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어느 누구로부터도 빌릴 수 없지만 통일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감(sympathy) 능력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요 가장 고귀한 존재로서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최근 일본인 독일 전문가를 만나 독일 통일이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을 물었다. 경제학 교수인 그의 대답은 교회라는 것이었다. 동독은 사회주의였지만 교회가 남아 있어 동독 주민의 시민의식이 싹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으며 이것이 동독 정권에 대한 비폭력 저항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서독 주민도 동독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돕기 위한 재정 지출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불행히도 한국인의 공감 능력은 바닥 수준이다. 2010년의 세계가치관조사에 따르면 한국 응답자의 40%만 관용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자녀 양육 시 가르쳐야 할 중요한 덕목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는 스웨덴의 87%, 미국의 72%, 일본의 65%에 크게 뒤졌을 뿐 아니라 이집트, 우크라이나, 중국보다 낮아 조사 대상 52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었다. 또한 “사회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것은 중요하다”라는 말에 동의하는 정도로 볼 때 한국은 꼴찌에서 두 번째에 머물렀다. 반면 물질주의 정도를 보여주는 한 지표에서는 한국보다 일인당 소득이 높으면서 더 물질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나라는 없었다.
필자를 포함한 연구팀이 최근 북한에서 나온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북한 주민은 세계에서 가장 집단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익명의 상대방과 자발적으로 자신이 받은 돈을 나눌 수 있도록 한 게임에서 나온 결과다. 자신이 받은 돈 중에서 탈북자는 평균적으로 거의 절반을 아무 조건 없이 익명의 상대방과 나누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성향, 즉 자신이 받은 돈의 20% 정도를 나누는 것에 비하면 두 배 이상의 수준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물질지향적인 남한 주민과 가장 집단주의적인 북한 주민이 만나 섞여 살면 그 파열음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르치고 체득하지 않는다면 통일을 하더라도 사회통합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윤 일병 사건은 우리 사회가 인간 존중의 면에서 얼마나 저열한 수준에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 돌이켜 공감의 능력을 배양하고 공정과 배려의 삶을 배우지 못한다면 통일은 오지 않을 것이며 오더라도 큰 고통을 수반할 것이다. 좋은 통일은 정책과 돈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격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 주민에게 공감의 능력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통일관도 경제적 이익, 불리만 따지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들의 고통을 근원적으로 치유하는 방법으로서 통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통일이 되면 세금을 많이 부담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해 유보적인 의견을 갖는 것은 나름 합리적이다. 그러나 경제통합이나 통일이 가져올 긍정적인 도전과 기회를 바라보며 청년들은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웃이자 동포인 북한 주민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기회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바로 이 공감 능력이 통일의 진정한 기초이자 동력이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