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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명량, 그 초인적 실존

박보균
대기자
전쟁은 의지의 충돌이다. 의지가 강하면 승리한다. 의지는 두려움을 몰아낸다. 공포는 용기로 바뀐다. 그것은 기적의 승리를 낳는다.

 영화 ‘명량(鳴梁)’은 공포의 의미를 포착한다. 이순신의 고뇌는 거기에 집중된다. “독버섯처럼 번진 두려움이 문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로 나타날 것이다.”- 영화 속 이순신(최민식)의 말이다. 그 말은 『난중일기』(亂中日記),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는 없다. 그 언어는 창작이다. 감독 김한민은 승전의 요소를 압축했다.

 ‘명량’은 보 구엔 지압(1911~2013)을 기억하게 한다. 그는 베트남의 승전 신화다. 그는 프랑스(디엔비엔푸), 미국, 중국(1979년)과의 전쟁에서 이겼다. 나는 지압과 서면 인터뷰를 했다. 그가 100세 때다. 그는 전쟁을 의지의 대결이라고 했다. 그의 표현은 ‘결전결승’(전쟁을 결행하면 승리를 결심한다)이었다.

 패주한 군대는 재활하기 힘들다. 공포에 휩싸이면 군대는 와해된다.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는 개전 6주 만에 항복했다. 독일 전격전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는 전선 붕괴를 경험했다. 카포레토 전투에서 29만 명이 포로가 됐다. 공포는 전염병이다. 명량대첩은 세계전사에서 이례적이다.

 정유재란(1597년)은 이순신의 투옥과 백의종군으로 시작한다. 그해 칠천량에서 원균 함대는 궤멸했다. 명량은 그 두 달 뒤다. 붕괴된 군대가 어떻게 부활, 승리했는가. 그것은 위기극복의 긴박한 드라마다. 『난중일기』와 『징비록』(懲毖錄, 서애 류성룡), 『이충무공전서』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순신은 먼저 공동 결의를 한다. 결전 하루 전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했다”. 약속은 집단 결의다. 승리의 확신을 공유한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을 두렵게 할 수 있다(必死則生 必生則死 一夫當逕 足懼千夫).”- 길목은 울돌목이다. 낯선 지형은 적에게 불안감을 심는다. 두려움은 왜군에게도 옮겨간다.

 현장 상황은 열악하다. 결의만으로 부족하다. 함선 13척, 교전 때 적선은 133척이다. 13과 133의 숫자는 『난중일기』와 장계(狀啓)의 기록이다. 병졸들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공포가 퍼질 위기다. “군사들이 서로 돌아보며 질려 있기에 나는 부드럽게 타일렀다. (余柔而論解曰) 적선이 많아도 곧바로 우리 배에 덤벼들지 못할 것이니 동요하지 말라.”-

 군졸에게 다가간 언어는 유연하다. 간부들에겐 엄한 꾸지람과 독전(督戰)이다. “(거제현령 안위에게) 군법으로 죽으려 하느냐, 도망간다고 살 수 있느냐(敢死於軍法乎 退去得生乎).” 안위의 배는 적진 속으로 돌진한다. 위기극복은 절묘했다.

그 바탕에는 신뢰의 평판이 있다. 『징비록』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순신은) 졸병도 군대 일을 말하려 하면 찾아와 말하게 해 군대 사정에 통달했다(雖下卒 欲言軍事者 許來告 以通軍情).”

 장군과 졸병의 대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지도력의 평판을 중시한다. 평판은 위기 극복의 자산이다. 평판은 소통으로 축적한다. 소통의 공간에 부하의 고민과 생각이 흡수된다. 그것은 믿음과 사기를 생산한다. 이순신의 소통은 윤 일병 사건을 떠올린다. 장군의 소통은 폭력의 병영문화를 바꾼다.

 공격 초점은 적 지휘부다. 적의 사령탑을 마비시켜야 한다. 작은 병력으로 이기는 방식이다. 왜군 주력선은 아타케(安宅)다. 배 위에 누각이 있다. 화려한 만큼 표적이 된다. 혼전 중에 적장 마다시(馬多時)가 죽었다. “마다시를 베어 토막(寸斬) 내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일본 역사기록 속 마다시는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通總)다. 섬뜩한 얼굴 갑옷의 구루시마(류승룡) 연기는 실감 난다.

 『난중일기』는 혼자만의 기록이다. 후세에 남기려고 쓰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영웅의 내면은 실감 난다. 조정에 대한 불만, 때를 못 만난 것에 대한 울분, 어머니의 죽음과 회한, 고뇌와 좌절, 심신의 고통이 적혀 있다.

 “이순신은 쓰지 않고는 못 견디었을 것이다.”- 원자핵공학 학자팀(박혜일, 최희동, 배영덕, 김명섭)의 한글번역 『이순신의 일기』의 분석이다. 최희동 서울대 교수의 명량 추적은 명쾌하다. “동족의 박해, 역경을 이겨낸 초인적 실존으로 극복된 승리다.”

 무(武)를 경멸한 시대였다. 이순신은 그 속에서 승리에 매진했다.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명량’의 감독은 이렇게 해석한다. “충(忠)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난중일기』에는 없는 말이다. 그 감수성은 선명하다.

 초인은 극적 순간의 영웅이다. 영웅은 세상의 애환과 어울린다. 그 속에서 초인의 출현이 예비된다. 위대한 리더십은 그렇게 탄생한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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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