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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셜록 홈스의 후계자들 추리를 시작하다

‘고민중 박사 사망 사건’ 현장을 찾은 김미림(왼쪽. 서울 고척중 3)양과 조문경(경기도 용인 백현중 3)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표창원 박사(가운데)와 함께 CSI·프로파일러로 변신했다.


역사학자 고민중 박사가 사망했다. 시신 옆에는 수면제 통과 알약이 흩어져 있었고, 테이블 위엔 ‘그동안 힘들고 외로웠다’고 적힌 유서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자살일 리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내일은 물론이고 몇 달 간 일정이 빡빡했으며,신간 출판 날짜까지 잡혀 있어 어느 때보다 집필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학계는 물론이고 그의 책을 좋아하던 독자들까지도 충격에 빠진 고민중 박사 사망 사건.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가 나섰다.

학생 CSI·프로파일러로 변신한 김예진(서울 고척고 2)·김미림(서울 고척중 3)양과 조문경(경기도 용인 백현중 3)군이 사건 현장으로 떠났다.

사건 현장

8월 ○일 오전 10시 30분. 역사학자 고민중 박사가 자신의 집 거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진은 고민중 박사가 죽은 사건 현장의 모습.

2014년 8월 ○일. 서울 경찰청 112에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인은 고민중 박사의 동료로 한국역사탐구학회 학술이사이자 역사과학연구소장인 배신남 박사. 배씨는 “중요한 학회를 앞두고 고 박사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피해자 이름은 고민중. 48세 남성이며 키는 173㎝, 보통 체형. 고3인 딸과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경찰 최초 임장(현장) 보고서에 따르면 현관문에 가볍게 긁힌 자국을 제외하고 아파트 입구와 계단, 승강기와 복도에 핏자국이나 파손품 등의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현관과 거실 사이 바닥에는 운동화로 추정되는 족적이 발견됐다. 거실 책꽂이의 책들이 어지럽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빈집털이범이 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시신 옆에는 수면제로 보이는 약통과 알약이 흩어져 있다. 거실 테이블에는 술병, 술잔과 함께 유서로 보이는 메모가 있었다. ‘그동안 힘들었고,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고 적힌 메모다. 고씨의 목에는 끈에 졸린 듯 빨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테이블의 한쪽 의자는 뒤에서 힘이 가해진 듯 등받이가 젖혀져 있었다. 또 테이블에서 현관에 이르기까지 핏자국이 있었다. 흉기나 기타 특이사항은 발견하지 못했다.

프로파일링 1차 피해자 분석에 따르면 고씨는 촉망받는 학자이나 심약한 성격으로 선배나 동료들의 질시와 비판에 남몰래 괴로워했으며 후배들에게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또 가정 문제 등으로 고민이 많았을 가능성도 나왔다.

발견된 증거

현장에 남겨진 족적·지문·DNA·피 등 사건의 미세 증거를 수집했다. 학생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요원이 채집한 증거를 국과수 및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서 감정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고민중의 집 거실 테이블 위에는 혼자 먹은 듯한 컵과 술병, 그리고 수면제 알약과 함께 유서로 보이는 메모가 놓여 있었다.
2 거실 바닥의 핏자국은 테이블이 있는 곳부터 현관까지 연결돼 있었다. 형태로 보아 어느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3 고민중의 시신 옆에서 발견된 수면제 약통과 알약들. 시신의 손과 수면제 약통에서는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섬유가 채집됐다.

