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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의 세계 속의 한국] 역사의 관리

프랑스의 어느 곳을 가든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한복판에 전몰자를 추모하는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 기념물들은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가 아니라 거의 모두가 제1차 세계대전 희생자를 위한 것이다. 그만큼 1차 대전이 프랑스에 남긴 상처가 깊어 지금도 ‘대전쟁(Grande Guerre:그랑드 게르)’은 2차 대전이 아니라 1차 대전을 일컫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14~18년의 전쟁기간 내내 전선은 프랑스 안이었고 독일이 항복하는 순간에도 독일군은 프랑스 영토에 있었다. 프랑스가 입은 인명 피해도 가장 커서 프랑스 성인 남자의 3분의 1이 전사했으니 그 상처가 얼마나 지독한지 짐작이 갈 것이다.



 2차 대전보다 1차 대전의 의미가 프랑스에 더 큰 이유는 두 대전의 성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2차 대전은 ‘선과 악의 대결’ ‘독일의 야만성과 나치의 잔혹성에 대한 저항’이란 명분에도 불구하고 전쟁 기간 내내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한 게 문제였다. 승전(?) 후에도 연합국들에 제대로 승전국 대접을 못 받은 수치스러운 역사와 ‘비시 허수아비정부’ ‘부역자’라는 분열 구조가 무거운 부담으로 남아 있다. 이에 비해 1차 대전은 독일의 침략을 최후까지 일치단결하여 물리친 ‘위대한 승리’의 역사이고, 이는 어떠한 도전과 난관도 프랑스인들이 단결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귀한 교훈을 남겨 주고 있기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는 위기 때마다 ‘대전쟁’을 강조한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올해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다시 국민 단결을 호소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1차 대전의 의미가 이처럼 심대하기에 그 ‘관리’도 지극정성이다. 지역마다 1차 대전 기념물, 추모비, 전투 벙커, 전몰자 묘지 등을 관리하는 민간단체가 활약하고 있다. 독일이 항복한 11월 11일이면 지역마다 정전 기념행사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를 상기시킨다. 끊임없이 역사를 관리하고 기억시킴으로써 프랑스 역사에 지속성을 부여하고 국가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전쟁 당사자들의 화해와 친목도 중요한 관리 대상이다.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미테랑 대통령은 콜 총리와 함께 1차 대전 최대 격전지인 베르됭에서 전몰자에 대한 합동추모식을 했다. 100주년이 되는 올해 8월에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함께 엘자스의 하르트만스바일러코프의 1차 대전 전몰자 기념비를 참배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경을 맞대고 사는 나라들은 역사도 함께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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