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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흔드는 '남조선 날라리풍' … '별 그대' 열풍에 후시딘까지







평양에선 요즘 ‘별 그대’ 열풍이 한창입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외부 사정에 관심 좀 갖고 산다는 주민들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보았거나 알고 있다고 합니다. 주인공 천송이 역을 맡은 배우 전지현과 그의 극중 매니저를 연기한 김수현을 두고 젊은 남녀들이 속앓이를 한다는군요. 전지현이 드라마에서 입었던 옷과 소품, 화장법까지도 인기몰이를 한다는 겁니다. 지난 2월 말 종영된 ‘별 그대’가 몇 달의 시차를 두고 북한 중심부에 상륙한 건데요. 마치 중국의 한류(韓流) 바람을 연상케 합니다.

 6월에 끝난 KBS 1TV의 역사드라마 ‘정도전’도 북한 고위층과 간부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입소문이 나고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책사 삼봉(三峯) 정도전이 ‘백성을 위한 정치’를 외치며 고려를 등지는 모습이 북한의 현실과 오버랩됐기 때문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북한판 한류의 최근 동향에 대해 동아대 강동완(정치외교학) 교수는 “드라마·가요 등 남한 콘텐트의 북한 내 유입과 유통 흐름이 매우 빨라진 게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한류 실태 조사차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를 방문하고 지난 주말 귀국한 강 교수는 현지에서 MP5를 하나 사오기도 했습니다. 음악과 영상을 함께 볼 수 있는 이런 전자 기기들이 우리 돈으로 2만원 정도의 싼값에 유통되면서 북한 내부에서 한류가 빠르게 확산됐다고 합니다.

최근 특징은 드라마·영화 중심이던 북한 주민들의 한류에 대한 관심이 교양 분야 등으로도 확산된다는 겁니다. 뜻밖에도 주부 대상 교양 프로그램인 KBS 1TV의 ‘아침마당’과 KBS 2TV의 ‘생생정보통’이 인기라고 하는데요. 이젠 건강과 생활정보 등을 통해 먹거리와 웰빙(well-being)으로까지 남한 생활을 탐구하는 분야가 넓어졌다는 겁니다.

 물론 북한판 한류의 원조 격인 KBS 2TV 드라마 ‘가을동화’(2000년 가을 방영)에 아직도 빠져있는 올드팬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한 탈북 여성은 이 드라마에서 열연한 송승헌에게 매료돼 “한국 남자와 하루만 살아봤으면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한류 바람은 북한의 시장에도 불어닥쳐 변화를 이끕니다. 남한산 ‘살결물’(스킨로션)을 쓰던 수준에서 이젠 아이크림과 색조화장·향수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의약품의 경우 “후시딘(상처 치료제)을 달라”고 말할 정도로 남한 물품 사정에 밝아졌다는 겁니다. 지난해 3월 김정은·이설주 부부가 평양 주민 편의시설인 해당화관을 방문했을 때는 한국산 ‘라네즈’ 화장품 간판이 걸려 있는 모습이 비쳐졌습니다. 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참관한 양궁경기에 북한 선수들이 한국 회사인 ‘윈엔윈(WIN & WIN)’사의 활을 들고 나왔죠. 이쯤 되면 북한 내 한류 확산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이를 ‘남조선 부르주아 날라리풍’ 또는 ‘자본주의 황색 바람’으로 비판하며 단속의 고삐를 죄고 있습니다. 김정은도 2년 전 집권할 때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며 한류 차단을 촉구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별 단속조인 ‘상무조’(일종의 태스크포스)까지 투입해 특별단속에 나서고 있는데요. 단속이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과거엔 VTR 또는 ‘알’이란 은어로 불리던 CD를 이용한 유통과 시청이어서 세관 검사로 적발하기가 쉬웠습니다. 또 단속반이 남한 드라마를 시청하는 곳으로 의심되는 장소를 급습하면서 두꺼비집(가정용 전류차단 장치)을 내리면 꼼짝없이 VTR이나 컴퓨터에 남아 있는 테이프·CD를 증거로 삼을 수 있었는데요. 이젠 휴대용 저장장치(USB)를 주로 쓰기 때문에 적발이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손톱만 한 크기의 마이크로SD에 담아 유통되기도 합니다.

 여기에다 남한의 영화·드라마 복제·유통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세력의 경우 아예 단속을 따돌릴 정도가 됐다고 합니다. 뇌물도 등장하고 시장상인들 간의 결탁도 생겨났다네요. 이를 통해 중앙급 단속까지 피할 정도의 지하경제가 구축됐다는 게 한국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분석이고 보면, 북한 당국으로선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 셈이죠.

 한류는 북한 주민들이 남한 사회를 이해하는 창(窓) 역할을 합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그려진 남한 사회에 대한 동경·환상을 안고 탈북해 한국행을 이뤘지만 현실은 달랐다는 얘기가 그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통일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이 겪을 문화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완충 기능이 더 커 보입니다. 오늘도 북녘 땅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남쪽 나라의 이야기와 상상 못 할 재미를 좇는 주민들의 가슴 졸인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진 설명]

1.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해 3월 양궁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북한 선수의 활에 한국산 ‘윈엔윈(WIN&WIN)’ 브랜드가 새겨져 있다.

2. 같은 시기 부인 이설주와 평양 쇼핑시설인 해당화관 개관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은 ‘라네즈’ 상표가 한국산 화장품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간판을 떼어 버렸다.

3. "부르주아 사상문화를 혁명적 사상공세로 짓뭉개자"고 주장한 노동신문 4월 7일자 기사.

[사진 출처 = 노동신문·중앙포토]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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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