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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꼰 실로 짜여진 우리네 인생

볼테르(Voltaire,1694~1778)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일찍이 풍자시로 명성을 날리며 기존의 정치 체제와 종교를 비판해 영국과 스위스 등지로 망명해야 했고 여러 계몽사상가들과 함께 『백과전서』를 집필했다.
나이를 먹고 세상 이치를 조금씩 깨쳐갈수록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속담이 있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가 그 중 하나인데,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고 개똥밭에도 이슬 내릴 때가 있다’도 같은 의미다. 셰익스피어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에서 좀더 고상하게 표현했다. “사람의 일생은 선악을 꼬아 만든 실로 짜여 있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65>『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와 볼테르

행불행은 이처럼 돌고 도는 것이어서 운이 나빴다고 한탄하다 보면 그게 행운이 되고, 기쁨에 겨워 즐기다 보면 어느새 슬픔으로 바뀐다. 학창시절 배웠던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는 그래서 진리다.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불행인지 인간의 얕은 지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다 지나봐야 겨우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때 가서 알아봐야 그저 헛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Candide ou l’Optimisme)』의 주인공 캉디드가 딱 이렇다. 그가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끝내 버리지 않은 두 가지가 있었으니, 하나는 사랑하는 여인 퀴네공드를 다시 만나야겠다는 일념이고, 또 하나는 “세상 모든 일이 선하고 최선으로 되어간다”는 낙관론으로 스승 팡글로스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캉디드가 온갖 시련 끝에 마침내 찾아낸 애인 퀴네공드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검게 그을은 얼굴, 핏발 선 두 눈, 깡마른 목, 주름이 쭈글쭈글한 뺨, 빨갛게 터서 부풀어 오른 손, 그는 너무 놀라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선다. 그래도 캉디드는 그녀와 결혼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스승과도 재회하고 충실한 하인 까깡보까지 한집에 모여 평화롭게 살아간다. 이 정도면 해피엔드가 아닐까.

물론 아니다. 잠시 즐거웠지만 얼마 안 가 캉디드는 유대인들에게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는다. 퀴네공드는 점점 더 못생겨질 뿐만 아니라 잔소리가 심해져 캉디드가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된다. 팡글로스는 대학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실의에 빠져버리고, 성실했던 까깡보마저 신세 타령을 일삼는다.

세상사가 이런 것이다. 해피엔드는 없다. 잘 하면 한 가닥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이웃에 사는 탁발승에게 팡글로스가 묻는다. “인간이라는 이 기이한 동물이 왜 만들어진 겁니까?” 탁발승은 쏘아붙이듯 답한다. “자네가 왜 그런 일에 참견하려는 건가? 그게 자네 일인가?” 캉디드가 다시 묻는다. “이 세상에는 끔찍한 악이 넘쳐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탁발승은 이렇게 답하고는 문을 쾅 닫아 버린다. “악이 있든 선이 있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신께서 배 한 척을 이집트로 보낼 때 그 안에 있는 생쥐 몇 마리가 편안할지 불편할지를 생각했을 성 싶은가?”

볼테르가 주인공 캉디드로 하여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을 체험케 하고 세상의 각종 악습과 편견에 직면토록 한 것은 단지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적 낙천주의를 조롱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생이 아무리 비참하고 가혹하더라도 묵묵히 그 운명을 감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캉디드는 집으로 오는 길에 한 노인을 만나 콘스탄티노플에서 처형된 대신들의 이야기를 묻는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그저 수확한 과일을 팔러 갈 뿐입니다. 땅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나는 아이들과 더불어 열심히 가꾸고 있지요. 일을 하고 있으면 세 가지 커다란 불행이 우리에게서 멀어집니다. 권태와 타락, 궁핍이 그것들이지요.”

팡글로스는 다시 한번 그의 철학을 가르치려 한다. 그런 그에게 캉디드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밭을 가꾸어야 합니다.”

볼테르는 이 작품보다 12년 앞서 『쟈디그 혹은 운명』을 썼는데, 여기서도 시종일관 황당한 모험담만 들려주다 마지막에 가서야 진지해진다. “인간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판단한다”로 시작하는 천사의 경구(警句)는 서릿발처럼 엄하다.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시련이거나 벌이거나 보상이거나 경고다. 미약한 필멸의 존재여, 마땅히 숭배해야 할 것에 맞서 다투는 짓을 멈추라.”

이어지는 수수께끼는 사뭇 교훈적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중, 가장 길되 동시에 가장 짧고, 가장 빠르되 가장 느리며, 가장 가볍게 여기되 가장 아까워하며,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시간이다. 영겁을 재는 척도니 시간만큼 긴 것도 없지만 계획을 이루려면 늘 부족하니 시간만큼 짧은 것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시간처럼 느린 것도 없지만 즐기는 사람에게는 시간처럼 빠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수수께끼. “감사한다는 인사도 없이 불쑥 받아서는, 방법도 모른 채 그것을 즐기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다른 이에게 주며, 종국에는 자신도 모르게 잃고 마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미적분의 발견자이기도 한 라이프니츠였다면 이렇게 물었을지 모른다. 미분해서 들여다보면 순간순간이 화려한 꽃이지만, 적분해서 바라다보면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 그것은 무엇인가.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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