의 서울 경력’으로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바. 하지만 바다와 접한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태풍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높은 건물이 없는 우리 집 주변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는데, 넓은 패널이 마치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얌전하던 바닷물이 갑자기 도로를 덮치는 일도 있었다.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21> 거제 막걸리

이번 태풍에도 어느 정도 긴장을 하고 걱정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정작 가장 크게 근심이 되던 것은 내가 운영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할 사람들이었다.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통영의 볼거리들은 야외에 위치하고 있기에 비바람이 몰아치면 애써 통영까지 내려온 보람을 찾기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대부분이 직장인인 손님들은 황금 같은 휴가를 낭비하게 되는 셈이다. 내가 막걸리를 구하기 위해 차를 몰아 거제까지 향한 것은 그런 손님들의 실망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성포 양조장의 유자 막걸리 ‘유향’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통영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성포 양조장이었다. 여러 경진대회에서 몇 차례나 수상을 하며 이미 그 맛을 인정받고 있는 이곳은 16년 전부터 막걸리를 만들어왔다고 한다. 당연히 거제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막걸리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 혼자 트럭에 막걸리 싣고 다니면서 파셨어요. 만드시는 양도 많지는 않았고요.”

방학을 맞아 잠시 일을 돕고 있다는 양조장집 아들은 “원래 할아버지 때부터 통영에서 막걸리를 만들어오셨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기술을 배운 후 독립해 지금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술을 빚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성포 양조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것은 막걸리와 동동주, 유자 진액을 섞어 빚은 유자 막걸리인 유향 등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향에 눈길이 갔다. 발효된 막걸리에 유자를 섞는 게 아니라 발효과정에 첨가하게 되면 제대로 된 맛을 내기 까다로워지지만 그 편이 더 깊은 맛을 내기 때문에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맛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곳에서 종류별로 막걸리를 구입해 이번에는 저구항으로 향했다.

2 성포 양조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품목들. 그 중 유향은 독특한 산미가 있다 3 저구 양조장에서는 직접 곰팡이로 누룩을 띄우고 있다 4 여전히 혼자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맹하남 옹
누룩에 직접 곰팡이 피우는 저구양조장
소매물도로 향하는 여객선의 기착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선착장과 마주한 곳에 양조장이 있었다. 기웃거리며 안쪽을 들여다보니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찍을 법한 풍경이 엿보였다.

“보자. 77년부터 했으니 이제 37년째인가. 예전엔 우리 집이 거제에서 제일 큰 양조장이었어요.”

이제 막 안쪽에서 나오던 어르신에게 “양조장이 참 고풍스러워 보인다”고 했더니 허리를 세우며 설명을 해주셨다.

“한때는 망할 뻔도 했어요. 나라에서 쌀로 막걸리를 못 만들게 했으니까. 태풍 매미가 왔을 때는 양조장이 전부 잠기기도 했고. 그래도 몇 년 전에 막걸리 바람이 불고 나서는 일부러 먼 데서 와서 우리 집 견학도 하고 가고 택배로 주문도 하니까 나아지긴 했지.”

저구 양조장에서는 누룩에 직접 곰팡이를 피워 발효를 시키고 있었는데, 요즘은 쉽게 보기 힘든 작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막걸리의 맛 역시 요즘은 쉽게 보기 힘든 것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요즘은 마시기 좋으라고 가볍게들 만드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다른 데 비하면 텁텁하고 좀 거칠지. 그래도 예전부터 그렇게 만들어 왔으니까 지금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예요.”

어르신은 다만 뒤를 이을 누군가가 없다는 게 아쉽다고 했다. 나 역시 막걸리를 맛보기도 전에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아쉽기 마련이니까.

목마른 자가 알아서 사가는 외포항 무인 판매대
저구 양조장에서도 막걸리를 받아들고 이번엔 거제의 북쪽을 향해 달렸다. 겨울이면 온통 대구로 뒤덮이는 외포항에도 양조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있어도 괜찮지만 적어도 양조장은 아닐 것이라 짐작되는 건물에서 막걸리를 빚고 있는 외포 양조장은 평소에도 사람을 만나기 힘든 곳이라 한다. 그럼에도 막걸리를 구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냉장고에 종이상자를 놓아두고 막걸리를 사가는 사람이 알아서 돈을 지불하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문답무용. 술을 마시는 데에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맛을 보기 위한 입과 혀일 뿐이니 그저 정해진 비용을 치르고 막걸리를 가져가면 되지 않는가, 하는 기백(?)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 없이 페트병에 든 막걸리를 하나 집어들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

비 내리던 날 막걸리가 있어 행복했던 여행자들
비가 내리는 날, 어둑해지기도 전에 지친 여행자들과 함께 막걸리를 나누었다. 성포 양조장의 막걸리는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가볍고 쉽게 마실 수 있는 맛이었다. 유향에는 거제 유자의 향긋함이 잘 살아 있었다.

저구 양조장의 막걸리는 어르신의 설명대로 조금 무거운 맛이었다.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거칠지만 포근했고 심지가 느껴졌지만 고집스럽지는 않았다.

마지막, 의문의 외포 양조장 막걸리는 기대보다는 조금 심심한 맛이었다. 중립적인 맛이라고나 할까 물론 막걸리답게 단맛도 나고 시큼한 맛도 느껴졌지만 뚜렷한 무언가는 쉽게 느끼기 힘들었다. 어쩌면 고된 노동을 하는 뱃사람들이 주로 찾는 술이라, 반주 삼아 새참 삼아 마시는 술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맛들이야 시간이 지나면 모두 희미해지는 법. 그날 밤 우리 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던 ‘태풍의 여행자들’은 아마 막걸리의 맛보다는 모두가 모여 비슷했던 하루에 대해 이야기했던 시간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막걸리는 그 기억이 조금 더 오래 이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할 테고. 막걸리는, 아니 모든 종류의 술은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정환정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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