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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외국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세상에는 난처한 질문이 많다. ‘몇 살이죠?’ ‘지금 새벽 3시인데 왜 당신에게서 술 냄새가 진동하죠?’와 같은 것들이다. 입사 면접에서 ‘거짓말’하게 만드는 다음 질문도 빠트릴 수 없다. ‘당신의 단점은 뭐죠?’



 내게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 있다. ‘외국인으로서···’로 시작되는 질문이다. 누군가 내게 한국의 정치·요리·문화 등 모든 한국 관련 질문을 할 때마다 이 ‘외국인으로서···’가 접두사처럼 따라 붙는다. 질문자는 내 개인 의견을 묻는 게 아니다. 그에겐 내가 모든 외국인을 대표한다는 암묵적 전제, 기대 심리가 있다.



 내가 실제로 한국에 있는 모든 외국인을 대표했으면 좋겠다. 대변인 구실을 하는 대가로 약간의 수고비를 부과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물론 내게 그런 대표성은 없다. 하지만 내가 뭐라 뭐라 대답하면 이런 반응이 딸려 온다. ‘아, 외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저 제 개인 의견이에요!’라고 수습하게 된다.



 한 잡지와 인터뷰했을 때 다음 질문에 답해야 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음식을 홍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외국인들은 한국 음식을 좋아할까요?’(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정부의 한국 음식에 관한 해외 홍보는 4대 강에 퍼부은 공공 자금 못지않은 역효과를 봤다.) 이런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려면 ‘어떤 외국인 말입니까’라고 나는 되물어야 한다. 토론토에 사는 젊은 남성은 스페인 농촌에 사는 할머니와 음식 취향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아닌 세계의 나머지 99%는 모두 ‘외국인’이다. 그들의 취향은 너무나 다양하다.



 최근 나는 한국산 맥주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었다. 사실 나는 한국 맥주라는 주제에 대해 어쩌면 ‘악명 높은’ 관심이 있다. 기사 내용은 이랬다. 세 명의 서양 사람들이 TV 쇼에 나왔다. 그들은 한국에서 시판되는 대중 시장용 맥주를 즐겨 마신다고 했다. 나도 이렇게 기사에 등장했다. “2012년, 다니엘 튜더가 ‘한국 맥주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고 한 주장과 달리 외국인들에겐 국산 맥주가 인기였다.” 3명에 불과한 조사 표본 때문에, 즉 누군가 한국 맥주를 마시는 3명의 외국인을 찾아냈기 때문에 나는 졸지에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이 돼 버렸다.



 미디어들은 일반인보다 나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예컨대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나를 ‘영국에서 온 4차원 다니엘’로 대한다. 한편 TV에 나오는 외국인들은 ‘희화화’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과장된 인물, 외국적인 모든 것의 대표자로서 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인하고 가벼운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기재로 쓰이고 있다.



 내가 아는 몇몇 사람은 드라마에 나와 꽤 괜찮은 출연료를 받는다. 그들의 극 중 역할은 거만하고 탐욕스러운 비즈니스맨, 술에 잔뜩 취해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원어민 강사, 폭력을 휘두르는 미국인 병사 같은 것들이다. 나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영화 출연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비자 문제 때문에 출연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아주 잘된 일이었다. 고정관념에 영합하는 배역 연기로 영화 속에 영원히 남을 뻔한 것이다.



 나는 아무런 연기 경험이 없다. 아무런 경험이 없는데 뭔가를 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내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의 반 혹은 거의 전부는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종종 나를 고민에 빠트리는 사실이다. 원고나 강연 청탁 같은 기회가 올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이 일을 할 자격이 있을까’ ‘소질이 있는 걸까’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외국인과 관련된 고정 관념을 잘 활용하면 개인적 이익을 챙길 수 있다. ‘한 명의 외국인은 외국인 모두를 대표한다’ ‘한국인과 외국인은 극단적으로 다르다’라는 나이브한 인식을 ‘악용’하는 것은 쉽다.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어를 말할 수 있으며 양파 수프를 좋아하는 외국인이 TV에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한국말, 특히 한국말 방언을 괜찮게 구사하는 프랑스 사람이 청국장을 좋아한다면, TV 토크쇼에 나와 유명하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사실은 청국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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