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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할 위험, 피할 위험 철저 구분 … 왕의 명령도 안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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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1592~98)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순신을 모를 것이다. 이순신은 미관말직을 전전하다가 전쟁의 위기가 다가오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쟁 발발 1년 2개월 전에 유성룡 등의 천거로 종6품 정읍 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로 발탁됐다. 한번에 무려 7품계나 특별 승진을 한 셈이다.

왜 지금 이순신인가 <하> 위기관리의 리더십
"소굴에 숨은 적 경솔히 칠수 없다"
선조의 명 거듭 거부해 백의종군
밝은 달밤에도 야습 철통 경계
예측대로 적 쳐들어왔지만 격퇴



이순신은 전라좌수사 임명 즉시 병력 충원과 훈련, 무기 제조와 군수물자 확보에 매진했다. 임란 하루 전에는 화포의 시험발사에도 성공해 거북선 개발을 완료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적의 공격에 더욱 철저히 대비했다.



지용희 교수
유성룡이 남긴 『징비록』에는 달 밝은 밤 이순신이 적의 야습을 예측하고 엄한 경계를 명했으며, 그날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자 “여러 장수들이 이순신을 신으로 여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순신은 진중에 있을 때 주야로 엄히 경계하여 한 번도 갑옷을 벗은 적이 없었다. … 많은 적선들이 어두운 산 그림자 속을 거쳐 쳐들어 왔으나… 적은 우리를 범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부하들은 달이 매우 밝아 적의 기습은 없을 것이라고 방심했지만 이순신만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적의 기습 가능성을 하나하나 검토하고 대비했다. 달빛이 밝아도 달이 기울며 산 그림자가 드리우니 이 틈을 타 적이 기습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순신은 옥포·한산도·부산·명량·노량 등 수많은 해전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항상 우리 수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승리했다. 그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무모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임금인 선조가 적의 소굴로 쳐들어가라고 명했지만 이를 따르지 않았다. 1594년 9월 3일의 일기다.



 “새벽에 밀지(密旨: 임금이 비밀리에 내리는 명령)가 왔다. 임금께서 ‘수륙 여러 장수들이 팔짱만 끼고 서로 바라보면서 한가지라도 계책을 세워 적을 치는 일이 없다’라고 하셨지만, 3년 동안 해상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죽음을 맹세하고 원수를 갚으려고 하루 하루를 보내지만 적이 험난한 소굴에 웅거하고 있으므로 경솔히 나가 칠 수는 없다.”

이후에도 또다시 선조가 공격을 명했으나 이순신은 따르지 않았다. 이것이 빌미가 돼 감옥에 끌려가고 백의종군이라는 곤욕을 치르게 된다. 이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임금의 명에 따라 무모하게 공격하다가 우리 수군은 괴멸당했다.



 이순신은 위험을 회피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하겠다고 나섰다. 명량해전 직전에 이순신이 12척의 전선으로 수백 척에 달하는 적선의 침입을 저지하려고 하자, 임금은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순신은 다음 같은 글을 임금에게 올렸다.



 “만일 지금 수군을 없앤다면 적이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이며, 적은 호남과 호서의 연해안을 돌아 한강으로 올 것입니다. 신은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순신은 기피해야 할 위험과 감수해야 할 위험을 정확히 구분했다. 『손자병법』에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말이 있다. ‘미리 이겨 놓고 난 후에 싸운다’는 뜻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려면 싸움 전에 미리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순신은 미리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전투에 임했기에 연전 연승할 수 있었다.



 이순신은 지형·조류 등 지리적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명량해협의 좁은 물목인 울둘목을 전투장소로 택했다. 일본 전선 중 가장 크고 전투력이 강한 안택선은 직접 전투에 나가지 못하고 규모가 작은 관선 133척만 참여할 수 있었다.



또 이순신은 좁은 물목을 간신히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일본 군선들에 화포를 집중하고, 명량해협의 빠른 조류도 적극 활용해 대승을 거뒀다.



 임진왜란은 조선·일본·중국이 7년 동안 싸운 처절한 전쟁이다. 조선 산하는 쑥대밭이 됐다. 이순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조건에서도 빈틈없는 자세로 국가 존망의 위기를 헤쳐나갔다. 그가 보여준 위기관리 리더십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사례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다. 지능지수(IQ)·감성지수(EQ)뿐만 아니라,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끈질기게 노력하는가를 나타내는 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AQ)가 높은 리더가 요청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이순신이 보여준 높은 역경지수, 위기대비 태세, 리스크 평가와 위험감수(calculated risk-taking), 선승구전 전략, 희생정신을 벤치마킹해야 할 시기다.



지용희 교수



◆지용희(71)=세종대 석좌교수. 이순신리더십연구회 이사장. 한국경영연구원 이사장. 저서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중소기업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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