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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유병언 패션 이상 현상은 무죄?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로또급 행운이다. 돈 한 푼 안 쓰고도 저절로 홍보를 했다. 연예인 친분을 내세우는 스타마케팅도 아니요, 무슨 그럴듯한 상을 받아서도 아니다. 그저 희대의 사건과 연관됐을 뿐이다.



 22일 인터넷 검색어엔 두 개의 패션 브랜드가 이름을 올렸다. 로로피아나와 와시바.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이 사망 당시 남긴 옷·신발이었다. 수많은 기사와 포스팅이 쏟아졌다. 전자의 경우 이탈리아 최고 명품 브랜드 중 하나라는 소개와 함께 그가 입은 점퍼와 비슷한 품목의 제품이 1000만원대라는 가격도 낱낱이 적시됐다. 와시바에 대해서는 네티즌의 수사력이 경찰보다 한 수 위였다. ‘와시바’가 브랜드 이름이 아닌 ‘세탁할 수 있는(washable)’이란 뜻의 독일어 ‘Waschb<00E4>r’를 오역한 것이라고 밝혀낸 것. 이런 내용으로 보도가 나오면 SNS로 퍼나르고 이를 통해 다시 검색어에 오르고, 또 기사가 재생산되는 자가증식이 계속됐다.



 여느 검색어와 달리 ‘시신 패션’에 대한 보도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음 날 한 신문은 네티즌의 주장을 인용해 독일 브랜드 중 실제 ‘와시바르’라는 브랜드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유 전 회장이 신은 것과 유사한 제품이 140유로(약 20만원)에 이른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더하면서. 여기에 로로피아나 매장을 직접 찾아 설명을 듣는 방송 뉴스, ‘유 전 회장이 왜 그 브랜드를 입었을까’라는 식의 분석 기사도 줄줄이 이어졌다.



 과거에도 범죄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의 패션이 화제가 되고는 했다. 2007년 학력 위조 사건에 연루됐던 신정아씨 옷차림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예다. 그가 공항 출입국 당시 입었던 티셔츠·가방·재킷 등은 가격과 브랜드가 언론에 낱낱이 공개되며 인터넷 쇼핑몰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이 팔려나갈 정도였다. 더 이전에는 탈옥수 신창원의 명품 짝퉁 티셔츠나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의 선글라스가 있었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으로 브랜드들만 흥이 났다. 사건은 사건이고, 패션은 패션으로 따로 놀았다. 오죽하면 ‘비난받을 만한 사람의 스타일을 동조한다’라는 이름의 ‘블레임 룩(Blame Look)’이 신조어로 생겨났을까.



 이를 그저 패션 현상만으로 바라보기엔 어쩐지 마뜩잖다. 사건의 실체가 모호해질수록 대중의 집중도는 떨어지고, 그 와중에 흘러나오는 단편적 사실에 흥미를 느끼며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럴수록 사건의 본질은 더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하다 못해 그가 왜 한여름에 겨울 점퍼를 입고 있었는지, 그 옷으로 얼마나 저체온증을 막고 사망 시점을 늦출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밝혀진 게 없다. 이 대대적 수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이 이탈리아의 초고가 명품과 독일어 단어 하나여야 될까. 사건과 패션을 따로 말하기엔, 우리의 상처가 너무 크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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