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유경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

유경근 대변인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게 먼저 간 아이들의 명령”이라며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것이 우리를 도와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희생자 가족 대표들이 국회와 광화문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간 지 오늘로 24일째. 그러나 여야의 대치와 공방 속에 국정조사도, 특별법도 표류 중이다. 특히 7·30 재·보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세월호는 정치권의 관심에서 더욱 멀어지는 분위기다. 이를 지켜보는 유가족들의 속은 타 들어가고 있다. 국회 단식농성에 참여한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의 유경근(45) 대변인을 만나 유가족들의 고민과 생각을 들었다. 인터뷰는 3일 중앙일보 유민라운지에서 진행됐다.



특별법 진전 없으면 자체 진상조사 결과 공개하겠다

- 과연 이 방법밖에 없나 하는 생각은 안 해봤나.



 “물론 많이 했다. 세월호 국정조사가 시작되기 전 국회의원들이 우리에게 했던 얘기가 있다. 특히 여당 의원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이것은 여야가 따로 없는 문제다, 정쟁(政爭)의 대상이 아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므로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누차 공식적으로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러나 막상 국정조사가 시작되고 특별법 논의에 들어가고 보니 국회의원들이 했던 말과 실제 행동 사이에 너무 큰 차이가 났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350만 명의 서명을 받아 특별법 제정을 청원한 만큼 그 법안이 여당안 및 야당안과 나란히 테이블에 올려져 논의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싶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여야와 3자협의체를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 뒤에 앉아 조용히 참관만 하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상태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 단식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 언제까지 계속할 생각인가.



 “우리도 고민이 깊다. 재·보선도 끝났고, 더구나 휴가철이다. 그럼에도 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는 단식을 계속할 생각이다. 광화문과 별도로 국회에서는 5명씩 조를 짜 24시간 릴레이 단식을 하기로 했다.”



 - 사고 첫날(4월 16일) 상황을 말해줄 수 있나.



 “소식을 듣자마자 차를 몰고 진도로 달려갔다. 오후 2시쯤 도착해 보니 이미 구조된 몇몇 아이들이 체육관에 와 있었다. 딸아이(예은·17)가 안 보여 물어보니 구조된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라. 버스 3대가 들어왔는데 예은이는 없었다. 그래서 예은이를 마지막으로 본 학생이 없는지 수소문하고 다녔다. 한 친구가 충격으로 거의 말을 못 하는데, 그 친구 얘기를 들은 다른 아이가 예은이는 살아 있을 거라고 전해줬다. 그 친구가 구조돼 나올 때 바로 몇 명 뒤에 예은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희망을 가졌다. 예은이가 카톡으로 보낸 메시지에도 지금 구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예은이 바로 앞이나 그 앞에서 끊어진 것이다. 나중에 여러 증언과 동영상을 확인해 본 결과 예은이 순서가 됐을 때 갑자기 배가 더 기울어지면서 물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걸로 파악됐다.”



 - 현장에서 가장 답답했던 게 사고 직후 구조 지연 상황이었을 것 같은데.



 “처음 3~4일은 정말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20일 새벽까지 단 한 끼도 못 먹었다. 잠은 고사하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본 기억도 없다. 모든 부모가 다 그랬다. 그 시간 동안 해경이 한 건 아무것도 없다. 부모들이 쫓아다니며 울고불고 난리치고, 심지어 물에 빠져 죽겠다며 협박까지 했지만 나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거였다. 나는 매일 배를 타고 사고 현장에 갔다. 바지선에서 밤을 새기도 했다. 현장에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팽목항에서는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 안 한 게 아니라 못 했던 것 아닌가.



 “해경이 능력이 안 돼 못 한다면 다른 곳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사고 해역에는 해군의 구조 전문 함정도 와 있었고, 온갖 크레인들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왜 저런 장비와 인력을 안 쓰냐고 현장에서 계속 따졌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19일 밤과 20일 새벽 해군 함정이 바지선 쪽으로 다가왔다. 물어보니 구조 작업에 투입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결국은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렇게 몇 차례 왔다갔다 하기만 했다. 지금도 미스터리다.”



 - 철저한 진상규명의 핵심은 뭐라고 보나.



 “해경을 비롯한 정부의 초기대응, 특히 사고 후 첫 나흘인 16일부터 19일까지의 대응이 핵심이라고 본다. 그 부분이 명확하게 밝혀지면 그 전과 후도 같이 밝혀질 걸로 본다.”



 - 나올 건 다 나온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많이 나왔지만 여전히 일부만 밝혀졌다고 본다. 사고 전날 출항 시점부터 문제다. 여객선 중 유독 세월호만 출항했다. 선원들이 강력히 만류했음에도 선장은 출항을 지시했다. 결국 사고가 났지만 선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빠져나왔다. 현장에 도착한 해경은 적극적인 구조를 안 했다. 잠수사들은 잠수를 안 했다. 그 과정에 얽혀 있는 사람이 최소 수백 명은 될 것이다. 그중 한 명이라도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이런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우리의 확신이다. 그러니 뭔가 다른 일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재·보선 결과에 대한 유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실망이 클 것 같은데.



 “그렇다. 야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진행 과정을 봤을 때 야당의 힘이 커져야 특별법 통과에 유리하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절하진 않는다. 어차피 길게 갈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야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분석도 있다. 동의하나.



 “일부 동의한다. 그렇게 비칠 만한 내용들이 있었다. 특히 대통령이나 청와대와 관련된 부분들이 그랬다.”



