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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론’은 바티칸의 골칫거리이자 숨은 우군

렘브란트(1606~69)가 그린 ‘설교하는 그리스도’(1646~50년께). 렘브란트는 사실적 예수를 그리기 위해 당시 그가 만난 유대인들을 모델로 삼았다.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외워!” 학교 다닐 때 들어본 말이다. 일단 무조건 외우고 나면 신기하게도 이해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는 게 우리 학창 시절 경험이다.

[14일 교황 방한] ‘역사적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주 한국에 온다. 그가 믿는 가톨릭 신앙에는 ‘믿을 교리’가 있다. ‘믿을 교리’는 이성적으로는, 적어도 처음엔 전혀 이해가 안 되지만 교회가 2000여 년 전부터 믿었던 ‘진리’들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이 됐다는 것을 믿는다. 하느님이 사람이 돼 인류 역사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는 것이다.

  인간 예수는 슬퍼했다. 원망하기도 했고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절망도 했다. 그는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최후 심판의 날’의 도래 날짜처럼 모르는 것도 있었다. 가톨릭 교회를 비롯, 대다수 정통파 기독교의 신앙고백은 예수는 ‘100% 인간이자 100%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50% 인간이자 50% 하느님’이라고 한다든가, ‘30% 인간에 70% 하느님’이라고 하면 ‘이단’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또한 그냥 하느님이다.

왼쪽부터 도미닉 크로산의 『예수』, 게저 베르메시의 『유대인 예수』, 슈바이처의 『역사적 예수 탐구』, 정통 가톨릭 입장에서 쓴 파피니의 『예수 이야기』,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쓴 『나자렛 예수』.
전임 교황, 책 펴내며 전통신앙 방어
가톨릭 교회에서는 또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성모 마리아·The Mother of God)’라고 부른다. 마리아는 어떤 신적인(divine) 존재가 아니다. 가톨릭 교리상으로 마리아를 신(神)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이단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성자(聖子) 하느님’인 예수를 낳았기에 ‘인간 예수의 어머니’이자 ‘하느님의 어머니’다. 마리아는 100% 인간이다. 그런 그가 100% 하느님인 예수를 낳았다. 신앙적 미스터리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런 ‘황당무계’한 것들을 믿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는 신앙을 증거하고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주저하지 않고 내놓는다. 교황이 이번에 한국에 오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대다수가 순교자인 124위 복자를 기리기 위해서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은 기독교를 믿는다. 여러 기독교 교회 중에서 가장 많은 신자 수를 자랑하는 가톨릭 교회(신자 수 12억명, 개신교는 8억 명)의 우두머리인 프란치스코 교황에겐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바티칸 금융 개혁, 여성 사제직 임명, 동성 결혼 등 골치 아픈 문제들이 많다. 어쩌면 이번 한국 방문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잠시 보내는 ‘화려하고도 평안한 휴가’다. 교황의 잠재적 ‘골칫거리’ 중 하나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를 추구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전임자인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역사적 예수론’에 대응하기 위해 『나자렛 예수』(2007)를 집필했다. ‘교황이 얼마나 할 일이 많은 데 한가하게 책이나 쓰고 있느냐’는 비난을 들었지만 교황 입장에서는 ‘역사적 예수’ 운동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역사적 예수’ 혹은 ‘역사의 예수(Jesus of history)’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를 분리해 생각한다. ‘믿음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교리와 같은 ‘믿을 교리’와 관련된 것이다. 반면 ‘역사적 예수’의 대상은 ‘100% 인간, 100% 하느님’인 예수 중에서 ‘100% 인간 예수’와 관련됐다. 예수는 인간으로서 30여 년 동안 이 땅, 지구의 한 모퉁이인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다. ‘믿음의 그리스도’는 역사를 초월한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는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전기(傳記)를 쓰는 게 가능하다.

 칭기즈칸·링컨·처칠·이순신 등 어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기를 쓰려는 전기작가나 사학자는 어떻게 전기 집필에 착수할까. 일단 자료를 모을 것이다. 자료 중에서 신빙성 있는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추릴 것이다. 그런 다음 나름대로 ‘이게 아무개의 본모습’이라는 주장을 펼칠 것이다. 신약 성경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예수’의 재구성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역사적 예수’의 추적자들은 신약 성경에서 많은 모순점을 발견한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뭔가 ‘이상한’ 부분을 파헤쳐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한다.

 정통 신앙인들은 성경에서 드러나는 ‘메시아 예수’ ‘주님이신 예수’ ‘구세주 예수’ ‘하느님의 아들 예수’ ‘인간의 아들 예수’ ‘하느님이신 예수’ 사이에서 아무런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다. 모든 게 다 수미일관(首尾一貫) 무리 없이 착착 이해가 된다. 그래서 정통 신앙인들이 보기에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친다. 이런 것들이다.