①테이블 위 컵에서 검출된 지문은 고민중 박사의 것으로 드러났다. ②소파 밑에서 발견된 한 장의 트럼프 카드 표면에서 검출된 지문은 고씨의 후배 ‘유능한’의 것이다. ③거실 바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DNA는 고씨의 딸 ‘고소란’의 것이며 ④거실 바닥에 떨어진 혈흔은 고씨의 아내 ‘엄춘란’의 DNA와 일치했다. ⑤현관 근처에서 발견된 족적은 265㎜ 나이세 운동화(2010년 8월 말레이시아 공장 생산 ‘아쿠아’ 브랜드)로 밝혀졌으며 인근 아파트에서 절도 후 도주하다 검거된 절도전과 7범 나진범의 운동화와 일치했다. 또한 ⑥통신 수사 결과 고씨와 마지막 통화(시신 발견 3일 전 오후 9시 30분)를 한 사람은 그의 동료인 배신남 박사였다.

사체강직, 직장온도, 위 내용물 소화상태 및 시반(시신에 나타나는 자줏빛 반점)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고씨의 사망 추정시간은 이틀 전 오전 4시부터 사흘 전 오전 10시 사이로 추정됐다. 고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04%. 일반 성인 남성 기준 만취 상태다. 혈액 및 위 내용물에서 수면제 성분인 페노바르비탈이 검출됐다. 목 부위에 피하 출혈과 표피박탈, 얼굴 울혈 현상 외에는 뚜렷한 외상이나 골절 등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4 형광 시약으로 지문을 발견한 거실 소파 밑 트럼프 카드.
5 형광 시약 처리를 하면 종이에 묻은 지문도 알아낼 수 있다.
6 전기가 통하는 전사지로 형태를 떠낸 족적.
7 루미놀 실험으로 거실의 핏자국이 사람의 혈흔인 것을 확인했다.

6명의 용의자

첫 번째 용의자는 ‘고민중’이다. 혐의는 자살. 증거는 유서로 보이는 메모와 혼자 마신 술(술잔은 하나였다), 부검 결과 검출된 수면제 성분이다. 고씨는 평소 동료들의 시기와 모함에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문제 등으로 고민했을 가능성도 있으며 동료인 배신남 박사는 고씨를 두고 “사생활이 어둡고 가정도 깨지기 일보직전이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용의자는 피해자의 동료 ‘배신남’ 박사다. 오랜 세월 무명학자의 설움을 맛본 배씨는 학계와 언론, 대중의 관심을 받는 고민중 박사를 질투해왔다. 고씨와 마지막 통화를 한 사람은 배씨다. 그는 고씨가 이미 사망한 후에도 10여 차례 전화를 했다. 고씨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도 배씨다.

세 번째 용의자는 ‘유능한’. 젊은 사학자로 고씨의 절친한 후배다. 고씨가 배신남과 통화하기 1시간 30분 전 유씨와 통화했으며 사건 현장 소파 밑에서 발견된 트럼프 카드에서 유씨의 지문이 검출됐다. 유씨는 “한 달 전, 고 박사가 내게 카드점을 봐준다고 했을 때 바닥에 떨어진 것 같다”고 주장했다.

네 번째 용의자 나진범은 전과 7범의 전과자다. 사건 현장에 남겨진 족적(발자국)은 나진범이 신고 있던 운동화와 크기·제조사·모델이 같고 닳은 흔적도 일치한다. 나씨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다섯 번째 용의자는 고씨의 아내 엄춘란이다. 교양 넘치는 교수의 아내라는 겉모습과 달리 실제 성격은 과격해 평소 남편 고씨를 자주 구박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목격한 주변인의 증언도 나왔다. 사망 추정시간부터 시신이 발견됐을 때까지 3일간 남편을 찾지 않았으며 연락도 하지 않았다. 엄씨는 “고3 딸이 염색에 파마를 하고 와 홧김에 머리를 자르다 가위에 팔을 다쳐 친정에 가서 쉬고 왔다”고 진술했다.

마지막 용의자는 고씨의 딸 고소란. 문제 청소년이며 이성관계가 복잡하고 부모와도 자주 다투고 반항이 심해 사이가 좋지 않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은 DNA 검사결과 고양의 것이었다. 고양은 “그래도 아빠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며 “아빠는 자살한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글=이세라 기자 ,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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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