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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전 바꿔먹는 재미 … 기름떡볶이 한 냥, 식혜는 두 냥

자고로 시장은 북적거려야 제맛이라 했다. 경복궁 서쪽에 있는 서울 종로구 통인동 통인시장이 요즘 그렇다. 연인에게는 데이트 코스로, 넥타이 맨 직장인들에게는 짬 내서 들르는 점심식사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늦은 오후엔 문화 체험을 나온 중·고등학생들도 시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대형마트에 손님을 뺏겨 장사가 어렵다는 전통시장이 많지만 통인시장은 다르다.



[맛있는 월요일] 시간을 먹다 ② 통인시장 도시락 카페

 지난 18일. 중·고등학생 150여 명이 통인시장 골목(직선 거리로 200m)을 가득 채웠다. 금색 엽전을 손에 든 학생들은 플라스틱 도시락에 반찬을 주워담았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시장 가득 퍼졌다. 초등학생 아들(5학년)·딸(3학년)과 함께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왔다는 권모(45·여)씨는 “지난달에 들렀다. 하필이면 시장이 안 열리는 날이라 구경을 하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졸라서 도시락을 맛보러 다시 왔다”고 말했다.



① 시장 명물 기름떡볶이. ② 문화 체험을 나온 학생들로 붐비는 시장. ③ 통인커뮤니티 2, 3층엔 도시락을 가져가 먹을 수 있는 카페가 마련돼있다. ④ 엽전 도시락(각각 엽전 7개, 11개 지불). ⑤ 1941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시장 안 풍경. ⑥ 각종전을 비롯해 수백 가지 반찬을 맛볼 수 있다. ⑦도시락 카페 가맹점주들과 정흥우 대표(오른쪽). ⑧ 엽전에 맞춘 작은 포장 식품도 등장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78개 점포가 모여 있는 작은 전통시장에 관광객이 몰리는 이유는 바로 ‘도시락 카페’ 때문이다. 평일 600명, 주말 1300명 정도가 통인시장표 도시락을 맛본다. 도시락 반찬은 엽전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 엽전 한 냥의 가치는 500원. 시장 내 도시락 카페 가맹점 23곳에서 판매하는 반찬·떡·식혜 등을 사서 담으면 입맛에 맞는 도시락 하나를 뚝딱 만들 수 있다. 닭강정·호박나물·만두 등 수백 가지 반찬이 팔리니 엽전 한 묶음(엽전 열 냥·5000원)이면 다양한 메뉴의 음식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시장 중간에 있는 도시락 카페에 앉아 밥과 국(각각 엽전 두 냥·1000원)을 곁들이면 근사한 한 끼가 완성된다.



 엽전은 재래시장의 풍경을 바꿨다. 엽전 한 냥에 맞춰 포장된 떡과 반찬을 판매하는 가게가 생겨났다. 퇴근 시간 정도에나 북적이던 시장은 최근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도시락 카페 운영은 상인회가 이끄는 마을기업 ‘통인커뮤니티’에서 맡고 있다. 통인커뮤니티 정흥우(52) 대표가 아이디어를 냈다. 2011년 10월 마을기업 사무실에서 시장 활성화 방안을 놓고 고민하던 중 불쑥 튀어나왔다.



 “시장에서 파는 반찬이나 먹거리로 도시락을 만들어서 파는 건 어때요.”



 “팔다 남는 도시락은 어쩔 거예요.”



 “시장에서 반찬을 사다가 깔아놓고 통인시장 뷔페를 여는 건 어떨까요.”



 “그날 다 못 팔면 남은 반찬은 우리가 다 떠안아야 되잖아요.”



 “접시를 나눠주고 먹을 만큼 조금씩 사먹게 하는 건 어때요.”



 도시락 카페는 정 대표가 내놓은 세 번째 아이디어였다. ‘내 맘대로 골라 담는 도시락 CAFE’라는 이름을 붙였다. 반찬끼리 섞일 수 있다는 지적에 접시는 오목한 홈이 있는 플라스틱 도시락으로 바뀌었다. 2012년 1월 통인커뮤니티 사무실 2·3층에 도시락 카페가 문을 열었다. 골라먹는 재미와 저렴한 가격 때문에 금세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개되면서 20~30대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우렁한 목소리로 ‘뻥이요’라고 외치는 뻥튀기 아저씨, 윷놀이 하는 사람들, 닭 잡는 모습…. 시장은 동네 사랑방이자 제가 뛰어놀던 놀이터였어요. 그런 모습을 되찾는 게 목표입니다.”



 정 대표는 원래 엔지니어였다. 통인동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인하대 기계공학과 81학번으로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다 1997년 상경했다. 담도암과 싸우던 아버지를 간호해야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시장 건물을 물려받았다. 장사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 그는 “건물을 신축하면서 세입자가 1층에 마트를 열고 싶다고 하기에 그에 맞춰 인테리어 공사를 해줬는데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다고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이어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다 2003년부터 통인시장 상인회장을 맡고 있다.



 도시락 카페 가맹점은 23곳. 14곳에서 시작해 그동안 9곳이 더 늘었다.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지원을 받아 엽전 4만 개를 찍어 냈으나 지금은 1만 개 정도만 남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챙겨 가서다. 지난해 매출은 5억원. 주차요원·바리스타 등 통인커뮤니티가 고용한 직원 9명 인건비를 제하고 순수익만 2000만원을 남겼다. 엽전 한 냥(500원)어치 반찬이 팔리면 점주가 400원을, 마을기업이 100원을 갖는다.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통인시장에 들러 기름떡볶이를 맛봤다. [중앙포토]
 도시락 카페 덕분에 통인시장은 이름을 떨치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월 시장에 들러 기름떡볶이를 먹고 갔다. 개그맨 신동엽과 가수 유희열이 단골손님이다. 시장에 들러 점심을 먹는 청와대 직원들도 늘었다. 가맹점 대부분이 시장통 한 자리에서 20~30년 동안 가게를 열고 있어 엄마손 반찬을 맛보러 오는 손님이 많다. 가맹점인 광주상회 김순애(62·여)씨는 “파리만 날리던 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다. 특히 주말에는 눈에 띌 정도로 손님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얼핏 보면 단기간에 성공을 거둔 것 같지만 정 대표의 설명은 다르다.



 “기존 가맹점주들은 가맹점 늘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아요. 손님은 한정돼 있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비가맹점에선 가맹점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가게 앞을 가로막고 있어 장사가 안 된다고 싫어하세요.”



 정 대표는 최근 도시락 카페 가맹점주들과 머리를 맞대고 상생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 끝에 반찬 재료를 통인시장에서만 구입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조금 더 싼 도매시장이 있지만 “함께 가자”는 정 대표의 설득에 모두 동의했다. 지난해 남은 수익으론 시장 상인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냉동창고를 만들 예정이다. 또 다른 상생의 방법도 찾고 있다. 통인커뮤니티는 스마트폰에 맞춘 모바일 홈페이지를 개발 중이다. 정 대표는 “손님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통인시장 가게 안내와 전화번호 등을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윤소라(숙명여대 영어영문) 인턴기자

사진=이영환 인턴기자



가볼 만한 서촌 산책 코스  통인시장에서 나와 자하문 터널 쪽으로 20분 정도 걸으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사진)이 나온다. 그의 작품 ‘별 헤는 밤’의 배경이 된 언덕에 서면 청운·효자동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시장에서 5분 거리인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도 들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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