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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멀쩡한 우리, 그 텅 빈 속을 찾아

백민석은 유독 장마가 길었던 지난해 여름 ‘수림’을 썼다. 그는 “장마는 죽을 때까지 매년 반복될 거다. 다만 장마가 끝나면 다음 장마가 올 때까지 고통을 대비할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요즘 작가들은 세게 쓰고 싶어도 못 쓰는 것 같아요. 문학상이 옭아매요. 저는 원래대로 눈치 보지 않고 세게 쓰려고요.”

 지난해 11월, 그러니까 절필 후 10년 만에 돌아온 백민석(43) 작가가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말이다. 단편 ‘수림’이 황순원 문학상 후보에 올라 인터뷰 요청을 하면서도 이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열 달 만에 다시 만난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요?(웃음) 그땐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에요. 그 사이에 사람이 더 유순해졌다고요.”

 폭력의 세계를 강도 높게 그려온 작가의 입에서 ‘유순’이란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우울증으로 절필하기 전까지 백민석은 ‘전위’와 ‘엽기’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던 작가였다. 1997년 소설가 복거일은 눈치 보지 않고 쓰는 그의 작품에 대해 “세상의 눈길보다 자신의 양심을 더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지니는 ‘거센 정직’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백민석의 변화는 후보작 ‘수림’(문예중앙 2014년 봄호)에 그대로 나타난다. 성기 노출증이란 ‘센’ 소재가 있긴 하나 접근 방식은 한결 편안해졌다. 예심위원인 강경석 문학평론가는 “매니악하고 궁벽한 소재로 극단적 실험을 거듭하던 백민석이 사실적인 소재와 가독성 높은 서술방식으로 (독자와의) 소통을 고민하고 있다”고 평했다.

 ‘수림(愁霖)’은 어두침침하고 우울하게 내리는 긴 장맛비란 뜻이다. 성기 노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남자는 아내에게 이혼을 당한 뒤 수치심과 고통의 수림 속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러다가 자살중독증에 걸린 여자를 알게 되고, 이들의 교감은 서로를 구원한다.

 “마음 속에 공허가 자리잡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겉보기엔 멀쩡한데 속은 망가져 있는 사람들 많잖아요. 우리나라가 괜히 자살률이 높고 끔찍한 살인이 계속 일어나는 게 아니겠죠. 저도 겉은 멀쩡한데 속은 망가졌어요. 안 그러면 10년을 절필했을까요.”

 - 내면의 풍경에 관심을 돌린 이유는 뭔가?

 “젊었을 땐 외부에서 문제를 찾았어요. 사회든 문단이든 언론이든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공격적이었죠. 그런데 이제 기성세대가 됐어요. 비판을 당할 세대가 된 거죠. 그러니까 자꾸 내 안에서 문제를 찾게 돼요. 나도 잘못을 많이 했고 문제가 많은 사람이니까.”

 - 그걸 ‘성숙’이라 말해도 될까?

 “성숙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고, ‘원숙?’ ‘닳고 닳았다?’가 맞으려나.”

 작가는 ‘수림’을 8편의 연작소설로 쓸 계획이라고 했다. 주인공들은 자살중독자, 발기불능, 팜므파탈 등 특수한 상처가 있는 사람이 될 터다. 그는 “언젠가 나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으므로 연민을 갖게 되는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문학과 결별했던, 그래서 더 간절했을 그가 10년 만에 털어놓는 것이 인간을 보듬는 이야기란 건 의미심장하다.

 “지금 쓰는 인물들에겐 다 각자의 신이 있어요. 여기서 신은 이데아, 이상적인 존재를 뜻해요. 설사 그것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공허를 버티기 위해선 믿어야 해요. 지금 저한테 신은 소설인거죠.”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백민석=1971년 서울 출생. 95년 계간 ‘문학과사회’로 등단.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혀끝의 남자』 장편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 『목화밭 엽기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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