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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아이야, 나만 살았다는 죄책감을 씻으렴

“지금은 괜찮은 것 같지만 실제론 괜찮은 게 아니거든요. 멍한 상태가 5~7년 갑니다. 그 뒤에도 생각납니다. 지금도 건물에 들어가면 나만 불안해져 이상한 사람이 되곤 해요. 세월호 생존자들은 지속적으로 건강 체크를 해줘야 합니다.”



[건강한 목요일] 대형 재난 생존 10인 인터뷰
성수대교 악몽 … 차 안에 구명조끼
삼풍 사고 겪은 뒤 지하 못 내려가
10인 모두 "동료 못 구해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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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서울 한강 성수대교 붕괴사고 생존자 이경재(41·조명업체 대표)씨의 당부다. 세월호 생존자나 유가족의 아픔이 자기 일처럼 다가온다. 93년 서해 훼리호, 94년 성수대교, 95년 삼풍백화점 사고가 이어졌다. 이 사고 생존자들에게 세월호 사고는 남의 일 같지 않다. 본지는 이 3개 사고의 생존자 10명을 인터뷰했다.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일부 생존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PTSD)를 호소했다. 이들은 세월호 걱정부터 했다. “정부가 우리처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세월호 관련자들을) 지속적으로 보살펴줘야 20년 후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권고한다.



 이씨는 서울 강남으로 차를 몰고 출근할 때 한강다리 위에서 차가 밀리면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하고 좀 지나면 가슴이 울렁대고 호흡이 가빠진다. 더 이상 참기 힘들다. 반대 차로로 차를 획 돌려버린다. 의경으로 복무할 때 승합차를 타고 가다 성수대교 위에서 추락했다. 이씨는 “조명 설치하러 높은 데 올라가면 발바닥이 간지럽고 떨린다”고 말한다. 한 번은 서울 동대문시장 지하에 들어서는 순간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아 뛰쳐나왔다.



 전북 전주시 정광우(78·전직 공무원)씨 거실에는 ‘西海更生(서해갱생)’이라는 붓글씨 액자가 걸려 있다. 93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뜻이다. 정씨는 당시 한 시간 반 동안 아이스박스를 붙들고 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마지막 생존자다. 사고가 떠오르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잠을 못 잔다. 액자는 선배가 트라우마 극복을 돕기 위해 선물한 것이다. 정씨는 인터뷰 중에도 감정에 북받쳐 흐느꼈다.



 이들은 건물 지하나 다리, 밀폐된 곳에 가면 견디지 못한다. 성수대교 사고 생존자인 기몽서(53·개인사업)씨는 사고 후 10년 동안 차를 타지 못했다. 이후 차를 몰긴 했지만 상당 기간 구명조끼 세 개를 싣고 다녔다. 지하철이 한강 위에서 신호 대기하느라 멈추면 고함을 지르거나 식은땀을 흘렸다. 기씨는 “지금 생각하니 그게 트라우마였던 것 같다”고 말한다. 삼풍백화점 직원으로 근무하다 사고를 당한 박모(48·백화점 근무)씨는 상당기간 가위나 기계 소리만 들어도 놀랐다. 일본 출장 갔을 땐 지하철이 흔들리자 기절할 뻔했다. 사고 당시의 진동을 몸이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박씨는 이런 증세가 10년 이상 지속되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됐다.



 생존자 10명의 공통적인 트라우마는 죄책감이다. 서해 훼리호 생존자 정모(57·공무원)씨는 같이 배를 탔던 직장 동료 7명을 잃었다. 정씨는 “나만 살아왔다는 죄책감 때문에 괴롭다”고 말한다. 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강준식(40·경기도 화성시)씨는 “살아남은 사람만의 죄책감이 있다. 미안함과 괴로운 감정이다”고 말한다.



지난 22일 정광우씨가 자택에서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백서를 가리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나름의 처방전을 내놨다. 서해 훼리호 사고 생존자 박병길(72·전북 부안군)씨는 “당시 심리치료를 받았으면 도움이 많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삼풍백화점 사고 생존자 박씨는 “사고 얘기를 하지 말고 즐거운 다른 얘기를 해라. 재미있는 책(만화책)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삼풍백화점 생존자 김모(47·병원 근무)씨는 “바쁘게 생활하거나 종교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고 권고한다. 기몽서씨는 “당시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면 (트라우마를) 극복했을 텐데”라며 “잘살고 있는지 삶에 문제가 없는지 계속 돌봐줘야 한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 이중규 정신보건과장은 “대형 사고 후 급성 스트레스 증세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극복하지만 일부는 만성화돼 PTSD가 될 수 있어 조기에 발견해 증상을 완화해야 한다”며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은 안산트라우마센터를 통해 장기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성식·김혜미 기자, 김호정(중앙대 광고홍보학과)· 이하은(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 인턴기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교통사고, 재난, 폭력 등 충격적인 사고를 겪은 뒤 앓게 되는 정신질환. 당시 기억이나 감정이 떠올라 심각한 불안, 우울, 분노 등 정서적인 장애가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트라우마’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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