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방문국 특정 정파 지원 대신 화두 던져 ‘고단수 정치’

1984년 5월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왼쪽에서 둘째)가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과 인사하는 모습. 왼쪽 끝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 [사진 국가기록원]
“교황이 유가족 손을 꼭 잡아주셨네요. 가슴 떨리도록 감사한 일입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공감혁신위원장은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족 김영오씨를 만난 직후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그는 지난 13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교황의 발언 요약본 책자를 들고 나왔고 14일엔 “교황이 인명 경시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우리 곁에 선 프란치스코] 교황 해외순방의 정치학

교황의 위광(威光) 효과를 기대하는 건 여권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당시)을 교황에게 특사로 보내 간곡한 초청의 뜻을 전하고 본인도 두 차례나 교황청 관계자들을 만나며 방한에 공을 들였다. 교황이 워낙 수퍼스타라 방한 자체가 엄청난 플러스가 된다. 국내 가톨릭의 진보적 성격 때문에 리스크가 있다는 걸 청와대도 알지만 교황 방한은 그런 잣대로 따질 수 없는 거대한 임팩트가 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1984, 89년) 이래 4반세기 만에 이뤄진 교황의 방한으로 정치권도 들썩이고 있다. 특히 교황이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한 걸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과 연관시키려는 움직임도 강하다. 하지만 중앙SUNDAY가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결과 교황의 행보를 국내 정치 현안에 연결시키는 건 자의적 해석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대신 정치인 개개인이 자신을 돌아보고 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충고가 잇따랐다. 교황의 행보가 지니는 보편성과 ‘고단수 정치(high politics)’의 성격 때문이란 것이다.

교황사를 연구한 차용구(서양중세사) 중앙대 교수는 “세월호나 평화·소통·민주주의 등 방한 기간 중 교황의 언급을 보면 예상보다 훨씬 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이어서 해석의 여지가 매우 크다”며 “어느 나라를 가든 정치적 인물이 되고 마는 교황이란 지위 탓에 늘 (보수·진보) 양쪽의 논리를 포괄하는 발언이 되기 마련인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의 언급은 자구 하나하나를 따지는 것보다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지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이 세월호 참사 유족을 만난 것에 대해선 “‘나는 종교인으로 할 일을 했다. 여러분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정치권과 지식인, 국민에게 골고루 화두를 던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마상윤 가톨릭대 교수도 “교황의 방문국은 대개 이념 갈등이나 내전에 신음하는 나라들”이라며 “자연히 특정 세력을 편드는 대신 보편적 차원에서 화해와 평화를 권면하는 메시지가 나온다”고 말했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념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는 걸 좋아하는 ‘자유인’이란 점이 전임자들과 다르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스라엘을 방문하면서 팔레스타인도 같이 찾고, 동성애자에 대해서도 “자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 게 대표적이라고 한다. 마 교수는 “동성애자도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는 새 프레임을 제시하면서도 동성애 자체를 인정하지는 않는 미묘한 발언”이라며 “이런 자유로움과 검소한 생활 같은 소프트파워로 ‘고단수 정치’를 구사하기 때문에 취임한 지 1년여 만에 글로벌 수퍼스타로 떠오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도 “교황의 발언을 특정 정파가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건 아전인수(我田引水)의 전형”이라고 했다. “교황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교황령을 놓고 유럽의 세속 정치권력과 경쟁하느라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으나 그 뒤론 정교분리가 명확해져 보편적이고 영적인 발언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업체인 한국갤럽 허진재 이사는 “교황 방한을 놓고 정치권이 유불리를 계산한다면 오판”이라며 “교황의 보편적인 행보 때문에 대통령이나 여야의 지지율이 특별히 오르거나 내려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교황 방한으로 인해 정치권이 세월호 특별법을 조속히 타결할 필요성이 커진 점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현실적으론 해외순방에 나선 교황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85년 해방신학에 대해 반감을 표시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직후 방문한 네덜란드에서 시민들의 외면을 당해 텅 빈 거리에서 강복을 내려야 했다. 또 미국에서 “피임약을 쓰지 말라”고 설교하다가 수녀 수천 명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가톨릭 교리가 이념 갈등으로 비화된 미국·유럽에서 교황을 평가하는 시각과 국내에서 교황의 발언이 소화되는 경로는 다르다. 전두환 정부 시절인 84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하자 재야 일각에선 “군사독재를 정당화해 주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교황은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 손을 잡으면서도 그의 반대를 무릅쓰고 광주를 찾아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5공 때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재야 입장에선 교황의 광주 방문이 정권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국민 대다수는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로 여겼다. 그래서 5공 입장에서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전 전 대통령이 ‘광주에서 교황이 원하는 건 다 들어주라’고 지시한 건 그래서다. 덕분에 교황도 한국 신도들이 급증하는 효과를 봤다. 교황의 행보를 놓고 누구는 감싸고 누구는 야단친 것이라 재단하는 건 그의 ‘고단수 정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이 같은 복합적인 행보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마찬가지다. 그는 젊은 시절 해방신학에 관심을 뒀지만 가톨릭에서 가장 보수적인 예수회 출신이다. 기자들이 “당신은 좌파 아니냐”고 물으면 “200년에 불과한 좌파 사상이 아니라 2000년 역사의 기독교 신자”라고 답하곤 한다. 또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고 비판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 철학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차용구 교수는 “개혁을 원하면서도 과속을 경계한 바티칸이 새 수장을 뽑아야 할 때가 되자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룬 프란치스코 교황이란 절묘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황의 행보가 보편성을 추구하는 건 그의 방한 목적이 가톨릭 확대를 위한 선교의 일환이란 점에서도 파악될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톨릭은 신도 수(12억 명)에서 이슬람(13억 명)에 추월당한 상태다. 본거지인 유럽과 중남미에선 신도들의 열기가 크게 떨어져 있다. 이에 따라 아시아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가 가톨릭의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이어 내년 초 역시 아시아 국가인 스리랑카와 필리핀을 잇따라 방문하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동북아에서 가장 중요한 가톨릭 국가다. 신도 수가 지역 내에서 가장 많다. 국내 신도 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두 차례 방한 이후 186만 명(85년)에서 514만 명(2005년)으로 급증했다. 연평균 11%의 고도성장을 한 셈이다. 교황청이 역점을 두는 중국 선교에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도 교황이 한국을 중시하는 배경이다. 교황은 14일 한국을 찾으면서 중국 상공을 지나는 루트를 선택했고, 전세기가 중국 영공에 들어서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축복의 전보를 보냈다. 뉴욕타임스는 “교황은 방한을 통해 가톨릭이 유교문화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나라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중국에 확신시키려는 의도”라고 보도했다.

이런 이유에서도 교황은 한국에서 정치적 충돌 우려가 있는 행보는 피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교황청은 2000년간 존속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이며 그동안 축적한 외교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교황의 행보 하나하나가 고도의 고려 속에서 이뤄지는 만큼 그의 말을 편협한 정치적 잣대로 해석해선 안 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