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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희생자 조사…한국인 20명, 일본인에 학살

지난해 6월 주일 한국대사관 청사 이전 과정에서 발견된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일명 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부)에 대한 검증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재일 한국인 20명이 일본인들에게 학살된 사실이 1차 조사결과 확인됐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 측은 "20명 중 11명은 국내에 남아있는 유족과 마을 주민 등을 상대로 한 현지조사로, 나머지 9명은 제적부와 족보 등 문서 자료와 기록을 통해 관동대지진 당시 피살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14일 밝혔다.



정부가 관동대지진 관련 희생자 확인을 위해 공식 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23년 일어난 관동대지진 당시 6000여 명의 재일 한국인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사실 여부가 객관적인 자료와 증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는 없었다.



위원회는 피살자 명부를 바탕으로 지난 1월부터 피살자 명부 검증을 시작했다. 피살자명부는 1952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제에 의한 희생자 조사의 결과물이다. 이 명부에는 289명의 신상정보와 사인 등이 기록돼 있다.



문제는 명부가 관동대지진 발생 후 30년이 지난 시점에 작성됐고, 이후 60년이 더 지나서야 발견돼 사건의 직접적인 증인과 유족 등 참고인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위원회 관계자는 "명부에는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과 일제 징용 피해자에 관한 내용이 섞여 있어 검증작업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지난 6~7월에 우선 경남 지역에 조사관을 파견해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위원회는 289명 중 관동대지진 시기에 사망한 114명을 추렸다. 이후 지난 6~7월에 1차로 경남 지역이 본적지로 돼 있는 희생자 17명에 대한 검증 작업이 이뤄졌다. 조사관들은 현지 조사에서 유족과 마을 주민들을 접촉해 구체적 증언을 청취했다.



경남 의령군 화정면 석천리가 고향인 김홍대씨는 1923년 9월 1일 사망한 것으로 명부에 기록돼 있다. 그의 손자 김판식(55) 씨는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 병이 생겼는데 한국인들이 독극물을 넣었다는 말이 퍼져 (할아버지가) 일본인들에게 맞아 돌아가신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유족으로부터는 "지진 당시 한국사람들은 도둑놈 취급을 받았다"며 "대나무 숲에 숨으면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등 걸리는 족족 다 죽였다는 얘기를 집안 어른들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이 마을 출신으로 당시 일본에 건너갔다가 관동대지진 때 사망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후손들은 지진이 일어난 다음 날인 음력 7월 21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한때 이 마을에서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7~8집에 달했을 정도다. 올해는 광복절 다음 날인 양력 8월 16일이 기일이라고 한다.

위원회 정혜경 조사2과장은 "이전에는 관동대지진 피해자 실체를 정부차원에서 파악해 본 적이 없었다"며 "홀로코스트 문제를 파헤쳐 독일의 보상을 이끌어낸 이스라엘 '야드 바셈' 처럼 이번 조사가 일본에 대한 피해자 보상 요구 등을 위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야드 바셈'은 600만 유대인 대학살을 추모하는 추모관으로 나치독일에 의해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 등에서 벌어진 학살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위원회 안팎에서는 검증 작업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예산·인력 지원 등은 턱없이 모자라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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