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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칼럼] 노동의 질에 관심을 기울이자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경제학
최경환 부총리가 이끄는 신경제팀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가계소득을 늘려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을 높이며, 비정규직의 대우를 개선할 것이라 선언했다. 환영할 일이다. 특히 고용과 임금뿐 아니라 요즈음 비정규직 문제로 대표되는 노동의 질이라는 문제를 주요 정책 과제에 포함시킨 것은 우리나라의 맥락에서는 뜻깊은 일이다.



 조선 ‘노동’당이 이끄는 북한 공산체제와의 대립 속에서 형성되어 온 대한민국에서 노동문제는 대단히 불편한 문제였다. 1970년대까지 노동운동은 극심한 탄압을 받았고, 심지어는 ‘노동자’라는 단어조차도 불순하다고 하여 ‘근로자’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노동문제가 경제문제라기보다는 안보문제로 취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에 들면서 보건사회부 노동국이 노동부(2010년부터는 고용노동부)로 승격되고 (1981년) 노동운동이 급성장하면서 노동문제를 억압을 통해서만 해결하려던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우리 경제정책에서 노동은 계속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80년대 이후 노동문제를 경시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우리나라 경제정책 입안자들의 사고를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이 노동문제를 경시하는 것은 그것이 특별히 ‘반노동자적’인 이론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인간을 생산자보다는 소비자로 개념화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해서 소비하면서 만족 (‘효용’이라고 한다)을 느끼기 위해 산다는 것이다. 노동은 하기 싫은 것이고 (‘비효용’이라고 한다), 따라서 소비를 하기 위한 소득을 취득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노동은 우리 생활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다. 전업주부나 무보수로 친인척을 간호하는 사람 등 공식적으로는 취업인구로 집계되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대부분의 성인들은 노동자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휴일 외에는 깨어 있는 시간 중 최소한 절반은 일을 하면서 보낸다. 일하는 시간에다 출퇴근 시간까지 합하면 ‘일에 쓰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노동이 우리 생활의 이렇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노동의 질은 우리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소득이 올라간다고 해도 노동의 질이 떨어지면 복지가 하락할 수 있다.



 노동의 질은 한 가지 잣대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얼마나 고된지, 위험한지, 건강에 해로운지 등의 ‘물리적’ 측면이 있다. 일을 하는 데 얼마나 창의성이 요구되는가, 그래서 일 자체가 얼마나 재미있는가 하는 ‘지적’ 측면도 있다. 그리고 ‘심리적’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이어서 고용이 불안하다면 심리적 압박 때문에 노동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 노동의 질을 높이는 것은, 노동자의 복지 향상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피곤하지 않고, 일에 재미를 느끼며, 심리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도록 해주면 노동자의 생산성이 올라간다.



 그런데 이런 생산성 향상 효과를 알더라도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노동의 질을 개선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혼자 노동의 질을 높이는 데 돈을 썼다가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안전장비 구매)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규제를 통해 모든 기업이 다 같은 수준을 맞추도록 해야 기업들이 노동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비용을 지출할 유인이 생긴다.



 물론 이런 제안을 하면 우리 정부가 규제하지 못하는 외국기업과 경쟁해야 되는 수출기업은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들은 노동의 질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노동규제도 더 많이 하고, 사회복지 지출을 훨씬 더 많이 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불안하지 않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점진적으로만 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노동의 질을 향상시키는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선진국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되면 후진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는 불리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기업의 기술력과 노동자들의 창의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발전 단계에 도달했다. 후진국이 쫓아온다고 우리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고 노동의 질을 떨어뜨린다면 지금까지 경제발전을 한 의미가 없다.



 노동의 질을 높이는 것은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나치게 급격히 하지만 않으면 꿩 먹고 알 먹는 정책인 것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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