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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수학? 골프·스키 놔두고 매일 달리기만 시키는 셈"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는 “수학에서 예술적 아름다움을 느낀다”며 “수학은 과학보다 예술에 가깝다”고 말한다. 복소기하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그는 한국인 가운데 처음으로 13일 개막하는 서울 세계수학자대회 기조강연자로 뽑혔다. [오종택 기자]

13일 개막하는 서울 세계수학자대회(ICM)는 ‘수학계의 올림픽’이다. 내로라하는 지구촌 수학자 5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9일간 수백 회의 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전체 참석자 중에서 기조강연자는 단 21명뿐이다. 그중에 황준묵(51)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가 포함됐다. 한국 학자가 ICM 기조강연자로 뽑힌 것은 그가 처음이다. 황 교수는 복소수(複素數, 실수와 허수의 합으로 이뤄지는 수) 위에서 기하학을 연구하는 복소기하학(Complex Geometry)의 세계적 석학이다. 지난달 말 강연 준비로 분주한 황 교수를 만나 한국 수학과 수학교육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는 쉬운 비유로 답했다. “근육(머리)을 쓰는 건 힘들다. 그렇다고 근육을 안 쓰면 운동(수학)이 안 된다. 관건은 힘든 운동을 어떻게 즐기면서 할 수 있게 하느냐다.”

 -ICM 기조강연의 의미는

 “초청강연은 자기 전문분야 학자들 앞에서 하지만 기조강연은 전체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지만 그만큼 부담도 크다. ”

 -왜 수학을 하나.

 “잘 그린 그림을 보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예술적 아름다움을 느낀다. 수학이 그렇다. 훌륭한 수학의 정리(定理·가정으로부터 증명된 명제)를 보면 정갈하고 지고(至高)해서 시공을 초월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학이 ‘과학의 언어’란 점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수학이 과학보다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입시 수학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고등학교 땐 나도 수학이 즐겁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만 풀라고 하니 그랬다. 수학을 못 하진 않았지만 경시대회 나가서 상 받고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경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수학을 운동에 비유하자면 학교에선 매일 달리기만 시키는 셈이다. 하지만 운동에는 달리기만 있는 게 아니다. 테니스도 있고 골프·스키도 있다. 발상을 바꿔야 한다. 입시 수학이 수학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다.”

 -국내 학생들 중에는 ‘수포자(수학 포기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수학이 어려운 건 머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 쓰는 건 누구에게나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달리기가 힘들다고 차를 타고 가면 운동이 안 된다. 머리를 안 쓰고 수학을 배울 수는 없다. 중요한 건 힘들어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다. 운동을 열심히 해 근육이 생기면 같은 양의 운동을 해도 덜 힘들게 된다. 수학도 자꾸 머리를 쓰다 보면 덜 어려워진다. 중요한 건 동기유발이다.”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까.

 “학생에겐 친절한 교과서가 좋지만, 공부하고 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면 때로는 좀 불친절한 교과서가 배우는 사람에겐 더 도움이 된다. 그만큼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사람마다 제각각 수학을 배우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학 교육시스템은 획일적으로 가르친다. 맞춤식 교육을 못 하고 있다. 가능한 한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도록 가르치는 것이 최선이다. 교육방법을 다양화해 각자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학 공부 하는 후학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가끔 고교생들의 e메일을 받는다. ‘수학을 좋아하는데 경시대회 성적이 별로다. 계속 수학을 공부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묻더라. 수학경시대회는 한마디로 체력장이다. 달리기·턱걸이 같은 기초체력만 본다. 100m를 20초를 초과해 뛴다면 운동선수로 대성하기 힘들겠지만, 15초 안에만 뛴다면 12초냐 13초냐는 나중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운동처럼 수학에도 여러 종목이 있다. 수학자 중에도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잘 못하는 사람도 있다. 기하학을 하는 나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다. 중요한 건 창의적인 아이디어다. 고등학생이 대학 수학을 미리 공부한다고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좋아서 하는 게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네가 좋아한다면 수학을 계속 공부하고, 좋아하지 않는다면 지금 점수가 잘 나오더라도 하지 말라’고 답장을 했다.”

 -서울 ICM 개최의 의미는.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 스포츠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큰 대회를 계기로) 체질을 개선하고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 ICM 개최를 계기로 한국 수학이 세계 10위 이내 성적을 꾸준히 유지했으면 좋겠다.”

 수학분야 과학기술논문색인(SCIE)에 들어간 논문 수를 기준으로 한국의 수학 실력은 세계 11위권이다. 1999년에는 수학 논문이 296편뿐이었지만 2008년 864편으로 약 10년 만에 배 이상 늘었다.

 -수학이 국가발전에 어떤 도움이 되나.

 “경제적 이익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문화다. 미국 의회가 입자가속기 투자비를 줄이려고 청문회를 연 적이 있다. 한 의원이 ‘가속기가 미국 안보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묻자 한 과학자가 ‘미국 안보에는 당장 도움이 안 될지 모르겠지만 미국을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로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글=김한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황준묵=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수학으로 전공을 바꿔 미국 하버드대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가 부부로 유명한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소설가 한말숙씨의 아들이다. 2006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2009년 호암상(과학부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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