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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하지만 위험한 ‘직업’ … 암살된 교황 적어도 6명

16일 시복미사 제단에 오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손에 ‘어부의 반지’가 끼워져 있다. 초대 교황인 베드로를 새긴 은반지다. 교황의 오른손은 권력과 힘을, 넷째 손가락은 신앙 수호를 상징하기 때문에 모든 교황은 오른손 약지에 반지를 낀다. 왼손에는 목자를 상징하는 십자가 지팡이를 들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스탈린은 교황을 깔봤다. 이렇게 물었다. “교황! 그가 거느린 사단은 몇 개요?”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쓴 『제2차 세계대전』(1948)에 나오는 말이다.(교황에겐 사단은커녕 110명 ‘병력’의 스위스 근위대밖에 없다.) 1917년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러시아가 오류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약속 때문인지 아니면 교황이 통솔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군대’ 덕분인지 모르지만 소련은 결국 망했다.

[우리 곁에 선 프란치스코] 세속과 신성 사이, 교황의 자리

교황은 막강하다. 종교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세속 권력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는 정치학자들이 인정하는 ‘국제정치 행위자(an actor of international politics)’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손잡고 공산주의를 패망의 길로 몰고 갔다. 알렉산데르 6세는 1493년 5월 4일 칙서를 반포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각기 ‘소유할’ 신세계의 경계선을 나누었다. 성 레오 1세는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훈족의 왕 아틸라와 협상해 그를 물러서게 했다. 서부 유럽을 구한 것이다.

중국이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을 인정하지 않는 천주교애국회를 만든 배경에도 교황의 이런 세속적 힘에 대한 우려가 있다. 힘이 있으면 그 힘을 쓰게 된다. 역사 속 가톨릭 교회는 다양한 모습으로 세속의 여러 세력과 조우했다. 이상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하느님 나라를 위한 ‘전쟁’에서 앞장서서 싸우는 게 교황이 할 일이다.

초기 교황 중 33인은 신앙 위해 순교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의 가톨릭은 민주주의·자유주의, 종교의 자유, 정교분리와 ‘싸웠다’. 한국 가톨릭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싸움 과정에서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톨릭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 세속 이념이나 체제와 동맹 관계를 맺기도 하고 맞서기도 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휴머니즘과 손잡고 물질만능주의와 싸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의 형식주의·관료주의·무사안일주의, 마피아와 싸운다. 중국은 교황이라는 존재의 이런 속성에 대해 너무나 잘 안다.

그렇다면 교황은 왜 강한가. ‘가톨릭 신자가 없는 곳은 없다’는 데서 오는 막강한 정보력, 가톨릭 교회가 세계 최고(最古)의 국제적인 조직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에서 나오는 힘’이 교황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가톨릭·정교회·성공회 신자들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에 나오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one, saint, catholic, and apostolic) 교회”를 믿는다. 교회는 하나라는 게 제일 먼저 나온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단일성’을 상징한다. 한국·미국에서 가톨릭 신자보다 개신교 신자가 더 많다. 하지만 미국에서도(신자 수 7000만) 한국에서도(540만) 최대 기독교 교단은 가톨릭 교회다.

순교의 힘도 중요하다. 가톨릭의 초기 교황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의 모범을 보였다. 당연지사였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자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의 후계자니까···. 300여 년 동안 33명의 교황이 순교했다. 초기 교황에 대해서는 변변한 기록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전승에서는 그들이 순교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그노시스파 기독교인들은 ‘순교는 쉽다. 지식을 깨닫는 게 어렵다’라고 했다. 가톨릭 신앙의 선조들은 사자 밥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국 가톨릭 교회 또한 순교자의 교회다. 조선 왕국은 당시 세계적인 문화·문명 선진국이었다. 천주교 신자들을 마구잡이로 붙잡아 죽인 게 아니라 ‘예수·마리아’ 신앙만 부정하면 살리려고 했다. 김대건 신부의 경우에도 그랬다. 김 신부가 나라 밖 사정에 밝고 외국어를 구사하는 똑똑한 젊은이라는 것을 감안해 조정 일각에서는 그를 살리려 했다. 죽음으로 지키는 신앙의 대선배 중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렸다는 전승이 있는 초대 교황 베드로를 비롯해 솔선수범한 교황들이 서있다.

현 교황이 속한 예수회를 창립한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1491~1556)에게 교회에 충성한다는 것은 곧 교황에게 충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황에겐 적도 많았다. 266명의 교황들은 2000여 년 동안 교회의 ‘제도적 생존’(institutional survival)과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교황이라는 직업은 아주 위험하다. 최소 6명이 교살·독살 등의 방법으로 암살됐다. 요한 바오로 1세를 비롯해 다른 13명의 교황에 대해서도 암살 의혹이 떠돈다.

