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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6000억원 바티칸 비밀 금고 71년 만에 공개한 교황

지난달 3일 빗장 하나가 풀렸다. 영어로 ‘Institute for the Works of Religion(IOR:종교사업기구)’이라 불리는 곳의 문에 채워진 것이다. 이름만으론 이곳의 정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럴 땐 세속의 이름이 더 좋다. 바로 ‘바티칸은행’이다. 로마 교황청 산하 프라이빗뱅크(Private Bank)다. 교황과 바티칸 성직자 등의 예금 계좌가 그곳에 있다. 단순히 예금만 취급하는 곳이 아니다. 교황청 핵심 자산을 맡아 수익을 내는 게 핵심 업무다.

 이날 금고문이 ‘활짝’ 열리며 바티칸은행의 자산과 부채 등이 드러났다. 제2차 세계대전 와중인 1942년 설립 이후 최초 공개는 아니다. 지난해 말께 일부 장부를 펼쳐 보이긴 했다. 하지만 모든 장부를 내보이기는 이번이 71년 만에 처음이다. 바티칸은행의 총자산은 33억9101만 유로(약 4조6000억원)였다.

 세속의 반응은 좀 달랐다. 은행이 ‘얼마나 돈을 버는가’엔 별 관심이 없었다. 영국 가디언은 “황금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컸다”고 전했다. 교황청 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2000만 유로(약 273억4000만원)어치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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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이터통신은 “흥미롭게도 금과 같은 액수의 부동산회사 지분이 바티칸은행 장부에 들어 있었다”고 보도했다. 교황청이 보유한 부동산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SGIR이다. 은행은 이외에도 이탈리아 국채가 대부분인 채권을 14억3400만 유로어치 갖고 있었다.

 바티칸은행은 2014년 순이익 전망도 발표했다. 마치 상장기업 경영진이 주주들에게 1~2년 이후 순이익 추정을 밝히는 듯했다. 은행은 “금값과 채권 수익률(시장 금리)이 낮아 적절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올해 돈 벌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놀라운 변화다. 금고 공개는 한 해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13년 6월 28일 이전까지만 해도 바티칸은행은 검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이날 운명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탈리아 경찰이 문지오 스카라노(62) 신부를 전격 체포했다. 바로 바티칸은행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신부다. 혐의는 사기와 부패였다.

 이탈리아 금융계에서 스카라노 신부는 ‘돈(Don:성직자나 영주에 대한 존칭) 500’으로 불렸다. 그가 늘 500유로(약 68만원)짜리 지폐 뭉치를 지니고 다녀서다. 그가 체포되기 직전 바티칸은행이 연루된 현금 수송작전이 들통 났다. 2000만 유로를 개인 비행기 편으로 스위스에서 바티칸은행으로 수송하는 일이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티칸은행이 나폴리의 기업인 부탁을 받고 돈세탁을 도우려 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한 지 석 달밖에 안 된 시점에 가톨릭 역사상 가장 추잡한 금융 스캔들이 불거졌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결단했다. 그는 진보적이고 약자의 벗을 자임하는 교황답게 정공법을 택했다. 바티칸은행 경영진을 모조리 교체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자산 운영 및 인수합병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장바티스트 드 프랑쉬(51) 전 인베스코 유럽 CEO를 영입해 바티칸은행 개혁작업을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금융개혁’이다. 바티칸은행은 우선 보유한 계좌 중 1600개를 폐쇄했다. 주로 무자격자가 개설했거나 제3자가 사용한 게 명백한 계좌들이다.

 이런 개혁은 불가피한 조치다. 바티칸은행은 현금수송 작전이 들통 나기 전에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국과 유럽 은행들로부터 거래 중단 대상이 됐다. 가디언은 “도이체방크 등이 바티칸과 자금 결제·청산을 거부하는 바람에 관광객들이 바티칸에서 신용결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금융개혁은 교황청의 음습한 금융역사를 햇볕 아래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지난달 3일 공개된 장부에서 눈에 띈 것은 바티칸은행이 이탈리아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20년대 초 교황청이 이탈리아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와 벌인 거래를 떠올리게 하는 단서다.

 당시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영토를 통일하고 교황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이를 위해 그는 이탈리아에 있던 가톨릭 교회의 영유지인 교황령(敎皇領)을 현금 및 이탈리아 국채로 맞바꾸는 일을 추진했다. 마침 교황청도 토지보다는 유동성이 좋은 금융자산이 필요한 터였다. 양쪽의 거래는 성사됐다.

 이후 교황청은 거액의 이탈리아 국채 중 일부를 유동성이 더 좋은 금과 미국 국채 등으로 바꾸는 작업(스와프 거래)을 시작했다. 이 일은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이 맡았다. 『금융제국 JP모건』(론 처노)에 따르면 교황청은 이탈리아 국채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금을 사들여 프랑스은행(BOF) 금고에 넣어뒀다.

 그런데 40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다. 교황청은 JP모건의 도움을 받아 금괴를 스웨덴을 거쳐 미국으로 옮겼다. 금은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예치돼 있다.

 바티칸은행의 금은 뜻하지 않은 논란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돌프 히틀러가 벌인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소유했던 금 일부가 바티칸은행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논쟁이다. 금융전문 글로벌파이낸스는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후손들이 바티칸은행의 금 가운데 일부가 부모나 조부모의 것”이라며 “반환소송을 다시 벌일 태세”라고 보도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후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나치 잔당들이 전쟁이 끝난 뒤 희생자들의 금붙이 등을 모아 교황청에 넘겼다”고 주장했다. 후손들은 90년대 말 미국 법원 등에 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소송 자체만으로도 교황청의 어두운 금융역사가 됐다. 가톨릭은 중세에 이자를 죄악시하면서도 환어음 할인과 십자군 전쟁자금 중개 등을 통해 돈놀이를 한 위선을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금융개혁은 가톨릭 역사 속에서 계속 이어졌던 이런 이중성과의 결별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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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