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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 자살 사병 유족이 부대 찾아오자 첫마디가 "간부들 피해 없게 해달라"

2008년 8월 26일 제7공수특전여단 소속 이모(당시 20세) 일병이 부대 막사 옆 등나무 벤치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신경정신과 입원치료 후 부대로 복귀한 다음 날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어머니 백모(50)씨는 남편·언니·형부와 함께 부대로 향했다. 헌병대장은 “애는 이미 가고 없다. 부대가 얼마 전에도 비슷한 사고로 간부들이 징계받았는데 간부들에게 큰 피해 없도록 잘 부탁드린다”는 말부터 던졌다. 집단 따돌림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이 일병은 이미 세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 그때마다 백씨는 부대 간부들에게서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중대장은 “할 만큼 했고 규정대로 했다. 부대에 책임을 미루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달라”고 했다. 두 달 뒤 헌병대가 발표한 수사결과는 참담했다. ‘게임중독에 따른 금단현상으로 부대 부적응’. 이 일병이 “게임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 군 생활은 그렇지 않네” 등 게임에 관한 얘기를 여러 번 했다는 게 근거였다. 이 일병이 쓴 일기엔 가혹행위와 구타를 가한 6명의 선임병 이름과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무시됐다.

 이 일병의 자살 이유는 어머니 백씨의 6년간 노력 끝에 밝혀졌다. 백씨는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1, 2심에서 모두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2012년 육군에 재조사를 요청했다. 육군은 올 1월 “헌병의 조사결과는 잘못됐으며 가혹행위에 의한 자살로 순직처분을 받아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 10년간 군대 내 자살은 줄지 않고 있다. 2004년 67건, 2009년 81건, 2011년 101건이 발생했다. 지난해는 79건이었다. 군대 내 사망사건 중 자살 비율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줄곧 50%를 넘어서고 있다. 2009년엔 113명의 사망자 중 81명(72%)이 자살자였다. 그럼에도 군은 자살의 원인이 되는 가혹행위를 묻기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2005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피부병에 따른 소심한 성격’이 자살 원인이라는 군 조사결과는 ‘구타·성기성추행·강제취식’ 등으로 바뀌었다. 또 ‘내성적 성격에 따른 부적응’이 아니라 ‘구타·수면부족·굶기기’ 등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재영 병영인권연대 대표는 “문제의 핵심은 군인의 자살을 군기문란으로 여기는 지휘부의 야만성에 있다”며 “‘타의에 의한 자살’을 막으려는 노력 대신 군기문란에 따른 책임을 회피할 생각만 하는 풍조가 사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재발 원인=전역 후 고소·고발을 당해 일반 법원에서 다뤄진 군 가혹행위 관련 사건 판결문들을 보면 폭력에 대한 불감증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질서 유지, 군기와 위계질서 확립을 위해 당연한 것이라는 가해자 측 변명은 같았다. 더 큰 문제는 재판부도 이런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 있다. 군 부대 내 폭력 사건에 대해 벌금이나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H씨(23)도 솜방망이 처벌의 수혜자 중 하나다. 그는 군 복무 시절 후임병들을 자주 괴롭혔다. 일일 식단표를 외우지 못하는 것도 폭언의 빌미가 됐다. 후임병 K씨는 2012년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유서엔 “식단표를 안 외우고 있으면 1시간을 혼납니다. 군대인지, 학교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외우게 합니다. 서럽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유서에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 않았다”며 H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나는 ‘이 정도야 군대에서 당연하지’라고 느낀 것을 여성 판사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전영선·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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