가톨릭 교회는 신중하게 싸운다. 답답하리만큼 신중하다.(답답함을 참지 못한 해방신학 계열 사제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려면 부자들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총을 들기도 했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적 정의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한다는 비판을 듣는다. 비오 11세와 비오 12세는 교황들은 공산주의를 지나치게 두려워한 나머지 무솔리니·히틀러의 전체주의와 유대인 학살에 대해 침묵했다고 비난하는 역사가가 많다. (사실 교회는 조용히 유대인들을 구했다. 교회는 로마에서 3만 명, 유럽 전역에서 40만 명을 살렸다.)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에 대해서도 교회는 쉬쉬했다. 적당히 무마하려는 정점에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가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세계는 이미 탈기독교(post-Christian)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있다. 교황 권력의 현재와 미래는 어떠한가. 모든 미래는 리더십에 달렸다. 미래는 리더가 ‘하기 나름’이다. 누가 리더가 되느냐도 중요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반공’ 교황이었지만 바오로 6세의 경우엔 지나치게 ‘좌편향’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도 ‘개혁보수다’ ‘사회주의자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속의 보는 관점으로 본다면 교황도 좌파·우파·중도파가 있는 것이다.

한데 교황의 리더십이 항상 존중되는 것은 아니다. 교황은 법과 여론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다. 그도 교회법이나 복음의 진리를 지켜야 한다. ‘교황이 정하면 우리 신자들은 따른다’는 식이 아니다. 1869~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황이 교황으로서 신앙의 진리를 말할 때엔 오류가 없다’는 교황무류성 교리를 선포하자 이에 반대하는 신자들이 ‘복고 가톨릭 교회(Old Catholic Church)’를 결성해 가톨릭 교회를 떠났다.

교황이 영토를 지닌 세속 군주로서 전쟁을 수행한 때도 있었다. 이제 교황에겐 바티칸시국 외에 땅이 없다. 그래서 교황권이 더 강해진 측면도 있다. 동시에 교황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사례도 있다. 예컨대 베네딕토 16세는 유럽연합 헌장에 ‘하느님’을 넣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그의 요청은 묵살됐다.

교황의 미래는 산적한 개혁의 성패에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교황의 힘은 그가 선도한 개혁에서 나왔다. 만약 교황이 여성 사제 임명, 동성애 인정, 사제의 결혼 허용 등에 대해 전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진보 가톨릭 신자들은 환호할 것이다. 하지만 보수 가톨릭 신자들은 새로운 ‘복고 가톨릭 교회’를 설립할지 모른다. 성공회에서 여성 사제직을 도입하고 동성연애자 주교까지 나오자 상당수 사제가 가톨릭 교회로 이동했다. 비슷한 일이 가톨릭 교회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교황도 상대적인 좌파·우파 존재
미래에도 세속의 힘은 교황을 위협할 것이다. (내부의 적도 있다. 공의회주의자들은 교황보다 주교들 모임의 결정 사항에 더 큰 힘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정주의 역사가·신학자·종교학자들도 교황을 위협한다. 그들은 이런 주장을 펼친다. ‘베드로는 로마 교회를 창립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로마에 간 적도 없다. 갔더라도 로마 교회가 창립된 지 20년 정도 후에 갔다.’ ‘교황이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성경적 근거는 희박하다.’(세계적인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도 이 주장에 동조한다.) ‘평균적으로 보면 미국 대통령들이 교황들보다 훨씬 바른 삶을 살았다.’(『나는 왜 가톨릭 신자인가』를 쓴 게리 윌스의 주장)

교황의 역사에는 착한 교황, 나쁜 교황, 평범한 교황, 위대한 교황이 등장한다. 성인·천사 같은 교황이 있었는가 하면 색마(色魔) 같은 교황, 성직을 팔아먹는 돈 밝히는 교황도 있었다. 사기꾼·괴물·사이코패스 교황도 있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권력의 화신도 있었다. 그런 나쁜 교황들은 주로 르네상스 시대에 많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알렉산데르 6세다. 그는 적어도 3명의 여인에게서 8명의 자식을 뒀지만 역사상 최고의 경세가(經世家) 교황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매스 미디어의 발달은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니터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체들은 요한 바오로 2세의 리더십이 ‘권위주의적’인지 단지 ‘권위가 있는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나쁜 교황’ ‘무능한 교황’이 나오기 힘든 구조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 교황은 가톨릭 교회를 마치 모세처럼 신자들을 인도했다. 레오 13세는 교회를 산업 시대로 이끌었다.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자들을 현대로 안내했다.

언젠가 로봇들이 인간과 똑같은 지성을 지니게 될 때도, 인류가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는 것 같은 난감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교회를 이끄는 교황들이 나올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만약 외계인이 있다면 교회는 외계인에게 세례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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