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이정재의 시시각각] 10명의 이정현이 나와야

이정재
논설위원
강호에서 낭인이 어느 날 갑자기 무림고수가 되는 일은 흔치 않다. 있다 한들, 무협소설에나 나올 법한 얘기다. 왜 그런가. 소위 명문대파의 텃세 때문이다. 낡고 썩어간다고는 하나 명문대파의 힘은 결코 녹록지 않다. 특히 작금 강호를 양분하고 있는 새누리방과 새정련의 힘은 천하제일이다. 몇 해 전 천하를 삼킬 듯 일어났던 새정치신공의 철수공자도 세 불리를 깨닫고 결국 강호 제2방파인 새정련의 그늘 아래 몸을 맡기지 않았던가.

 명문대파의 힘은 어디서 나오나. 지역신공이다. 60년 무림사, 무수히 많은 절정고수가 이 무공의 희생양이 됐다. 새누리방의 영남신공과 새정련의 호남신공으로 대표되는 지역신공은 무소불위, 천하무적이었다. 어떤 바람도, 어떤 인물도, 어떤 무공도 지역신공 앞엔 무용지물이었다. 새정련의 모든 무공은 영남신공을 이기지 못했고, 새누리방의 어떤 초식도 호남신공 앞엔 무력했다. 불패·불멸의 마공. 오죽하면 ‘지역신공 앞에 새 정치는 없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무력(武曆) 2014년 7월 30일. 마침내 호남신공이 파훼됐다. 설마? 강호인들은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주인공은 스스로 ‘꿈꾸는 이’라 이름한 정현몽자(夢子). 그는 낡은 자전거 하나에 몸을 싣고 순천·곡성무림을 주유했다. 무림은 그가 파(破)호남신공을 들고 나왔을 때 비웃었으며 예산폭탄초식을 휘둘러댈 때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지도에 없는 길을 가려는 자’란 비아냥은 호남 비무가 끝난 뒤엔 ‘지도에 없는 길을 간 자’로 바꿔 불리게 됐다. 강호 논객들은 “그의 앞엔 길이 없었지만, 그가 지나간 후엔 길이 생겼다”고 적었다.

 새누리방의 호남 출신 3선 고수 두언객의 평은 이랬다.

 “지역신공도 깨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무림이 통째로 바뀔 수 있는 대사건이다. 하지만 그 혼자선 안 된다. 파(破)경상신공으로 경상신공을 깨뜨리는 이가 나와야 한다. 이런 고수가 10명만 나오면 강호개조가 가능할 것이다.”

 새누리방과 새정련은 지역신공을 내세워 자파 무인들의 충성을 강요한다. 특히 영·호남 비무에 나서려는 고수들은 방과 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자칫 눈에서 벗어나면 지역신공을 전수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림의회가 눈치보기, 줄서기 천국이 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강남·대구·광주무림처럼 지역신공의 위력이 특히 강한 곳은 방과 련의 명령이 절대적이고, 눈치보기도 극심하다. 그러니 소신무공이나 민초·민생초식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그럼 정현몽자는 어떻게 이겼나. 무림 평자들은 예산폭탄초식을 일등공신으로 꼽는다. 달리 민초주머니불리기초식(Pocket Value Voting)으로 불리는 이 무공이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그의 측근은 “정현몽자는 무림에 발을 들여놓은 후 20여 년 돌쇠처럼 우직하게 파호남신공과 예산초식을 연마했다. 오죽했으면 호남예산지킴이로 불렸겠나. ‘호남포기전략을 포기하라’는 그의 외침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지역신공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그의 이런 정순한 내공과 진정성을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게 다 일까. 정현몽자는 알려진 대로 무림여제 근혜낭자의 복심. 비무에 지면 모든 것을 잃는 다른 고수와 달랐다. 패해도 후직이 보장되니 부담 없는 싸움이 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새정련의 무리수가 일등공신이다. 지역신공만 믿고 내공도 초식도 못 갖춘 하수들을 싸움에 밀어넣었다. ‘지역신공으로 흥한 자, 지역신공으로 망하리라’. 새정련은 이 뼈아픈 교훈을 잊었던 것이다. 그 오만의 빈틈을 정현몽자는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꿈꾸는 자, 정현. 그가 오늘 무림국회로 온다. 순천·곡성무림의 대표로 온다. 비무가 끝난 뒤 그는 일주일을 더 호남무림에서 지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꿈을 다지고 다졌을 것이다. 그 꿈의 끝이 뭐든, 강호는 이제 그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 몽자의 씨앗이 10배로 열매 맺는 날 강호 무림에도 후천개벽이 열리리라.

이정재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