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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기자는 고은맘] 일찍 클릭하는 엄마가 얼집을 잡는다





얼집(아이 엄마들 사이에서 ‘어린이집’을 줄여 부르는 말)이 부족하다는 건 기사로 봐서 알고 있었지만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집 주변에 어린이집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콩알 만한(?) 고은양 하나 갈 곳 없겠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임신 6개월 쯤인가, 후배들과 밥을 먹는데 경천동지할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마 복지부를 출입하던 후배였을 겁니다. 저보고 얼집을 신청했냐고요. (부끄럽지만) 처음 듣는 얘기였습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어떻게 등록을 하고 신청을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 얘기로는 뱃속에 있을 때 신청해 놓지 않으면 휴직 후 복직할 때까지 자리가 안 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당장 서울시 보육포털사이트(iseoul.seoul.go.kr)에 들어갔습니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얼집 관련된 안 좋은 얘기가 하도 많다 보니, 그나마 질이 보장된다는 구립어린이집만 검색해서 신청했습니다. 이게 뭐라고 대기순번 나올 때까지 잠깐 떨리더군요. 그렇지만 나온 대기 순번은 소망과는 달리 저~ 뒤쪽이었습니다. 적게는 100번대, 많게는 300번대. 특히 지나가면서 ‘저 얼집은 참 좋아보인다’ 싶던 곳은 대기순번이 500번에 육박했습니다. 하긴, 그 좋다고 소문난 삼성어린이집은 “태중에 신청했는데 애가 학교 들어가니까 연락오더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실제로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어떤 엄마가 지난 4월 말에 선릉삼성어린이집에 신청했는데 대기순번이 2617번에 달했다는 글도 있더군요).

당장 고은양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출산 후 휴직, 복직까지는 한참 남았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습니다. 친구의 “한 엄마가 여러 군데 신청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허수가 많다, 그러니 생각지도 않게 금방 자리가 날 거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됐습니다.

지난 봄이었나, 제가 사는 아파트 1층 얼집에서 원아를 모집한다는 전단지를 봤습니다. 아파트 1층 얼집은 민간 어린이집이라 당초의 고려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정 자리가 안 나면 가까우니깐 보낸다’는 심산이었죠. 민간이기 때문에 자리는 언제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그런(원아가 없어 직접 모집한다는) 전단지까지 보니 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지난주 오랜만에 보육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봤습니다. 아직 고은양이 어려서 얼집에 보내기는 좀 꺼림칙한데 순번이 됐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습니다. 대기순번이 짧은 것은 48번, 그 좋아 보인다는 얼집은 160번에 달했습니다. 순번이 짧은 건 애초에 대기자가 별로 없던 곳이었고요. 이 추세로 가다가는 제가 출근하고 나서 한참은 지나야 고은양 차례가 올 것 같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고은양 갈 곳이 없으면 이 콩알만한 걸 두고 어떻게 출근하나 싶었습니다.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고은양을 안아 들고 당장 아파트 1층 얼집으로 향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사람이 나왔습니다. 어째 반응이 뜨뜻미지근합니다. 저는 굉장히 환대받을 줄 알았습니다. 어쨌든 손님(?)을 보내겠다는데 마다할 가게가 있겠냐, 고 생각했죠. 현관문을 반쯤 여는 품새가 오히려 경계하는 분위기입니다. 아기들이 지내는 곳이다 보니 아무래도 위생이나 안전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습니다.

처음에는 좀 빈정상했는데 생각해보니 오히려 안심이 되더군요. 어깨띠로 안은 고은양을 보이면서 ‘언제 아기를 보낼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엄마가 편할 때’라는 답을 기대했건만 돌아오는 답은 좌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정원이 모두 찼다, 더 이상 아기를 받을 수 없다, 고 하더군요. 원아모집 전단지를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민간이라고 제가 너무 우습게 봤나 봅니다. 여기도 대기 순번이 밀렸습니다.

그래도 민간인데, 읍소해 보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내년에 출근할 건데 아기를 봐 줄 사람이 없어 여기 밖에는 대안이 없다, 이 아파트 사는데 주민 먼저 배려해주면 안 되겠느냐, 등. 그렇지만 얼집 선생님은 단호했습니다. 아파트 얼집이라 누군가 이사를 가야 자리가 난다, 언제 자리가 날 지 장담할 수 없다, 출근하기 전 따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요. 그러면서 일단 보육포털에 가서 대기순번에 올리랍니다. 저는 직접 찾아가 고은양을 무기로 들이밀면 뭔가 어드밴티지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모든 건 그 보육포털에서 이뤄진다네요. 이러니 새치기, 낙하산 등 꼼수가 통할 수 없나 봅니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보육포털에 등록하니 대기 순번이 30번입니다(초조한 마음에 자주 대기순번 확인해 보는데 오늘 순번이 31번으로 밀렸습니다 ㅠ.

다자녀 저소득층 등 저보다 조건이 순위가 앞서는 사람이 치고 들어왔나 봅니다). 순번이 짧기는 한데 왠지 허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남편 직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얼집이 없습니다. 얼집 있는 곳으로 이직을 시켜야 하나(제가 이직할 수는 없으니 ㅋ).

얼집에 맡기는 것 자체가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마저 없습니다. 아기는 많은데 얼집은 없네요.

일찍 클릭하는 엄마가 얼집을 잡는 거였습니다.
고은양, 게으른 엄마라
미안하다!!!

ps. 신문에서 ‘시간제 보육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기사를 보고 냉큼 들어가서 확인해 봤습니다. 저도 가끔은 ‘고은양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거든요. 그런데 이 서비스, 완전히 그림의 떡입니다. 오는 10월 서비스를 확대한다고 하지만 현재 제 집 근처에는 잠깐 아기를 봐 주는 어린이집이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고란 기자

[사진 설명]

1) 풍뎅이로 변신한 고은냥. 매미도 맛있게 냠냠

2) 얼마면 돼? 수박 장사 고은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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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