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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남북 감정싸움, 이성과 지혜로 풀어야

김근식
경남대 교수
정치외교학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여름 열대야의 짜증처럼 남북도 감정이 상해 있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를 괴뢰정부 호전광으로 비난하고 대통령 실명까지 거론하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청와대 안주인의 치맛바람이니 푼수 없이 핏대를 세운다느니 입에 담기 힘든 단어들이다.

 한국 역시 즉자적으로 맞대응하면서 북한의 대화 제의를 진정성 없는 평화공세로 간주하고 일관되게 거부하고 있다. 오랜만의 만남의 기회인 아시안게임마저 감정에 치우쳐 북한을 몰아세우고 있다. 남북 모두 무더위를 방불케 하는 뜨거운 공격을 해대고 있다. 우울한 장맛비처럼 남북의 감정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한여름 무더위와 지루한 장마처럼 지금 남북관계는 불쾌지수 최고조 상태다. 상대방이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감정 상태인 셈이다. 북의 대남전략과 남의 대북정책 모두 감정과 분노에 충실한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도 북엔 흡수통일 기도로 간주되고 있다. 북에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인데도 북은 감정적 비난에 머무르고 있다. 상호 비방 중단과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북한의 국방위 특별제안도 남엔 거짓말로 여겨지고 있다. 서해상의 군사적 충돌 방지와 감정적인 상호 비난 중지는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데도 박근혜 정부는 북의 제안을 이성적으로 검토할 수 없는 감정상태에 머물러 있다. 한번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대화 제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동안 동북아 정세는 적도 친구도 없는 각자도생의 국가이익 추구에 여념이 없다. 일본이 북한과 교섭하고 중국이 한국을 끌어들이며 미국이 일본을 두둔하는 복잡한 고차방정식 틈바구니에서 남북관계의 지렛대를 망실한 우리는 외교적 입지가 축소되고 발언권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남북이 감정싸움에 매몰되어 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쳤던 것은 이명박 정부 때의 경험으로도 충분하다. 북은 10·4 정상선언 재검토를 밝힌 이명박 정부에 감정이 상했고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를 철수시키면서 이명박 정부를 감정적으로 자극했다. 티격태격하던 남북은 박왕자씨 사망사건으로 서로를 용서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이 악화되었다. 집권 2년 차 후반기에 북이 현정은 회장 방북 이후 잇따른 유화조치에 나서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특사가 서울에 오면서 남북정상회담 논의까지 이르렀으나 이미 감정이 상한 양측은 이명박 정부의 금강산 관광 중단 고수와 북의 천안함·연평도 사태로 회복 불능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2011년 뒤늦게 이명박 정부가 류우익 장관을 내세워 방법론적 유연성으로 접근했지만 북한의 감정은 돌이키기 힘들었다. 이명박 정부 내내 남북이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감정만 악화되었던 것이다.

 이제 박근혜 정부도 2년 차 후반기에 들어섰다. 남북관계의 중대 기로인 셈이다. 이미 감정싸움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지만 그래도 이명박 정부에 비하면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은 남아 있다. 작년 핵실험과 전쟁위기 고조의 최악의 대치국면에서도 김정은 체제와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7차례나 지속하면서 그나마 회생의 불씨를 살렸다. 금년에도 청와대와 국방위의 고위급 접촉을 성사시키면서 한·미 훈련기간에도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켰다. 경색국면에서도 남북이 최소한의 신뢰 형성 경험은 교환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신뢰 프로세스와 드레스덴 구상으로 여전히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 하고 북한 역시 북남관계 개선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처음 만나는 상대는 감정이 쉽게 상할 수 있다.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섣부른 기싸움으로 쉬이 감정이 상한다. 그러나 감정에 의존해 남북관계를 이끌어간다면 결코 남북관계 정상화가 불가능하다. 외교안보 분야만큼 감정을 자제하고 냉정한 현실인식에 토대해야 함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이제라도 상처 난 감정을 다독이고 평상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남북의 숙려기간이 필요하다. 북은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기간 동안 대남 비난과 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를 자제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역시 북이 모처럼 참여 의사를 밝힌 아시안게임을 수용해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 감정이 아닌 이성의 지혜를 발휘해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금년 들어 남북이 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히면서도 감정싸움만 했던 것은 각각의 대화접근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북은 1월과 6월의 국방위 제안을 통해 정치군사적 의제를 다루자는 반면 우리는 드레스덴 구상을 통해 경협과 사회문화 교류의 기능주의적 접근을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양측의 차이를 절충할 수 있는 합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정치군사적 의제와 경제사회적 이슈를 동시에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남북 고위급 접촉을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제의한다면 그거야말로 감정 아닌 이성의 지혜가 아닐까?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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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