 - 국민들의 세월호 피로감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세월호 자체에 대한 피로감이라기보다 이걸 놓고 여야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는 그 과정이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새누리당은 피해자지원특위를 구성했다. 1대 1 개별면담을 통해 피해자 가족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겠다는데.



 “어찌 됐든 얘기를 들어주겠다니 반갑다. 문제는 방식과 내용이다. 진상규명과 관련한 의견 청취라면 긍정적이겠지만 지원 문제를 얘기하겠다는 건 우리에 대한 능욕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야당을 공격했던 여당도 정치적으로 이용하긴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선거 전에는 마치 특혜를 요구하는 부도덕한 집단인 것처럼 우리를 몰아가더니 지금은 갑자기 지원해 주겠다고 나서니 어이가 없다. 우리의 분열을 노린 일종의 각개격파 의도라고 보기 때문에 응하는 가족이 없을 것이다.”



 - 애초 대책위가 제출한 특별법안에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지원 조항이 안 들어 있나.



 “딱 한 가지 원칙만 들어가 있다. 우리를 도와주는 대한변협이 이것만큼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길래 논쟁 끝에 포함시킨 것이 ‘배상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조항이다. 다른 건 없다.”



 - 의사상자 지정이나 대입특례 얘기는 없나.



 “전혀 없다.”



 - 그런데 왜 논란이 됐나.



 “야당 의원이 만든 법안에 들어가 있는 의사상자라는 표현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대입특례를 규정한 법안을 야당 의원이 발의하기도 했다. 둘 다 우리 의사와는 무관하다.”



 - 세월호 국정조사와 특별법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정치권에 대한 소회는.



 “여야를 떠나 과연 국회가 정말 국민의 대변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유가족도 국민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보호하려고 하는 대상은 따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았다.”



 - 주로 여당에 해당하는 얘기 아닌가.



 “굳이 구분한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 번도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단지 성역 없는 진상조사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는 원칙만 얘기했을 뿐이다. 너무 이상적인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나도 조사하라’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우리는 누구를 공격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이 앞장서서 세월호 진상규명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초석을 놓았으면 하는 것이다.”



 - 검찰 수사를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 특별법을 제정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던데.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한다. 검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특별법 얘기를 하는 것은 그동안 검찰이 권력기관이나 정부가 관련된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해 명명백백하게 의혹을 밝힌 사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 여전히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여당은 초법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수많은 법학자들이 기존 법질서 내에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제출한 특별법안은 변협의 변호사 1000명의 의견을 모아 만든 법안이다. 그런 법안이 대한민국 법체계를 흔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 정부와 여당은 재·보선 결과를 세월호 국면에서 벗어나라는 국민의 뜻으로 해석하고 싶은 눈치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더 위험해진다. 앞으로 특별법을 통한 진상규명이 어려워진다고 판단되면 그동안 우리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내용과 자료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정말로 특별법이 필요한지 판단해 달라고 할 것이다.”



 - 세월호 선체 인양에 대한 대책위의 입장은.



 “선체에 여러 가지 증거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진상규명을 위해서도 인양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잠수사들이 안 들어가 본 격실이 있는 데다 더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절대 없다고 확언했던 곳에서 시신들이 추가로 나왔다는 점이다. 실종자 가족들 입장도 인양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인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 세월호 대책위의 활동을 ‘시체장사’에 비유하며 노골적으로 폄훼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국민의 100%가 세월호 참사를 슬퍼하고 가슴 아파한다고 확신한다.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본다. 그들도 사람이고,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본다.”



 - 다른 이유라면.



 “진상이 명백하게 규명될수록 그로 인해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혹시 그 불똥이 자신에게까지 튀는 게 아닐까 불안해하는 사람들 말이다.”



 -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늘나라에 있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부모 노릇 한번 제대로 하라고 내린 명령만 보고 우리는 가고 있다.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것이 아이들의 명령이다. 그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아이들 얼굴을 똑바로 못 쳐다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국민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국민과 함께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을 열고 싶다. 하늘에 있는 아이들도 손잡고 우리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인터뷰 후기



20일 넘은 단식에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




그는 20일 넘게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을 했다. 물과 소금만 먹고 버텼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서천-보령)은 그를 가리켜 “노숙자 같다”고 했다. “내가 봐도 내 꼴이 노숙자 같다”며 그는 웃었다.



 태풍 나크리가 북상하던 3일 아침, 기자는 그를 기다리며 걱정을 했다. 제대로 올 수 있을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내가 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는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나타났고, 내 예상은 빗나갔다. 발걸음과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언어 구사는 명료하고 정확했다.



 단식농성 중에도 그는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 일을 계속했다. 전화 인터뷰 요청에 응하고,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현장을 찾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네 딸의 아빠인 그는 세월호 참사로 쌍둥이 자매 중 둘째를 잃었다. 둘의 성격과 취향을 고려해 각기 다른 학교에 보낸 것이 다행이면서 또 불행이다. 자동차용 에어백과 안전벨트 부품을 만드는 직원 25명의 중소기업 사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입으로 변신한 그는 희생자 가족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묶는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하고 있다.





유경근 대변인은 …



1969년 서울생. 88년 우신고 졸업. 94년 연세대 신학과 졸업. 98년 주신화학 입사. 2004년 주신산업㈜ 상무이사. 2012년~ 주신산업㈜ 대표이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