 -예수는 나자렛에서 태어났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게 아니다. 이집트에 가지 않았다.
 -예수는 다윗 왕의 후손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예수는 사회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아니면 정반대로 예수는 공자나 소크라테스 같은 위대한 인류의 ‘윤리적 스승’이었다.
 -예수가 행한 대부분의 기적은 없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말과 행적은 대부분 ‘가짜’다.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 부활했다면 상징적인 의미로 신앙인들의 ‘마음 속’에서 부활했다.
 -예수에겐 적어도 4명의 형제가 있었다(개신교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주장).
 -예수는 무덤에 묻히지 못했다.
 -예수는 ‘파티광(party狂)’이었다. 술을 좋아했기에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 전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금주 선언’을 했다.

제퍼슨·슈바이처 등 ‘역사적 예수’ 연구
몇 가지 이유에서 ‘역사적 예수’그룹을 무시할 수 없다. 첫째, ‘역사적 예수’ 탐구운동은 어제오늘 시작된 운동이 아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의문은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싹텄다. ‘역사적 예수’ 탐구의 아버지는 헤르만 자무엘 라이마루스(1694~1768)다. 그는 예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봤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으로 미국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1743~1826) 또한 ‘역사적 예수’운동의 초기 가담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성경에서 ‘믿을 만한’ 내용만 추려내 『제퍼슨 성경』이라는 것을 집필했다. ‘아마존’에서 살 수 있는 책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슈바이처 박사가 가봉으로 가서 의료봉사를 하기 전에 몰두한 것도 ‘역사적 예수’ 찾기였다. 슈바이처 박사는 『역사적 예수 탐구』(1906)를 집필했다.

 둘째, 현대 ‘역사적 예수’ 연구그룹은 가톨릭·개신교·유대교의 신학자·성직자·종교학자·평신도들로 구성된다. 그들 중엔 ‘소설’ 쓰는 황당한 사기꾼도 있지만, 대부분은 각 교단·종교계에서 명망이 높은 사람들이다. 신약 성경의 예수의 말과 행적은 20%만 진짜라고 보는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멤버들은 대부분 신학과·종교학과 교수다. 옥스퍼드대·하버드대 교수도 있다.

 셋째, ‘역사적 예수’는 산업이다. 산업이라서 탄탄하다. 예수는 ‘아이돌’이다. 예수 ‘팬’들은 예수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 주일학교에서 배운 것들, 일요일에 신부·목사들에게 듣는 것으로 신앙인들의 ‘목마름’이 다 해소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적 예수’에 열광한다.

 넷째, ‘역사적 예수’운동은 일면 ‘영적’이다. 근본주의(fundamentalism) 신앙인이 보기에는 ‘역사적 예수’ 운운하는 것은 무신론으로 가는 중간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상당수 신앙이 흔들리던 사람들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책을 읽고 다시 신앙을 회복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통 신앙인들이 방심할 때 ‘눈물의 회개’가 ‘역사적 예수’운동에서 성취되고 있다.

 다섯째, ‘역사적 예수’운동은 나름대로 성경적인 근거가 있다. ‘악마도 성경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편다’고 했다. 정통파 신앙인 못지않게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교인들도 성경을 열심히 공부한다.

 여섯째, ‘역사적 예수’운동은 신학에 역사학·고고학·사회학 등 사회과학 등의 성과를 접목했다. 즉 방법론이 탄탄하다.

 일곱째, ‘역사적 예수’운동은 ‘종교 간 대화’ ‘기독교 교회 일치주의(ecumenism)’의 흐름을 타고 있다. ‘역사적 예수’운동의 최근 추세는 ‘유대인 예수’다. 『유대인 예수』(1973)를 지은 게저 베르메시를 필두로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유대인 예수』를 중심으로 실행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2011년 『유대교 주석 신약 성경(The Jewish Annotated NRSV New Testament)』을 발간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은 국제정치의 진리가 아니라 기독교 내부의 진리이기도 하다. 국제정치에서도 종교에서도 새로운 ‘재배열(realignment)’이 일어난다. 방언을 하는 오순절 교회 계통(우리나라 순복음교회 등) 신자는 방언을 하지 않는 장로교 신자보다는 같이 방언을 하는 가톨릭 신자에게 더 큰 친밀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 예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예수’를 ‘믿는’ 감리교 신자는, 같은 개신교 신자들보다 ‘역사적 예수’의 주장에 대해 공감하는 가톨릭 신자들과 더 많은 것을 공유한다.

 이런 배경에서 ‘역사적 예수’운동이 이미 ‘다른 종교다’ ‘별도의 그리스도교 교단이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역사적 예수’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적’ 가톨릭과 개신교가 이미 하나가 됐다고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기독교 일치를 추구하는, ‘기독교의 장자(長子)’ 가톨릭의 입장에서 ‘역사적 예수’운동은 ‘뜨거운 감자’이자 ‘히든(hidden)’ 우군(友軍)이다.

 아직은 정통파 그리스도교와 ‘역사적 예수’ 그룹 간의 본격적인 교류나 ‘정반합(正反合)’은 없다. ‘역사적 예수’ 문헌에서 영감을 얻는 근본주의자들은 극히 소수다. 하지만 예수를 중심으로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뭉칠 가능성, 모든 종교가 믿음을 중심으로 뭉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그게 어쩌면 신앙의 역사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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